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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Creative VaQi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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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대화의 시작

    지난 몇 년간 연출가 이경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특정한 소재를 공간화해 배치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1930~40년대에 태어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분들의 이야기를 작품화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직장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해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에서 일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를 떠올리게 되었고, 자신이 그렇게 가깝게 지내온 분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아주머니는 1941년생이었고, 그간 품어왔던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안착할 자리를 찾은 듯했다. 그렇게, 이애순 할머니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한데 이애순 씨가 꺼내놓는 과거에 대한 기억은 생각만큼 다채롭거나 명확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 중요한 건 현재의 행복한 일상이었고, 개인적인 삶 너머에 있는 것들은 당대의 풍문이 만들어 냈을 법한 인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더 가까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난생처음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대화 또한 소소한 소재로부터 가지를 뻗쳐나갔다. 그때마다 수도 없이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했고, 공연에 쓰고자 했던 이야기 틀을 통째로 갈아엎기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경성은, 이 모든 과정을 솔직하게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새로운 의미로의 도약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도에 의해 이야기가 배치되고, 그것이 하나의 주의주장 같은 것을 형성하는 반면에 이애순 씨의 이야기는 그 사이사이 덩그마니 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때면 그는 언제나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 왜 이애순 씨와 대화를 시작했는지 복기했다.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은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들을 끄집어냈고, 미지의 영역들이 열리는 만큼, 이경성 자신은 물론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감각들이 하나 둘 쌓여갔다. 근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 그의 이야기를 같이 호흡하는 배우들은 이애순 씨의 언어를 육화하는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들은 이경성이 되었다가, 배우 자신이 되면서 한편으로 이애순 할머니의 인터뷰를 verbatim(말 그대로)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부분은 ‘재현’과 ‘재연’ 사이에서 톤을 잡아가고 있는데, 있는 그대로를 하다 보니 너무 증언처럼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더라. 사실 verbatim은 ‘재연’에 가까운데, 그것보다는 배우들의 시선이나 해석이 들어간 ‘재현’의 적정한 지점을 찾고 싶다.”_연출가 이경성


    다소 어려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 방법론은 공연을 보는데 아주 흥미로울 수 있는 요소인지라, 조금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이를테면, 위의 인터뷰에서 이경성은 사실 이렇게 말했다. “어, 어느 정도 쫌, 그니까 재현과 재연 사이에서 톤을 잡고 있는 건데… 있는 그대로, 말 그대로를 버바팀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렇게, 그렇게 가니까 너무 이게 증언처럼 돼버려서, 쪼금 더, 그니까 버바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재연에 가까운데, 음. 그거보다는 쪼금 더 배우들의 시선이나 해석이 들어간 재현? 그게 어떤 사실적인 재현이 아닌, 어떤 지점을 찾고 싶은데…”
    이처럼 공연의 대본은 할머니의 언어를 거의 있는 그대로 풀어놓고, 배우들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그것을 연기한다. 말 그대로 ‘재연’(한 번 했던 행위나 일을 다시 되풀이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경성이 찾고 있는 것은 거기에 배우 저마다의 색깔을 덧씌우는 ‘재현’(원본을 다시 나타냄)이다. 밑줄 그은 이경성의 저 말이 흥미로웠다면 저걸 그대로 이야기하면서도 특정한 제스처를 넣는다든지, 목소리에 색다른 리듬을 싣는다든지 해서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느 한 사람의 증언은 다른 이의 목소리를 입고 새로운 의미를 배태하게 된다.

    생것이 익어가는 시간

    한편 무대 위에는 이애순 씨의 일상이 제법 고스란히 들어온다. 그의 집에서 실어 나른 각종 화분들과 소품들, 카펫까지 그대로다. 과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오롯이 복원되는 현장답다. 공연이 시작되면 바로 그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쌀이 앉혀진다. 밥솥은 부지런히 돌면서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고소한 냄새에 극장이 젖어갈 때쯤 이애순 씨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그 밥을 나누어 먹고, 곧이어 공연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생것이 익어가는 그 시간동안 이애순이라는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가닿는다. 물과 열과 압력을 받아 쌀이 밥이 된다는 것, 오물오물 씹으면 입 안 가득 단내가 퍼지는, 따끈하게 먹을 만한 것이 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게도 이 공연의 모든 의미를 함축한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이것은 현대사의 상흔을 간직한 한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애순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어느 여성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공연은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우리 시대의 윤리를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 공연을 보기에 앞서, 기존의 관념 안에 누군가를 가두지 않는 것, 그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처 표현할 수 없는 틈을 남겨두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을 제안한다.

  •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포스터
  • 일시 : 9월 13일~9월 21일, 평일 20시, 주말 16시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작·구성·연출 : 이경성
    드라마터그 : 장수진
    작·출연 : 나경민, 성수연, 유명상, 이애순, 장수진, 이경성
    문의 : 02-366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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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크리에이티브 Va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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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51호   2014-09-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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