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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문제
극단 컬티즌 <스카이라잇>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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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괜찮다고 할 줄 알았지.

    극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가난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부의 혜택을 누려본, 그러다 다시 가난을 선택한 여자 카이라, 그리고 매력 넘치는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독선적인 성격을 지닌 톰, 그리고 둘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복구하려는 톰의 아들 에드워드 등이다. 행여나 복수가 난무하는 치정극을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기대를 접는 게 좋겠다. 이 모든 이야기는 톰의 부인이자 에드워드의 어머니였던 앨리스가 죽은 이후에야 시작된다. 작품에서는 상처 받은 카이라, 용서 받고 싶은 톰, 과거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에드워드 등 세 인물의 각기 다른 가치관과 성향, 입장, 주장이 분명하게 구분되고 서로 부딪히며 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특히 2명씩 짝지워져 등장하는 3막 구성이 흥미롭다. 이번 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은 최용훈 연출가는 “관객은 2명씩 벌이는 논쟁 혹은 대화에 점차 말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텐데 재미있을 거다”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덧붙여 “치정을 다루지만 사실 이 작품은 정치극”이라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신뢰의 문제

    극 중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카이라와 톰의 이야기다. 빈민지역 교사로 일하는 카이라와, 성공한 CEO이자 옛 연인인 톰은 헤어진 지 3년 만에 다시 만난다. 예전에는 한 공간 안에 머물며 따뜻한 사랑을 나눴지만, 현재 서로 너무도 다른 환경 속에 살아가는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사건건 부딪힌다.

    두 사람 간 대결구도와 논쟁이 작품의 중심축을 이루는 만큼 이 연극에서 배우의 역량은 특히나 중요하다. 캐스팅을 참고자료 삼아 공연 전 미리 연극무대를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미워하기 힘든 현실주의자 톰 역할은 이호재 배우가 담당하는데 연애 100단의 능구렁이 같은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마성의 중년을 상대하는 당찬 카이라 역할은 오지혜 배우가 맡는다. 톰과 카이라의 입을 통해 마치 이 연극은 보수와 진보의 탄생에서부터 대립까지의 역사를 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 제발, 그렇게 단순한 얘기가 아니라고요.

    그러나 이 극은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의 대립을 넘어서서 계속해서 확대적용, 확장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가령 작가는 돈을 벌면 직접 셌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를 비교하며 물질만능사회에서 양심과 도덕의 문제를 다루는 데도 관심을 보인다. 또한 톰의 마초적 성향을 강조하며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도 슬쩍 내비친다. 즉, 이 연극은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단순한 일방향 해석을 거부한다.

    카이라와 톰이라는 캐릭터 또한 단순하게 선과 악의 대립구도 속에 갇혀있지 않다. 가령 톰은 빈민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 카이라로부터 돈에 혈안이 된 CEO로 매도 당하기도 하지만, 그가 카이라를 향해 현실 부정과 현실 도피만 하고 있다고 쏘아붙이는 이야기는 제법 묵직하게 다가온다. “두려움. 그것이 당신이 피하려던 것이겠지. 정말로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치는 것. …그래, 물론 당신은 그들을 사랑해. 다음 정류장에서 그냥 내려버리면 그만이니까.” 톰의 입을 빌려 작가는 진보를 주장하는 세력에게, 두려움 때문에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신뢰의 문제

    평행선만 계속 그리던 옛 연인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결국에는 서로 용서 받게 될까. 아니면 구원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데에서 시작될는 지도 모른다. 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내가 세운 하나의 개인적인 목표를 책임감 있게 실천하는 데서 말이다. 먼저 스스로에 대해 신뢰하는 일, 어쩌면 이것이 데이비드 헤어가 생각하는, 채광창을 통해 한 줄기 빛을 받으며 따뜻하고 근사한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일는지도 모르겠다.


  • 신뢰의 문제
  • 일시 : 6월12~16일 평일 8시/주말 3시/월 쉼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 : 데이비드 헤어
    번역 : 성수정
    연출 : 최용훈
    출연 : 이호재, 오지혜, 조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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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신뢰의 문제, 컬티즌, 스카이라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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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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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호   2014-06-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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