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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기에 적절한 방법을 물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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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도 가끔은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게 사치스러운 바람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말짱히 살아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또 잊힌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죽음이란 영영 그 실체를 다시 만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망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최근엔 상조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 물리적인 절차는 완벽하게 차가운 법식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죽음은 컨베이어벨트에 얹힌 채 실려 나가고, 고인을 보내고 기억하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마당에 고인의 기일날 사이버스페이스에(!) 있는 묘에 절을 하고 인증샷을 올리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걸 열 번 하면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준다는데 못 할 건 또 뭐 있겠는가?!!!

기억되기에 적절한 방법을 물색하자

전산오류 말고, 진심의 오류

환이네 가족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 영정 사진이 떠 있고, 거기 절을 한다. 그 모습이 꽤나 진지하고 능청스럽다. 어느 타이밍에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제발… 그렇게 격식을 갖추려고 애쓰지 말라고… 환이의 할아버지 서춘식이 죽기 전 장묘문화서비스에 등록을 한 결과다. 이 업체는 서비스를 신청한 이가 죽은 후, 그 가족들에게 해마다 기일이 되면 알람을 해준다. 그들은 인터넷상에 묘지를 만들어주고, 가족들이 제사 지내는 사진을 찍어 올리면 열 번째가 될 때 신청자가 기탁해놓은 현금을 유가족에게 돌려준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던 중, 눈 깜짝할 사이에 모르는 할머니의 사진이 모니터를 점령한다. 전산오류다. 이거 절을 마저 해야 하는 건가?
제사를 지낸다는 건, 떠난 이를 기억한다는 뜻일 게다. 그 과정에 수많은 까다로운 절차와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업체의 알람을 받고 인터넷상의 무덤에 절을 한다는 것은 ‘제사’라는 의식의 본질을 완전히 전도시켜 버린 것 아닌가. 그런데 뭐,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은 또 얼마나 있겠는가. 어차피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 돈으로 그 기회를 산 것이다. 가족들은 기탁금이 얼만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년간 의무감으로라도 고인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모든 게 다 가짜라 해도 모르는 사람 무덤에 절을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혹은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기억되기에 적절한 방법을 물색하자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서춘식은 그런 사람이었다. 매일 만선으로 돌아오는 선장처럼 큰 소리를 치지만 정작 가족들에게 남겨놓은 건 빚 독촉장뿐인. 그러다 아들의 결혼식에도, 아내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고 오랜 세월 가족과 연락을 두절한 채 홀로 나이든 노인. 그리고 이 가족들이 다 그렇다. 다들 그런저런 각자의 이유로 외로워한다. 기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연들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평범한 외로움들을 정색하고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세상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는데 몰랐지? 하면서 눙치고 말을 건다. 그리고 이야기의 외연에 자그마한 프레임이 하나 들어온다. 무대는 폭이 3m 남짓 되는 모빌하우스다. 관짝 같기도 하고, 고립된 쪽방 같기도 한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탈출구는 없다.

“어떻게 보면 아주 전형적인 인물과 대화들인데, 요행을 바라거나 재기를 부리지 않고 그 이야기를 성실하게 밀고 나가는 지구력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떤 소재나 상황을 쉽게 소진시켜 버리지 않는다. 그간 연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숨기는 방식, 그러니까 말하자면 관객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새로 시작하는 기쁨을 찾도록 만드는 방식을 추구해왔던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새롭게 도전해 볼만한 요소가 많다.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으니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적절한 선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인데, 원래 대본보다 더 리얼하게 판을 짜놓고 거기에서 웃음을 찾아보려고 한다.”- 연출가 민새롬

2012년 <그게 아닌데>로 우리 연극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이미경 작가는 지난 ‘봄작가 겨울무대’에서 민새롬 연출의 작품을 보고 이 대본을 건넸다. 무대가 시각화되는 방식, 연출을 비롯해 스태프들이 작가의 글에 섬세하게 파고들어 공들인 흔적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민새롬 연출은 그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왔던 극단 이루에 이 작품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작품 역시, 무대에서부터 영상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요소들과 배우들의 정감어린 연기가 어우러져 이 외롭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 견딜 수 없이 부조리한 현실에, 관객들을 던져놓는다. 바로 그 정직한 극작과 연출, 그리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조화는 지금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볼 수밖에 없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진짜로 바뀐 건 무덤이 아니다. 웃자, 그리고 어서, 기억되기에 적절한 방식을 물색하자.

기억되기에 적절한 방법을 물색하자

[사진: 극단 이루 제공]

무덤이 바뀌었어요 포스터

일시
12월 5일~12월 14일, 평일 8시, 토 3·6시, 일 3시, 쉬는 날 없음
장소
선돌극장
이미경
연출
민새롬
출연
박상종, 조주현, 최정화, 나종민, 하지웅, 이세영
문의
02-747-3226

태그 극단 이루,무덤이 바뀌었어요,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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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57호   2014-12-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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