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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향해 곡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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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13년 <불령선인>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통치를 따르지 않던 조선인들을 부르던 말이었다. 그런데 2015년 다시 공연되는 작품은 <불량청년>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이해성 연출은 당시 공연이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다소 진지하고 엄중했다면, 이번에는 동시대 젊은 관객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감각을 고민하고 있다고 그 맥락을 설명한다. 그땐 작품의 제목이 주는 분위기 자체가 좀 무거웠는데, 이 시대에 맞게 재미있는 느낌을 좀 더 살려보고 싶었다. 의미적으로는 ‘불령선인’이나 ‘불량청년’이 별반 다르지 않고, 그렇다면 이 시대 불량청년이라는 말이 어떤 이들을 일컬을 수 있을지 질문하고 싶었다. 실제로 ‘불령’은 사전적으로, 원한, 불만, 불평 따위를 품고서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함을 뜻한다. 불과 1년 반 남짓 사이, 우리에게 불량청년은 어떤 의미가 되었는가? 질문은 더 독해질 수밖에 없다. 불령은 정말 불량한 것인가?

극단 고래 <불량청년>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

2015년 현실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28세의 취업준비생 김상복은 동상 알바를 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불령선인을 사랑하는 모임’에 참여한다. 이날 모임에서는 당시 일본 식민통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후 자결한 김상옥 의사를 기리기로 되어 있었고, 상복은 가짜 수염을 붙이고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동상처럼 서 있는 알바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을 쓰면서 나도 김상옥이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런데 마침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김상옥 의사의 동상이 있다는 것 아닌가. 내가 20년 동안 연극을 하면서, 그렇게 수없이 이곳을 지나다녔는데 저 동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이게 우리의 현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 이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세울 수 있었다.

그와 그의 만남

그런데 상복은 온갖 목소리들이 길항하는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최소한의 공권력’인 물대포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김상옥 의사가 활약하던 바로 그 시절로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국가나 민족 같은 것에 체질적으로 두드러기가 난다던 상복이 1921년부터 1923년 사이 만주와 상해, 경성을 넘나들던 김상옥과 더불어 조선의 독립을 위한 험난한 투쟁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묻혀 있고 소외받은 아픔들에 관심이 많다. 실제 사건과 인물들의 고통이 나한테 맺혔을 때 그것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것들을 다룰 때에는 동시대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광장은 모든 벽을 허물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변해가고, 또 저기서 여기로 넘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현재의 평범한 젊은이를 역사적 인물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극단 고래 <불량청년>

시대를 넘고 이야기를 넘어

연극은 쉴 새 없이 시대를 달려간다. 의열단의 투사들을 비롯해 임시정부의 주역들을 무대로 소환하고, 이야기는 상해 황포탄에서 일본육군대장 저격을 감행한 것으로부터 종로경찰서 폭탄 투하에 이르기까지 조선 독립운동의 한 축을 횡단한다. 하지만 준열한 의미를 담아내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다양한 즐길 거리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것이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다. 지금의 과제는 동시대 관객들이 이 얘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루하고 청승맞다 느끼는 순간 관객은 도망가게 마련이다. 그럴 바엔 이런 작품을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지치지 않고 이 얘기를 잘 따라와 관객들이 어떤 울림을 받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체 미장센과 템포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춤과 노래, 액션에 이르기까지, 질문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감각들을 살리고 싶다.

연극의 종반부, 김상옥 열사가 자결하면 멀리서 숨죽이고 있던 군중들이 하나둘 그곳으로 모여든다. 그리고는 서른 명에 가까운 출연진들이 객석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곡을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위대한 공적을 세운 독립투사는 물론이거니와 그저 마음으로 그들을 지지했던 여기 이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바로 100년 전 일제에 의해 불령선인이라 불렸던 이들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향해 곡을 하고 있는가, 혹은 누구를 등지고 불량해지려 하는가. 누군가 우리를 불량청년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한사코 그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4월, 모두가 죄인이 되고야 마는 시절이 돌아왔다. 가만히 견디고 싶지 않은 아픔으로, 이 시대 모든 불량청년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극단 고래 <불량청년>

[사진: 극단 고래 제공]

극단 고래 <불량청년> 포스터

일시
4월 23일 ~ 5월 3일 평일 8시(월요일 공연 있음), 토 4시7시, 일 4시
장소
대학로 자유극장
작·연출
이해성
출연
이대희, 유성진, 레지나, 송재연, 지춘성, 선종남, 전형재, 정원조, 이소영, 김지현, 이운호, 박현덕, 허지행, 신장환, 이명신, Anupam, 정인겸, 최준수, 홍철희, 최은진, 김동완, 변신영, 이현정, 장원경, 최지숙, 이송이, 유민경, 이사랑
문의
070-8261-2117

태그 극단 고래,불량청년,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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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66호   2015-04-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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