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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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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는 1853년 미국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공연에 대해 쓰려면 우선 어떤 식으로든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으나, 혹여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나 해석이 원작의 풍성하고도 무궁한 의미망을 축소해버릴까 저어되어, 그저 이 ‘이상한’ 이야기를 부디 직접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하여, 여기서는 극단 두비춤의 연극, <필경사 바틀비>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소개하고, 현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논의 또한 이양구 연출의 인터뷰를 빌어 전달하고자 한다. 바로 그 문제의 ‘바틀비’가 드디어 연극 무대에 들어왔다.

* 작품 중 바틀비의 대사인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의 영어 원문은 “I would prefer not to”이며, 연극 <필경사 바틀비>는 창비의 한기욱 번역본을 각색 및 윤색한 것이다.


그는 가장 이상한 필경사였다

‘필경’은 복사기나 타자기가 생겨나기 전 법률 문서 같은 것을 손으로 직접 옮겨 적었던 일을 뜻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변호사는 자신이 지난 30년 세월 동안 보거나 들었던 필경사 중에 가장 이상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바틀비와 있었던 일들을 꺼내놓는다. 원작은 거의 변호사의 사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많은 독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변호사라는 인물을 사회적 자아와 내면의 자아 둘로 나누고 독백을 대화로 바꾸면서 작품을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변호사는 자신을, 젊었을 때부터 편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 확신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당시 형펑법 법원의 주무관으로 일하게 된 그는 크게 증가한 업무량으로 인해 함께 일하던 두 필경사 외에 새로운 일손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때 정말이지 필사에 굶주린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일하는 바틀비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는 것

필사를 하면 응당 그것을 잘 옮겨 적었는지 한 글자 한 글자 원본과 대조해 검증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하고, 대개 한 사람이 필사본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원본을 보면서 그것을 확인하게 마련이다. 헌데 바틀비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로 그 일을 거절했다. 변호사는 지극히 ‘일반적인 관습과 상식에 따른 요청’을 거절한 바틀비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가 필사 외에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사람이고, 그 사무실이 위치한 월 스트리트는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곧 그 시스템에 등록된 주체를 만난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바틀비는 거기 등록되고 싶어 하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던 중 주말 오전 우연히 사무실에 들른 변호사는,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바틀비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고 그의 고독에 크나큰 연민을 느낀다.

인간의 문제

오래 전부터 꼭 연극으로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느끼는 재미의 실체가 뭔지 궁금해서 각색하고 연습하는 과정에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지젝, 아감벤, 라깡 같은 철학자들이 바틀비를 주목했던 것은 이 인물 자체가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시에 등록을 거부하면 무너지는 사회, 그게 지금 우리의 현실인데 여기 등장하는 변호사는 한번도 자기 삶을 의심해보지 않았던 인물이다. 바틀비는 그걸 깨뜨리고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칼뱅과 관련한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의 엄격한 태도나 어두운 폐쇄성 같은 것들을 다시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질서에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바틀비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 이면에서 관행과 상식에 입각한 요청을 끝까지 거부하는 일종의 독재성 같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연극으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아, 인간이여”라는 작품의 마지막 대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어쩌면 변호사와 바틀비 두 인물이 어떤 양 극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그로 인해 만들어진 법과 윤리, 관행에 따른 당연한 책무와 요청들로부터 도망가는 건 불가능하다.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그 관계망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원작에도 바틀비가 대서양 한가운데 떠있는 난파선 조각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현실에는 그 모든 관계를 거부한 바틀비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렇게 소멸해가는 바틀비와 그것을 지켜보는 변호사,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이다.

<필경사 바틀비>는 서울시극단 시민연극교실 출신의 문일수와 이상홍이 창단한, 극단 두비춤의 여섯 번째 정기 공연이다. 바틀비의 ‘창백할 정도로 단정하고 애처로운 기품, 치유할 수 없는 고독’은 이상홍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고, 하필이면 그런 바틀비를 만나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게 된 변호사는 문일수가 연기한다. 이밖에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변호사가 처한 갈등과 혼란을 가시화하는 존재로서 변호사의 내면은 양정윤이, 12시를 전후로 돌아가며 ‘발작’을 일으키는 두 필경사 터키와 니퍼즈, 그리고 사환 아이 진저 넛 역할은 최요한이 맡는다.

[사진: Play For Life 제공]

일시
5월 26일 ~ 6월 5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연우소극장
원작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작/연출
이양구
출연
이상홍, 문일수, 양정윤, 최요한
문의
010-2069-7202

태그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두비춤, 필경사 바틀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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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92호   2016-05-2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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