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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같은 불행 속에 살아서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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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물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여기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다. 이곳에는 남편이 죽자 앞으로 8년간 상을 치를 테니, 울음소리도 목구멍으로 삼키라고 명령하는 베르나르다가 산다. 그녀의 다섯 딸들과 여든의 어머니, 그리고 그 집에서 30년을 일해 온 하녀가 영위(!)하는 일상은 ‘아직까지는’ 평온하다. 굳이 ‘영위(!)’라는 표현을 쓴 것은, 명백히 이 작품의 연출 방향과 관계가 있으니, 김정 연출은 이들이 사는 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밖에서 봤을 땐 답답해 보이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편안하다고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웃고 떠들고 소란스럽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조용하고 차분한 상태로 되돌아온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언제까지나’ 그러할지는 이제 차차 생각해볼 문제일진대, 애석하게도 그 대답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나를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그 보편적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작품 기저에 깔린 특유의 사회상으로 인해 지금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로 읽히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 베르나르다는 스무 살에서 마흔 살이 다 된 다섯 딸들을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 가두어 두고 자그마치 8년간이나 혼숫감에 수를 놓으며 살도록 했다. 원작의 청교도적인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러워 처음에는 이 부분을 전면적으로 각색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정해진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의 교리처럼 되어 버려서 원작으로 다시 돌아와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를 억압하는 속박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는 것이며, 그런데도 속 시원히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불행한 것 아닌가, 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은 극 초반 원작의 꽉 찬 긴장을 편안히 내려놓으며 무대를 연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질투나 상실감 등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자꾸만 주저앉고 마는지 그 비극의 실체를 파고든다.

극단 물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그 사람의 눈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 사람의 피를 마시고 있는 것 같아”

그러던 중, 새하얗게 표백된 건조한 생기에 사로잡혀 있던 바로 이 집에 금지된 욕망이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그저 물려받을 유산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가장 매력적인 청년 로마노가 늙고 병약한 첫째에게 청혼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있던 막내 아델라는 마침내 언니들을 배신하고 어머니에게 반역하며 자신의 것을 찾아 나서려 한다. 거대한 이야기와 상징에 계속해서 내가 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간 쓰고 있던 탈을 벗어 던지고 큰 인물로서의 아델라가 나오는데 그게 나한테는 전혀 없는 면모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인물로 느껴져 거리감이 생겨났다. 물론 로르카는 이 작품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표현하라고 썼지만 한편으로는 작품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툭툭 튀어나오는 시적인 표현들도 나를 때렸다. 굉장히 작고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인데도 이 사람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라고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선택의 사이

무대에는 별다른 세트 없이 각각의 인물들을 위한 의자가 들어온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수를 놓거나 바느질을 하는 자매들을 위한 도구다. 그리고 레이스 커튼과 그 사이사이를 일렁이는 실루엣은 이 집안사람들이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경화한다. 그것은 감시라기보다 우리가 같은 불행 속에 있다는 것으로부터 얻는 위안에 가깝다. 정해진 테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어디가?’ ‘앉아’ 라고 하면서 이탈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몹시 잔인하지 않나. 스스로가 나가지 못하니 나가려고 하는 자를 잡는다. 그러면서 난 여기가 좋은데 왜 다른 자유를 강요하지? 라고 되묻는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와 나가려는 의지가 팽팽하게 맞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질서를 파괴한 자에게 당겨진 방아쇠는 목표물을 바로 겨냥하지 못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델라와 막내딸의 죽음 앞에 끝끝내 침묵을 강요하는 베르나르다가 아직 이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 물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이 작품은 극단 물리가 내놓는 6년만의 신작이면서 젊은 연출가 김정의 첫 연출작이다. 한 차례 런쓰루를 보고 난 후 연출 인터뷰를 하면서 ‘물리’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고 얘기하니,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한태숙 선생님이 연습 보러 오셔서, 왜 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하고 있니, 하셨어요. 물론 ‘물리’의 작품 같다는 얘기에는 쉬이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섬세한 결들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지만,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그 정조(情操)는 직접 마주해봐야 알 수 있는 그야말로 ‘물리’만의 것이어서, 애써 가난한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로르카의 비극, 우리 연극계를 대표하는 8명의 여배우들이 그려낼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가 지금, 여기의 숨 막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정말 다행인가, 우리가 이 비극 속에 함께 있어서?

[사진: 컬쳐버스 제공]

극단 물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포스터

일시
6월 18일~6월 28일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있음
장소
아름다운 극장
원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연출
김정
출연
박성연, 강애심, 서경화, 이봉련, 황순미, 최아령, 이지혜, 전지혜
문의
070-8276-0917

태그 극단 물리,베르나르다 알바의 집,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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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70호   2015-06-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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