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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사랑의 명장면
극단 ETS 〈BENT〉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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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사랑의 명장면
아무도 못 말릴, 약자들의 뜨거운 사랑

‘벤트(bent)’는 ‘구부러진’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게이나 호모섹슈얼을 비하해 부르는 영국식 속어이기도 하다. 마틴 셔먼이 집필한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서 이뤄진 대대적인 숙청에 직면한 동성애자를 그리지만 단순히 성 소수자의 인권만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맥스와 그 주변 인물들, 맥스와 홀스트의 사랑을 통해 인간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다.

마틴 셔먼은 독특한 2막 구조로 작품을 뜨겁게 달군다. 1막에서는 여러 장소와 다양한 인물이 나오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스케치하듯 훑어나간다. 2막은 한 장소로 고정된다. 무대 장치도 1막에 비해 더욱 간단하다. 공간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것은 오롯이 배우의 에너지다. 허허벌판처럼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맥스와 홀스트는 사랑을 나눈다. 마법과도 같은 장면이 벌어지는 것도 이때다. 단 한 번의 스킨십 없이 무대는 터져나갈 듯 점강하는 사랑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다.


잊지못할 사랑의 명장면
‘정체성과 생존’의 주제를 뜨겁게 다루는 배우들

사회적 발언을 하는 매체로서의 연극의 힘을 믿는 극단 ETS는 2011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1인극 <페이스(FACE)>에서도 배우의 에너지 운용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며 눈길을 끈 바 있다. ETS가 만드는 작품은 대부분 사회의 거대 담론과 맞서는, 혹은 거대 담론에 휩쓸려 고통받는 인간을 표현하고 있기에 배우의 뜨거운 에너지가 작품에서 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극단을 이끄는 배우 겸 연출가 김혜리의 주 전공이 연기이기 때문일까. 작품들은 하나같이 시각적 연출 요소를 최소한으로 자제하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그 때문에 작품 전반의 세련미나 멋은 조금 덜한 게 사실이다. 대신, 전면에 부각되는 작품의 다른 미덕이 있다. 인물들의 내밀한 갈등이 섬세하게, 또 뚜렷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사회와 개인, 정체성과 생존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배우의 몸으로만 표현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페이스>와 달리 신인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 〈BENT〉의 경우에도, 공연 전 우려와 달리 극장이 배우의 에너지로 꽉 차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쯤 되면 극단 ETS의 연기 훈련 과정, 연출가 김혜리의 배우 운용법에 뭔가 숨겨진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잊지못할 사랑의 명장면   잊지못할 사랑의 명장면


실험성 짙은 연극, 장엄한 풍경이 있는 연극들도 좋지만 가끔 이런 연극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특별히 멋 부리지 않은 연극, 이야기의 강렬한 힘에 빠져들게 하는 연극, 캐릭터가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 연극. 그런 의미에서 〈BENT〉는 추천할 만하다.
4월에 앙코르로 선보이는 〈BENT〉는 대학로 아트씨어터 문에서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진행된다. 좀 더 쾌적한 극장환경, 그리고 초연 때와 달라진 맥스 역의 김승기 배우가 〈BENT〉의 감동을 어느 정도 바꿔놓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새롭게 만나는 맥스와 홀스트도 객석의 온도를 뜨겁게 높일 수 있을까? 사랑의 명장면이 이번 무대에서 다시 한 번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 BENT
  • 일시 : 4월17일(목)∼4월27일(일) 평일 8시 / 주말 3시 7시
    21~22일 공연 없음, 27일 7시 공연 없음
    장소 :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작 : 마틴 셔먼
    연출 : 김혜리
    출연 : 김승기, 노창균, 최성호, 손명구,
    김준삼, 조장연, 김정래, 김승겸
    문의 : 02-76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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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T〉

태그 BENT, 마틴 셔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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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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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   2014-04-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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