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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감정은 어떻게 무시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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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때로는 ‘부분’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게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예술에서 종종 비유와 상징을 활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터. 현 사회에서 규칙처럼 반복되는 양상을 파악해 추출한 뒤 이를 보다 작은 단위에 적용해보면 가려진 모순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기 쉽다. 영국 극작가 니나 레인도 희곡 <부족(Tribes)>에서 이 방법을 택했다. 이 희곡은 가족 이야기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공통분모를 잘 추출해낸 덕분에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쉽게 확장된다. 제목부터 ‘가족’이 아니라 ‘부족’이다.

소수의 감정은 어떻게 무시 되는가

‘니나 레인’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곧 태어날 아이가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나길 바란다는 한 청각장애인 부부의 인터뷰를 접한 후 이 희곡의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그 구성원들이 믿는 것을 전수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어떻게 태어나든 소속된 공동체의 신념과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통해 작가는 다음 질문으로 나아간다. ‘한 가족의 구성원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과연 가족의 가치와 신념에 동의하는가?’

‘니나 레인’의 두 번째 작품이자 2010년 런던 로열 코트 극장에서 초연하며 호평을 이끌어낸 이 작품은 곧 국내 무대에도 오른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이번 작품을 위해 <철로>, <예술하는 습관> 등으로 호평 받았던 박정희 연출가, 그리고 남명렬, 남기애, 김준원, 방진의, 이재균, 정운선 배우가 함께 뭉쳤다. 공연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목은 <부족>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바뀌었다. 청각장애인과 그의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룬 만큼 아무래도 연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특히, 이 작품을 위해 서초수화통역센터에서 두세 달 정도 훈련했다는 청각장애인 ‘빌리’ 역의 이재균과 ‘빌리’의 청각장애인 여자친구 ‘실비아’ 역의 정운선이 주목된다. 수화 연기에 따른 부담 때문일까, 아니면 극 내용의 치열함 때문일까. 공연 전 살짝 엿본 연습실 풍경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들을 수 있는 세계와 들을 수 없는 세계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을 구성하는 인물들은 5명의 가족과 1명의 외부인이다. 가족 구성원은 지식, 편견, 논리로 무장한 '언어 밝힘증 환자' 아빠, 추리 소설가이자 남다른 공감능력을 지닌 엄마, 언어 관련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큰 형, ‘글’ 쓰는 일을 하지 않고 오페라 가수를 택한 누나, 그리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청각장애인 막내 ‘빌리’ 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빌리’의 여자친구 ‘실비아’가 더해지면서, 견고한 성과 같은 이 가족에 서서히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극에서 ‘언어’는 강요와 억압으로 불통을 자초하는 키워드로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작품 속 부부는 날 때부터 듣지 못하는 아들 ‘빌리’가 ‘2등 시민’으로 전락하거나 ‘청각장애인의 정체성’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화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빌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실비아’를 만나면서 청각장애인의 세계에 눈을 뜬다. 평생을 훈련해온, 눈으로 입술을 읽는 능력으로 검찰청의 증거전문가가 되고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꿈꾼다. ‘빌리’의 이러한 성장의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이 제공한다. ‘빌리’는 가족들이 자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곧 가족과 대립각을 세운다.

무엇보다도 언어를 도구 삼아 ‘들을 수 있는 세계’와 ‘들을 수 없는 세계’를 대비시키는 방식이 흥미롭다.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일차적으로 말을 통한 대화로 이루어지는데, 이 세계에는 은유와 비유, 논리와 철학, 비아냥과 직설만이 가득차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설정은 일차적인 것이고, 극이 진행될수록 들을 수 있는 세계와 들을 수 없는 세계는 다채로운 결을 쌓으며 서로 대비된다. 이를 테면, 장애를 겪지 않는 가족들도 들을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한다.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말들의 향연일 뿐이다. 언어와 글쓰기에 특화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면 할수록 서로를 소외시키고 서로 불통하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그려진다.

소수의 감정은 어떻게 무시 되는가

나의 가족 이야기이자 우리 사회 이야기

가족의 논리에 희생되는 것은 ‘빌리’뿐만이 아니다. 청각장애인인 ‘빌리’가 극대화되어 표현되었을 뿐, ‘빌리’의 형과 누나도 언어 중심의 가치관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렇게 가족이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부족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을 전파하는데,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또한 작가가 ‘언어’를 내세워 문제의식을 드러낸 까닭에 극은 다각도로 확장해 읽힐 여지를 남긴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혹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에게 나름의 논리를 강요하는 게 올바른 것일까?

박정희 연출가는 “영국 작가의 희곡이지만 우리와도 가까운 얘기라 생각한다”면서 “아이들 사교육 문제, 청각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문제도 있어 한국의 가족 이야기, 사회 이야기로도 확장된다”고 말했다. 특히 “청각장애인이 성장하는 과정이 이 연극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들을 수 없는 세계’는 자막으로 표현될 예정이다. 자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집의 벽면에 투사된다. 청각장애인 ‘빌리’의 말은 물론이고, 정상인 가족의 감춰진 속내 또한 글자로 투사되면서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무시되는가를 가시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가사 있는 음악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이들 음악은 등장인물의 내러티브를 확장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세밀한 연극적 장치는 어쩌면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이 이 모든 설정들을 동원해 오롯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억압 받는 감정들이 그려내는, 어떤 풍경이다. 박 연출가 또한 “들을 수 있는 세계와 들을 수 없는 세계 간 차이를 어떻게 보여줄까에 대한 상상보다는 감정에 대한 상상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가 혹은 왜 불가능한가에 대해 탐험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관객은 사회의 공감능력에 대한 묵상의 계기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을 떠날 결심을 밝히며 ‘빌리’가 하는 말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정신병자들… 자기들끼리 숨어 사는 공동체. 창녀 금지, 장사치 금지, 드보르작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 금지. 그리고 아무도 여길 떠나지도 못하죠.” 소수자를 대변하는 ‘빌리’가 원하는 소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한 사람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존중해주는 것, 그것뿐이다.

소수의 감정은 어떻게 무시 되는가

[사진: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 Tribes 포스터

일시
11월 8일~12월 14일, 평일 8시, 주말·공휴일 3·7시, 월 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작
니나 레인(Nina Raine)
연출
박정희
번역
이인수
출연
남명렬, 남기애, 김준원, 방진의, 이재균, 정운선
문의
070-4648-7519

태그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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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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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호   2014-11-0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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