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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극이어야 합니까? - 이 시대를 위한 불친절한 연극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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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연출들에게 두 가지 공통 질문을 던졌다. 일정상 연습 현장을 직접 찾지 못해 인터뷰는 메일로 진행되었지만, 이들은 몹시 진지한 답변을 보내주어 애초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왜 연극이어야 합니까?” 사실은 누구에게든 아무렇지 않게 저런 걸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쉽게 물어보는 만큼 쉽게 돌아올 대답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었다. 아니, 실제로는 없었을 테지만, 마치 그 대답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여, 이제는 작정하고 다시 물어야겠다. 왜 연극이어야 합니까.

(지난 호에 이어 신진 연극인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연달아 소개하게 되니 무의식적인 자기복제에 이어 의식적인 거부로서의 글쓰기 욕구가 길항한다. 결국, 동시대 자신의 무대를 찾아가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일에 ‘왜’라는 의문을 표하는 것으로 두 기사를 느슨한 기획으로 묶는다. 그 타당성은 역시나, 극장에서 확인해주시길!)

2014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

지금 그들에게 포착된 현실

<뉴스테이지>는 서울문화재단의 연극 분야 지원 사업을 정비해 2014년부터 서울연극센터에서 새롭게 시작한 젊은 연출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선정된 세 명의 연출가들은 7개월여에 걸쳐 멘토링과 워크숍 등을 통해 작품을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해나갔으며, 지난 11월 낭독회를 마침으로써 작품의 무대화 계획을 최종 점검했다.
그런데 이 세 작품이 공모라도 한 듯이 현실을 포착하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정서도, 표현 방식의 농도도 완전히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현실에 필사적이다’. 현실을 자각하고 인식하고 해석함에 있어 어떤 결연함이나 절박함이 느껴진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필사적이 되기엔 심하게 피곤하지 않은가?

아이는 세상이 궁금했고, 자신이 궁금했다
이래은 <날개, 돋다>

세상과 단절된 채 열다섯이 된 아이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켈트족의 ‘셀키’ 설화와 우리 전통의 ‘선녀와 나무꾼’, ‘아기 장수’ 설화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어느 깊은 산골에 사는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 네 명의 이야기꾼들이 펼쳐놓는 소녀 연이의 나날들은 인형 오브제와 음악들로 채워지고, 무대는 관객들의 상상에 따라 높은 절벽과 폭포, 숲을 넘나들며 이야기에 여백을 만든다. 배우들의 몸과 호흡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으로, 열다섯 아이의 감각을 구현하기 위해 빠른 전환을 활용한다.

“나에게 현실은 내 무력함과 무능함을 새삼스레 확인시켜주는 곳이다. 시야가 넓어져 더 많은 것이 보일수록, 나이가 켜켜이 쌓일수록, 삶의 근육이 붙어갈수록, 나의 변화와 성장이 무색해질 만큼 더욱 혹독해지는 게 현실이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이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걸 알았고,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닥에 닿아야만 올라올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또한 내가 모르던 내 안의 힘,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을 지긋이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공포를 견디며, 스스로가 너무 싫어 어쩔 줄 모르던 사춘기 당시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그 경험과 감각들을 통해 지금의 나를 본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뭔지 모르겠어’라고 외치며 결국 자신과 만나게 되는 열다섯 아이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나 보다.”- 연출가 이래은

2014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

여기가 제일 안전해, 진짜라니까
김수정 <안전 가족>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밖의 무시무시한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스 감독 지오르고스 란디모스의 영화 <송곳니>를 각색한 이 작품은 부모가 만들어낸 규칙만을 진리로 믿고 살아가는, 무려(!) 이십대의 세 남매를 통해 안전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까발린다.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을 빗댄 이야기는 아무 무리 없이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어느 한 가족의 비밀로 변주되고, 건조한 카메라의 시선이 영화를 지배하는 자극이었다면, 이곳 극장에서는 미처 숨기지 못한 진실들이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현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총체적 난국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생각에 공감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 총체적 난국의 상황 속에 너무나 당연하게 남들이 선택하는 것들을 나 또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스스로가 불쌍하고 어이없게 느껴졌다. 나는 누구이며 왜 그런 선택들을 하려고 하는가? 그런 선택들이 나의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가? 나의 삶,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 물음들은 결국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규칙을 벗어나, 불편한 현실의 진실을 바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여기 이 작품의 인물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연출가 김수정

2014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

X망한 세계에서 X망한 이야기
구자혜 <디스 디스토피아>

언제부터 디스토피아였는지 알 수 없는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물론 세상에 (대항이 아니고) 적응하는 방식은 대를 거듭하면서 진화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디스토피아 어딘가에, 태어났지만 계속해서 거부당해야 했던 ‘언저리 아이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작품은 각각의 세대들을 만날 듯 만나지 않게, 혹은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처럼 엮어가면서도 ‘가족식사’라는 상징적인 장면을 삽입해 그들의 부딪힘을 잡아낸다. 감각적으로 쓰인 대본이니만큼 기존의 논리나 익숙한 재현의 방식을 벗어나, ‘그 무엇도 가능한 디스토피아’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이 대본은 7년 전 광우병 소고기 수입 파동과 그에 따른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썼다. 당시 연출 수업을 듣던 나는 모두가 광장에 나가 있는데, 책상에 앉아 연극을 배운다는 것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작품의 기본 뼈대는 당연히 망한 세상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대본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나와 함께 변해왔다. 문제는 결국 인간인데, 연극을 하면서 세대 간의 소통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에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메인스트림이 되고 싶고 선생님들처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혁명의 에너지는 전달되지 않았는데 꼰대질만 전승된 것 같았다. 그리하여 결국 이것을 세대 간의 이야기로 가져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앞 선 세대를 부정하지만 결국은 앞 선 세대가 되어버리는 것이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연출가 구자혜

[사진:각 공연 팀 제공]

2014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

일시
1월 22일~2월 8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이래은
<날개, 돋다> 1.22~1.25 (문의: 02-2278-5741)
김수정
<안전가족> 1.29~2.1 (문의: 010-2727-9840)
구자혜
<디스 디스토피아> 2.4~2.8 (문의: 070-8276-0917)

태그 서울연극센터,유망예술지원사업,뉴스테이지,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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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60호   2015-01-2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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