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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작’하는가 - 이 시대 연극을 위한 불친절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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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이름이 ‘시작’이다. 그런데 그 ‘시작’의 풀이가 조금 색다르다. ‘시작’을 이야기하기엔 모두 서른을 넘겼다는 거다. 그것은 始(처음)라기보다 時(때), 視(보다), 혹은 試(시험하다)를 뜻하고, 作(짓다)이면서 酌(술 따르다)이고, 또한 灼(불사르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始作’은 누군가(누구? 젊음?) 독차지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언제고 누구든 시작이라 말할 수 있으되, 왜 시작하는지가 중요하다. 그 무언가의 시작 전엔 반드시, 바로 그 시작하려는 무언가가 결여된 전사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그것은 이번 프로젝트와 그 이후의 행보가 증명할 것이다. 하여 궁금증은 다른 곳을 겨냥한다. 당신들은 ‘왜’ 시작하려고 하는가?!

(어쩌면 독자들에게는 이 글이 꽤나 낯설고 불친절한 가이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그 어떤 생경함이나 이물감이 여러분을 극장으로 안내하길 바라며 감히 이 글을 쓴다. 부디 이 시대 연극의 생생한 단면을 목격해주시길!)

AYAF2014 <시작>

서로 다른 다섯, 공동 기획

AYAF는 ARKO Young Art Frontier를 뜻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젊은 예술가 지원 사업이다. 2014년 연극 부문 선정자들인 김명환, 이은서, 임지민, 윤혜숙, 전성현 다섯은 ‘연극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각자의 작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했지만, 그리고 그 누구도 이들에게 모임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서로 모여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공통의 화두나 담론을 구성해보려는 시도를 애초에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정향을 굳이 하나로 모을 필요가 없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은 그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다른 목소리들을 듣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함께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이것이 ‘시작’임은 분명하다.

그들 각자의 세계, 연극에 답하다

이렇게 해서 지난 2014년 말, 김명환의 <개똥벌레>가 무대에 올랐고, 1월 첫 주 이은서의 <반야삼촌>이 공연되었다. 공연의 프로그램북에서는 김명환을 '나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로, 이은서를 ‘삶의 시간 속에 스며있는 여러 가지 노동의 본질을 탐험’하려는 자세로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세 명의 창작자가 그들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 이 짤막한 공연 소개는 그들이 무엇을 시작하려 하는지 지극히 표면적인 이야기만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왜’를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AYAF2014 <시작>

임지민 <타이니슈퍼맨션>

이 공연은 무대에 영상을 들여온다. 최근 얼마나 많은 연극들이 영상을 활용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연극이라는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지 새삼스러운 논의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임지민은 영상을 빌려오면서도, 연극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무대에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 다른 매체를 이용해 오히려 소위 ‘아날로그’로 대변될 수 있는 연극만의 힘을 강조하려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전기와 가스가 끊어진 반지하방에서 건전지에 의존해 살아가는 송화. 광고 공모전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헤르만 헤세의 『아우구스투스』를 읽던 그에게 새로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그 속에서 영상은 연극을 자극하고 우회하면서 무대 위에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윤혜숙 <작은문공장>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극은 다양한 양상으로 그 몸을 달리해 왔다. 그저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바꾸었다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변신을 거듭한다 한들 영원히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가 연극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윤혜숙은 바로 이 무언가에 집중한다. 기술의 발전과 그에 힘입은 가치 체계의 전환, 이에 따라 무대에 등장한 여러 가지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내면 종국에 연극은 배우의 몸과 말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 마침내 배우의 몸과 말이 이야기를 만나고, 오브제를 만나고, 빛과 소리를 만난다. 이러한 시작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장악하거나 이것이 저것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과 다르다. <작은문공장>에서는 연극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를 침투한다.

전성현 <174517>

연극은 더 이상 현실의 스펙터클을 재현해낼 수 없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재난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는 시지각을 동원하는 모든 예술이 스펙터클을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적 연극에서, 혹은 연극적 현실에서 작가로서의 전성현은 언어로 돌아온다. ‘전통적인 희곡의 모든 요소를 전복시키는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그는 이 시대 재난을 불안정한 언어로서 길어 올린다. 물에 잠긴 어느 도시, 지배하는 인간과 지배당하는 인간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이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작가는 이 공연을 무대 위에 빚어낸 가상의 재난에 대한 사고실험이라고 밝힌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가설을 세우고 이 실험을 세팅했을까. 예술을 통한 사고실험이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가설이 되어야 할 것이다.

AYAF2014 <시작>

우려했던 대로, 역시나 이렇게 짧은 소개만으로는 이들이 ‘왜’ 시작하려 하는지 도통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 젊은(!?) 예술가들이 동시대 연극 풍광을 꽤나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인 듯싶다. 현실의 연극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러한 현실 연극의 지형도 속에 나의 연극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쩌면 ‘왜’라는 집요한 질문의 답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지금 우리의 연극 현실을 방증한다. 그러니 이들의 시작을 지켜볼 수밖에. 당신들의 시작을 응원한다.

[사진: Play For Life 제공]

AYAF2014 <시작> 포스터

김명환
<개똥벌레> 2014.12.24~2015.1.4 정보소극장
이은서
<반야삼촌> 1.3~6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임지민
<타이니슈퍼맨션> 1.10~14 충무아트홀 소극장
윤해숙
<작은문공장> 1.16~31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전성현
<174517> 1.23~2.1 정보소극장
문의
Play for Life 010-2069-7202


※ AYAF는 ARKO Young Art Frontier의 약자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35세 미만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여 창작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공연예술분야의 차세대 예술인력을 육성하는 사업입니다.

태그 AYAF2014 <시작>,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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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59호   2015-01-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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