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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마지막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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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이 공연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먼저, 이 공연은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윤한솔 연출의 신작이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원작으로 했으며, 그린피그가 공동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허나 취재를 위해 찾은 연습실에서 만난 연출 윤한솔과 글쓰기 김민승 두 사람은 보도자료에 실린 본인들의 글이 ‘왜 이 공연을 소개할 수 없는지’에 관해 쓴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여기 이 몇 줄 안 되는 문장만으로 그들보다 공연을 더 잘 소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환상일지도. 더구나 윤한솔은 공연 직전 마지막 사흘 동안 연출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연출가 방법론: 여섯 연출가들의 작업노트 엿보기 참고)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공연이 보름도 더 남은 시점에 살짝 엿본 풍경만으로 이 작품을 섣불리 소개하기보다는 ‘공연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윤한솔의 말을 지표 삼아, 이들의 사유가 흘러온 과정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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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작업의 단초

윤한솔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로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던 건 이미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소설의 명료한 플롯과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미래’라는 것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끌렸다. 생각할수록, 미래란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언젠가부터 대학에 간다는 것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곧이어 도래할 가능성으로서가 아니라, 대학에 가야만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선결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일어날 법한 눈앞의 징조들을 애써 유예시키는 방식의 미래 또한 존재했다. 이웃 나라에서 원전 사고가 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의 미래로 상정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쉽사리 미래를 우회했다. 그런 와중에도 갖가지 희망 담론과 장밋빛 미래들은 봇물처럼 쏟아졌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할 대가를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둘. 살아버린 미래

이때, 『1984』가 다시 떠올랐다. 작정하고 이 모든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더 적합한 텍스트들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결국 이 소설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러했다. 조지 오웰은 1948년에 『1984』를 집필했는데, 스터디 과정에서 여러 텍스트들을 교차 분석한 결과, 그것이 당대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다른 소설들에 등장하는 일상의 묘사들과 조지 오웰의 삶, 그리고 그 당시 사회를 기록한 여러 문헌들이 그것을 뒷받침했고, 작가의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한 미래는 ‘미래’라는 담론을 이야기하기에 상당히 유효한 원동력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사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이미 살아버린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실질적인 접근법도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공연은 소설 『1984』와 실제 우리가 지나쳐왔던 1984년이 나란한 궤적을 그리도록 그림을 맞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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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파국을 이야기하자

소설 『1984』의 윈스턴은 감방에 끌려와 오브라이언에게 취조당하는 사이 다음과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듣는다. “자넨 마지막 인간이야.” 이 말의 뜻인즉슨, 불합리에 저항하고 부조리에 항거하는 인간은 이제 멸종했음을 이른다. 재미있게도 공연은 이 언명을 그대로 차용해, 드라마의 극적 대사로서 한정된 의미를 극복한다. 그동안 고민해왔던 이 모든 미래에 대한 흩어진 사유들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파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현실의 역설. 파국의 형상화에는 스터디 과정에서 검토했던 다양한 텍스트들이 참조된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으로부터 섹스 피스톨즈의 ‘미래는 없다’라는 외침, ‘제4의 물결’ 류의 미래학들까지, 미래를 얘기하는 갖가지 관점이나 방법들을 공연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소설 『1984』는 미래 담론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메타 담론을 형성하면서 공연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넷. 구현의 방법론 찾기

“개념적으로 봤을 때, 이 모든 텍스트들이 그냥 교차편집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아직 우리도 잘 모른다. 무대에는 컨베이어벨트가 들어오고, 그 위에서 행해지는 연기가 일종의 소심한 역동성 같은 것들을 만들어낼 거다. 영상은, 1980년대 당시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작되었던 영리 병원 광고 같은 것들도 쓸 생각이고, 라이브 카메라, 폐쇄회로도 쓰일 것 같다. 또한 1984년에 시계를 맞추기 위해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84년 1월 1일 아침, 윈스턴은 텔레비전을 통해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본다. 또 한편으로는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선희의 ‘J에게’를 따라 부르기도 할 거다. 늘 하는 식의 어떤 뒤틀림 같은 것들, 그리고 이전 작품들의 패러디도 좀 있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과제는 3부에서 오브라이언과 윈스턴 둘이 주고받는 30여 분간에 걸친 대화 장면이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하는 식의 서사가 전혀 없이, 상황은 종료된 채 논리와 논리가 맞서는 대화다. 이걸 얼마나 매력적으로 풀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연출가 윤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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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이 마지막 사흘 동안 연출을 한다는 것은 일면 거짓이지만 또 한편 응당 진실일 것이다. 수많은 텍스트와 개념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그들은 시간을 잊고 작업 중이었다. 연습실의 공기는, 어떤 특정 장면이 완성되지 않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흔한 초조함보다는 계속되는 새로운 시도와 질문, 설득의 열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렇게 만들어진 장면들은 막판 사흘간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될 것이다. 지금은 이것이 어떤 공연이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거친 공연이 ‘구경거리’가 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궁금하다, 이 연극.

1984 포스터

일시
9월 23일~10월 18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공휴일 3시 (월 쉼)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원작
조지 오웰 『1984』
구성
그린피그 공동창작/ 글쓰기: 김민승/ 드라마터그: 전성현
연출
윤한솔
출연
곽동현, 김효영, 박기원, 신재환, 이필주, 임정희, 전선우,
정양아, 황미영
문의
02-708-5001

태그 두산아트센터, 1984, 자넨 마지막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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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52호   2014-09-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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