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이제, 이 이야기에 종말을 고하자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늘 아침, 그러니까 2014년의 어느 늦가을, 대법원은 하나의 판결을 내놓는다. 판결의 골자는 ‘해고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1887년 집필된 희곡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지금 저를 해고하신다면 언론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걸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당한 이유를 밝히셔야 할 겁니다.” 희곡엔 또 이런 대사들도 있었다. “콧구멍만한 이득을 보려고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킬 그런 선주가 어디 있습니까? 침몰할 걸 뻔히 알면서 항해할 수 없는 배를 출항시키는 선주가 어디 있냐고요” 그리고 또 많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대사들이 계속된다. 137년 전, 노르웨이 작가가 쓴 작품이다. 현실의 대한민국이 왜 그 안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이 이야기에 종말을 고하자

시간을 횡단하는 이야기

고전이 괜히 고전일 리가 없다. 현대 희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은 그 시대 노르웨이의 한 해안가 소도시를 배경으로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희곡에는 소위 ‘사회의 기둥’이라 칭송받는 선박회사의 사장 ‘베르니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회의 기둥’이라니,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사실, 지금의 우리에겐 굉장히 서걱거린다. 아무도 그런 말을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는 것, 결국 그것은 그 말이 지칭하는 개념이 사멸했음을 뜻한다. 이 시대, 사회의 기둥 같은 건 더 이상 없다. 재미있게도 작품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니크’라는 이 인물의 언행이 현실에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것.
이제는 이런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새로운 기계를 들여오면서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토지를 싼값에 매입한 후 그곳에 철도를 유치하고, 자신의 이익과 평판을 위해 수리가 덜 된 배를 바다에 띄우는 사람들. 그리고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학교를 만들고 큰일을 한다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그런 사람들은 있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자주 속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결국 그 개념은 자연스럽게 폐기처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념이 없어졌다고 해서 현상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회의 기둥’이라는 공식적인 멍에를 벗고 누군가는 더욱 떳떳하게 그들의 추악한 맨 얼굴을 드러낸다. 작품은 사멸한 개념의 탈을 쓰고 활약상을 펼치는 숨은 공로자를 무대로 소환한다.

이제, 이 이야기에 종말을 고하자

현실엔 없는 결말

그런데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김광보 연출이 처음 이 대본을 받았던 건 지난 3월 말. 당시만 하더라도 극의 결말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대본을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가더라도 마지막 장면엔 ‘베르니크’에게 또 다른 위선과 기만의 얼굴을 입혀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현실은 전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참사를 빚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여러 차례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진정성과 감동을 담은 극신파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담담하고 차분한 대단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연극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현실의 천박함을 뒤집어 보여주는 위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안온하고 따뜻한 극장 밖을 나서면 거짓말같이 진짜인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런스루를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우리 현실에는 벌어진 현안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참회하는 그런 인간상이 없지 않나. 그러니 오히려 더 진솔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런데 연극이 실제 우리가 겪은 일들과 완전히 반대로 흘러가니까 기분이 아주 묘해지더라. 어쩌면 공연을 보면서 현실의 여러 가지 것들이 연상되어 더 큰 상실감과 슬픔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작품이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들을 이상적으로 그려낸다고 생각해 저러니 연극이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여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거나 관객을 감정적으로 동화시키는 것보다 연극을 통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연출가 김광보

작품은 특정 시공간을 설정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무대는 고조되는 갈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점점 더 이야기와 공명하고,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베르니크’는 이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그를 참회의 길로 안내했을까. 엄혹한 현실을 정색하고 얘기하는 작품은 너무 많은 고통을 주고, 미화된 이야기로 관객을 현혹시키는 작품은 믿을 수가 없다. <사회의 기둥들>은 있는 그대로의 절망이나 거짓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시간을 횡단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실엔 없는 결말은 그 자체로 우리가 외면하려 했던 것들을 급습한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드라마에 종말을 고할 때가 왔다.

이제, 이 이야기에 종말을 고하자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사회의 기둥들 포스터

일시
11월 19일~30일, 평일 8시, 토 3·7시, 일 4시, 월 쉼
장소
LG아트센터
헨릭 입센
연출
김광보
출연
박지일, 정재은, 정수영, 이석준, 우현주, 김주완, 이승주, 손진환, 유성주, 채윤서, 한동규, 유연수, 구혜령, 백지원, 서정연, 이형석
문의
02-2005-0114

태그 LG아트센터,사회의 기둥들,김슬기

목록보기

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 56호   2014-11-20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