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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 어느 세 자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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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덮어두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한 번 입은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어떨까. 사람의 근본을 형성하는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그 트라우마를 쉽게 지우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극 <엄마가 낳은 숙이 세 자매>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일 수 있는 가족 간 상처다. 이번 공연은 가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온 극단 이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엄마가 낳은 숙이 세 자매> 속 어머니인 점순은 치매에 걸렸고, 점순의 남편인 명식은 행방불명 상태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이 상황에 세 자매들은 치매 엄마를 돌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다 말하고 훨훨 날아가겠다는 외마디 말을 던지는 어머니를, 세 자매는 자물쇠로 꽁꽁 묶어둔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는 하릴없이 우주채널 TV에 나오는 끝없는 우주 이야기에 몰두하며 딸들이 모르는 마음 속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지옥 같은 집

“사회적인 시선이 녹아 있는 희곡을 쓸 줄도 모르고 그렇게 가고자 의도한 것도 없어요. 다만 이 이야기의 모티프가 있긴 합니다. 작년에 부천에서 늙은 엄마를 두고 세 자매가 자살을 했던 사건이 있었죠.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딱 그 부분만 모티프로 삼았고 나머지는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상처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 상처 안에 함몰되지 말고 인간의 고통이라는 게 진짜 무엇인지 보자는 의미로 대본을 썼습니다.” -손기호 연출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살게 됐지만 세 자매는 무섭고 폭력적이었던 어머니를 사실상 방치한다. 그나마 어머니와 함께 계속 살아온 첫째 딸이 어머니를 돌보지만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터라 이 돌봄은 그저 습관의 수준에 머물 뿐이다. 둘째 딸은 이혼한 상태로 이를 극복하지 못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배우로 활동하다 일이 잘 안 풀려 집에 돌아오게 된 셋째 딸은 지극히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단절된 관계 속에 덩그러니 몸만 가누고 있는 어머니는 우주채널 TV에 심취하다 급기야 환상에 빠져든다. 이 환상은 다름 아닌 집 나간 남편에 대한 것이다. 어머니의 환상은 남편과 아무런 갈등도 없던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60대, 40대, 30대, 20대 등 역순으로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어머니의 상처는 간접적으로나마 치유된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

집이 배경이지만 무대는 마치 수용소나 동굴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예전에 여인숙을 운영하던 이 집안 사람들은 여인숙을 개조한 후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집이긴 하지만 이곳에는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집 자체가 애욕의 공간이자, 이곳에 옴싹달싹 못한 채 갇혀 버린 인물들의 상황을 상징한다. 남편 외 다른 이에게 성적인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어머니는 이를 알고 있는 남편의 비아냥에 맞서 싸우는 한편,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왜곡된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투사하며 자신의 상처를 알게 모르게 가족들에게 전이시켜왔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지옥 같은 집 속에서 껍데기만 남은 듯한 인물들의 풍경이 이번 공연에서 스산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게 구질구질하고 징글징글한 이야기이다 보니 진행자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상황을 조금 비틀고자 했어요. 또 밖으로부터 부조리한 인물들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여기 이 집이라는 곳은 현실에 있을 법도, 없을 법도 한 공간이 되죠. 밖의 소리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게 굉장히 부조리하게 표현될 겁니다. 집 안에서는 서로 갈등하고 아파하는 등 다루기 힘든 이야기가 나오니까 부조리한 요소들을 중간중간 넣는 방식으로 최대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손기호 연출가

가족 간의 지독한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공연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어머니 점순이 몰두하는 우주채널 TV 속 사회자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사회자는 우리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우주 공간보다 훨씬 더 넓은 우주 공간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끝없이 확장해 나간다. 마치 서사적 인물처럼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공연은 우주가 탄생한 최초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이 이야기에 심취한다. 어머니에게 최초의 시간이란 다름 아닌 아무 기억도 없고, 아무 갈등도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훨훨 떠나고 싶다던 어머니는 이 사회자의 말에 기대 우주로 끝없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마침내 어디론가 사라진다. 세 자매 역시 이런 어머니를 굳이 잡지 않고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으로 공연은 마무리될 예정이다.

제작진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가치 판단을 하는 대신 각 인물들의 마음 속 상처를 세밀히 보여주고 또 그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에 대해 암시하는 식으로 공연을 풀어가고자 한다. 시공간을 넘어서고 싶다는 극단적인 바람 그 자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우주적 관점을 공연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마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처로부터 끝없이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하는 듯하다. 공연 중에는 TV 속 사회자 외에도 지독한 현실로부터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이 외부에서 이 집으로 순간순간 침투할 예정이다. 가족 간 상처의 다양한 궤적들이 마치 우주 풍경처럼 공존하는 가운데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공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극단 이루 제공]

일시
5월 20일~6월 12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 월 공연 없음(6월 6일 3시)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작.연출
손기호
출연
홍성춘, 박지아, 우미화, 조주현, 최정화,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강승호
문의
02-747-3226

태그 우주적 관점, 이루, 숙이,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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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제91호   2016-05-1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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