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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을 듣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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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주는 극장

사실 요즘엔 낭독 공연도, 소설을 무대화한 공연도 너무 많아져서 ‘소설낭독’ 공연이 뭐 별로 새로울 게 있나 싶다. 하지만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 혹은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이야기를 더 실감 나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말하기 방식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은 때론 해설자가 되기도 하고, 상황을 묘사하거나 인물을 연기하기도 하면서 역할을 들락날락 거린다. 그 사이사이 발생하는 미세하고도 무수한 틈을 채우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어쩌면 낭독하기에 좋은 소설이란 이렇듯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틈을 열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는 되도록 소설의 문장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개별 연출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선택된 소설은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인 한유주와 박솔뫼 두 작가의 단편 다섯 작품. 심지어 <자연사 박물관>, <한탄> 그리고 <우리는 매일 오후에>,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도미의 나라> 중 일부는 이번 낭독 공연을 염두에 두고 새로 창작된 소설이라고 하니, 무대 위의 문학성과 연극성이 어떻게 어울리고 맞물릴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낭독 공연 자체의 지평 또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실제로 이 낭독극장은 ‘문지문화원 사이’와 협력해 문학평론가와 철학자, 그리고 공연에 참여한 연출가들의 만남을 준비한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 무대 위의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창작과 담론이 어떻게 길항하고 접점을 찾아가는지 이로부터 돌발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한편 ‘사이’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 『인문예술잡지 F』 지면을 통해서는 이들의 사유를 담은 글이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이로써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선순환은 작가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이야기가 예술가와 관객을 만나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이론가와 독자들을 거쳐 또다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아낼 것이다.

행간을 듣다
윤성호 연출 <자연사 박물관>
소설 쓰기의 과정

한유주의 두 작품은 나란히 소설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쓴다. <자연사 박물관>의 화자는 죽음에 대해 쓰려다 실패하고 실존하는 작가인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인물들을 베끼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에는 죽음을 소재로 글을 쓰는 트리스탄이란 작가가 등장한다. 한편 <한탄>은 소설을 쓰려고 하나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쓰지 못함에 대해서 쓰고 있는 화자를 소환한다. 잠이 들어 책을 읽는 꿈을 꿨던 화자는 잠에서 깨어 이내 꿈속의 문장들을 빌려 다시 소설을 시작한다. 두 작품 모두, 소설 쓰기의 과정에서 화자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함으로써 지리멸렬 흩어진 생각들이 문장을 이루는 구조적 전략을 취한다.

행간을 듣다
김한내 연출 <우리는 매일 오후에>
재앙을 살아내는 법

박솔뫼의 세 작품은 원자력발전소와 관련된 테마를 다룬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와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은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라는 가상의 사건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방사능 유출 사고가 폭로된 다음 날, 어깨에 올려놓고 다닐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작아진 남자와 산책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는 원전 사고 이후 기르던 고양이와 베고 자던 베개가 부산타워로 변신해버린 화자의 상황을 그린다. 이에 반해 <도미의 나라>는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일본의 간사이 지역을 여행한 도미의 기억과 도쿄전력 시미즈 사장의 실화를 병치시킨다. 세 작품은 이렇듯 그 어떤 재앙의 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재앙으로 인해 야기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과 전혀 무관한 채 흘러가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사유를 보여준다.

행간을 듣다
김한내 연출 <우리는 매일 오후에>

비록 몇 안 되는 문장들이지만 짧은 발췌를 통해 본 한유주와 박솔뫼 두 작가의 소설 텍스트는 기존에 익숙하게 접해왔던 소설의 언어와 비교했을 때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다. 단어들의 반복적 사용, 그렇게 구성된 문장들의 섬세한 변주는 그 자체로 발화되기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듯도 싶다. 하지만 저 몇 줄 문장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훨씬 더 풍성한 결의 이야기가 들어줄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극장에서, 낭독이라는 이름으로, 아니 어쩌면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것은, 비단 활자화된 텍스트가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이 되어 울림으로써 단순히 소설의 위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설가들의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은 연출가들과 배우들의 욕망으로 번지고 객석에는 여러 화자들이 만들어낸 행간을 듣는 즐거움이 번져갈 것이다. 그러니 마침내,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가 이곳, 낭독극장에서 피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 행간을 듣다 포스터
  • 일시 : 4월16일(수)∼4월27일(일) 수목금 8시 / 주말 2시 7시
    장소 : 산울림소극장
    작 : 한유주, 박솔뫼
    연출 : 윤성호, 전진모, 김한내, 강민백, 성기웅
    문의 : 02-76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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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행간을 듣다, 산울림소극장, 한유주, 박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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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42호   2014-04-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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