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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뜨거운 피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극단 골목길 <만주전선>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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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뜨거운 피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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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바라는 세상

    때는 1940년 무렵, 만주국 수도 신경. 조선에서 유학 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무사히 마친 아스카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던 이들은 그곳에서 환자를 돌보고, 시를 써서 발표하고, 교회에서 성극을 만들고,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기무라’, ‘가네다’, ‘나오미’, ‘요시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었고, “요시 요시 이빠이 간빠이!”라고 외치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어릴 때 너무나 영특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창씨개명을 한 ‘아스카’의 동생 ‘게이코’가 조선으로부터 된장, 고추장 단지를 안고 이들을 찾아왔다. 그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떼도적이라 불렀고, 된장 항아리를 구데기 들끓는 비위생적인 것이라 여겼으며, 불륜이 발각돼 린치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일본인과 결혼해 자식들을 일본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었다.

    당신들의 뜨거운 피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해석은 불가능하다?!

    이 작품은 박근형 연출 특유의 유머와 재치,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빛난다. 하지만 예의 어느 작품보다도 강한 돌직구를 날린다는 점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혹은 그래서 아쉬울 수도 있다.) 너무나 투명하게 온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현실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청춘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딱히 문제 삼을 만한 구석이 없다. 눈곱만큼의 위선도 없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지극히 아름답다. 그런데 어째서 그 지극한 아름다움에 당신은 감동받지 아니하고 웃음으로써 응답하는가. 그것이 바로 당시 그들의,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 그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을 누군가들의 ‘위세’를 증명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조선의 이름을 가지고 건배를 외치며 독립 운동을 하는 당대 젊은이들의 뜨거운 삶을 이토록 꾸밈없이 그려냈다면, 이 연극은 절대로 이만큼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만주전선>은 영리하게도, 그 내용에 있어 크게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꽤나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현실에 이 비슷한 인물이 실재한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당신들의 뜨거운 피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극

    딱히 다른 해석의 여지도 없는 공연이지만, 역시나 연극은 연극. 그리고 박근형은 박근형. 이 작품의 가장 외연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로서 ‘나’가 나타나 순간순간 이야기의 맥을 끊고 등장인물들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한다. 실제로는 문학청년 ‘가네다’를 연기하는 배우가 수건 하나를 둘렀다 풀었다 하면서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심지어는 생물학적 할아버지도 소환하지 않은 채, 세 할머니와 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모양새는 오직 연극만이 구현 가능한 생생함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더불어 교회에서 공연할 성극을 연습한다는 이유로 불쑥불쑥 끼어드는 엉뚱한 극중극 또한 이 작품의 매력. 이 장면에는 글을 쓰고, 연출을 하는 박근형과 그리고 <만주전선>에 참여해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으니 마음껏 웃고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해도 좋다.

    당신들의 뜨거운 피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연 당시 이 작품을 본 많은 이들은 15년 전 처음 공연되었던 박근형의 또 다른 작품 <대대손손>을 언급했다. <대대손손>은 현재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4대에 걸친 한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왜곡된 단면을 예리하게 풍자했던 공연으로, <만주전선>과 비교하며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대대손손>은 희곡으로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언젠가 재공연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한동안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왜냐고?) 1999년 <대대손손>을 썼던 박근형이 2014년에는 <만주전선>을 썼다. 무엇이 그의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는지 추정해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현실에서 어떤 징후를 읽어낸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사진: 극단 골목길 제공]

  • 당신들의 뜨거운 피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일시 : 8월 8일~8월 31일 평일 8시(수 공연 없음) /
    토 4시, 7시 / 일 4시
    장소 : 소극장 시월(구. 배우세상 소극장)
    작·연출 : 박근형
    출연 : 강지은, 정세라, 권혁, 이봉련, 김은우,
    김동원
    문의 : 02-6012-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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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49호   2014-08-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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