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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 우리의 맨 얼굴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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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오델로Othello’의 이름에서 ‘Oh the Yellow’를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공연은 제목 그대로, ㅡ어떤 이들에게는 ‘Yellow’로 보이고, 그래서 ‘Yellow’라 불리는ㅡ 우리의 ‘맨 얼굴’을 들추어낸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여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파멸을 자초한 오델로의 옆에는,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장군의 용맹과 덕망을 견디지 못한 협잡꾼 이아고가 있었다. 성북동 비둘기의 <오델로 - Oh the Yellow>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이 작품의 단초를 풀어나간다. 과연 우리는 베니스인들이 무어인에게 던졌던 원작의 차별적 시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무대는 최근 흑인 감독과 배우들의 보이콧으로 논란이 되었던 오스카 시상식의 현장을 차용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된 각종 장르의 영화들로 재구성되었고, 배우들은 연극 <오델로>이면서 동시에 저 유명한 명작 영화들의 전형적인 장면들을 다시 연기한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피부색 같은 건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 그런 문화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

다른 색인가요?

김현탁 연출은 이 공연을 준비하던 ‘어느 날 문득’, 단 한 번도 백인 분장을 한 배우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제껏 그 사실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생경했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때 마침 아카데미 시상식의 인종 차별 논란 기사를 접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몇몇 영화들이 스쳐 지나갔는데, 이를테면 <록키>라는 영화가 그 많은 시리즈를 거듭했음에도, 실베스터 스탤론의 상대역을 맡았던 흑인 배우는 그 누구도 기억이 나지 않는 식이었다. 훌륭한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통해 영화에 기여하지만 영화제는 언제나 그들만의 잔치였고, 실상 우리의 처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들과 완전히 같은 논리로 우리 역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우리는 무슨 근거로 ‘옐로우’와 ‘다크 옐로우’를 구별하는 건가? 흑인과 백인 간에 전개된 치열한 갈등 같은 것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인종차별을 당할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는 일상에서 다른 아시아 사람을 마주쳤을 때 편견을 갖지 말아야지, 라고 의식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공연에는 백인 분장을 한 한국 배우들과 흑인 분장을 한 인도 배우가 출연한다. 피부색이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도 배우가 서툰 한국말을 하듯이 한국 배우들이 서툰 인도말을 하도록 해 차이와 차별을 뒤섞어버리고 판단의 근거에 교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연극은 SF로부터 시작해 시대물, 드라마, 애니메이션, 스릴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영화제의 각 부문별 후보군들을 망라한다. 시상식이니 만큼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하나의 잘 짜여진 ‘쇼’가 흘러가고 물론 축하무대도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가공할 만한 스펙트럼의 장르들을 무대에서 생생히 재현하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한 미션인지라, 애초에 영화제는 연극만의 문법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연극은 아주 간단하고 가난한 소품만으로 각각의 장면들을 외국인 노동자가 근무하는 일터로 둔갑시킨다. SF 영화의 배경은 반도체 산업 현장이 되고, 애니메이션 장면에서는 장난감 공장을 끌어들여 우리의 현실을 되비추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플롯을 유지하면서도 오직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개별 영화 장르의 전형성을 전경화하는 것 또한 이 공연만의 색다른 재미다. 오델로와 이아고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여러 배우들에 의해 교차 구현되며, 그로 인해 각 배역의 대사들은 영화적 상황과 연극적 맥락을 숨 가쁘게 타고 넘는다. 예를 들어 오델로가 이아고의 농간에 넘어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는 장면은 영화 <록키>의 권투 시합으로 그 몸을 바꾸고, 이때 해설과 캐스터를 맡은 두 배우가 이아고와 오델로, 혹은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대화를 번갈아 연기하는 것으로 경기 중계에 긴박감을 더하는 식이다.
원작에 나한테 필요한 장면들이 다 들어 있었다. 구성 자체가 흑백의 역사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흘러가는데, 백인들의 세상에서 흑인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이용되었는지, <오델로>의 스토리를 개별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오델로는 명백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그것이 바로 백인 분장을 한 한국 배우들과 흑인 분장을 한 인도 배우 모두가 분장을 지우고 ‘옐로우’와 ‘다크 옐로우’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차별의 가해자인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 증명하는 장면이 삽입된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현탁 연출은 연극의 모든 요소들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의 즐거움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무언가 하나가 너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혹은 그렇다고 또 다른 무언가를 너무 손쉽게 제거해버리지 않도록, 그 모든 것들을 수공예식으로 맞추고 배치하고 조율해서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가는 연극이라는 작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그의 연극하기야말로 이제까지 관객들을 만나온 ㅡ‘고전의 해체와 재발견’이라는 말로 수식되어왔던ㅡ 모든 성북동비둘기 작품의 좌표를 설명하는 근본적인 원천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탐구와 성찰의 궤적 위에 있다. ‘Othello’가 아닌 ‘Oh the Yellow’의 연극이 이제 시작되려 한다.

[사진: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일시
5월 14일~5월 25일 평일 8시, 주말 3시7시, 월 공연 있음
장소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창안·연출
김현탁
출연
이진성, 성석주, 김미옥, 이헌일, 김혜나, 김민성, 이송희, 김주원, Anupam Tripathi
문의
02-766-1774

태그 맨 얼굴, 성북동비둘기, 오델로,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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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91호   2016-05-1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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