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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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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찾아나서는 해적들의 이야기란 지금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곳의 일상으로부터 실로 멀고도 먼 판타지처럼 여겨지게 마련이다. 낡고 해어진 지도, 미지의 섬, 이국의 풍경, 온갖 신비와 모험으로 가득한 여정… 그리고 마침내 움켜쥐게 될 보물! 어린 시절 우리가 읽었던 『보물섬』은 이렇듯 화려한 수사들을 동원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부추기는 모험소설이었다. 아직은 그들이 살아갈 진짜 세상을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들은 그 낯선 여행을 동경했고, 숨겨진 바다의 보물이 온전히 자기 차지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머리가 커진 아이들은 매일매일의 치열한 전투를 통해 인생을 배워갔고, 해적과 보물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모두의 기억 속에 희미해졌다. 연극 <보물섬>은 바로 이 익숙하게 포장된 ‘보물섬’의 이미지를 ‘보편의 함정’으로부터 구해내고, 한 소년의 성장 서사시를 다시 써내려간다.

어른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

스코틀랜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81년의 일이다. 의붓아들이 그린 가공의 지도를 보고 아이들을 위한 모험소설을 쓰기로 한 그는, 장장 17주간에 걸쳐 어린이 문학잡지 『Young Folks』에 이 이야기를 연재한다. 19세기는 해적을 다룬 소설들이 그 인기의 정점을 구가하던 시대였고, 『보물섬』 역시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크게 호평 받으며 작가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주게 된다. 이후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해적 이야기들이 영화와 연극,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시 태어났고, 오래지 않아 『보물섬』은 대중문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해적 이미지의 강렬한 원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는 동안 원작의 주된 서사로서 한 아이의 성장 과정에 주목하는 이들은 점차 사라져갔고, 연출가 이대웅은 바로 여기서, 지금 이 시대 연극 <보물섬>을 올리는 것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이 소설을 떠올려보면 실상 그 내용이나 메시지보다 이미지들이 먼저 소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스티븐슨은 <지킬 앤 하이드>의 작가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보물섬』이야말로 그의 손꼽히는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항해나 보물찾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많은 챕터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낭만과 모험을 넘어, 호킨스라는 아이가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과정을 통해 이르게 되는 깨달음, 가치관의 변화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지금은 원작 텍스트를 두고 이리저리 변주해가면서 계속해서 의도적인 실패를 해나가고 있다. 이야기를 압축하기보다는 오히려 짧은 장면들을 확장해가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 소설의 내러티브를 어떻게 연극적 플롯으로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파도를 타고 극장에 닿았다

연극은 이야기 전개에 따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구현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보여줄 예정이다. 배우들이 몸과 소리의 앙상블로 장면을 구성하는가 하면, 극장의 메커니즘을 활용해 스펙터클을 강조하기도 하고, 인물의 내면을 전경화해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다가도,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린 드라마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품에는 가히 뮤지컬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노래와 음악이 삽입되며, 그 어떤 직접적인 대사보다도 생동감 있는 노랫말이 텅 빈 극장을 망망대해의 격랑 속으로 밀어 넣는 동안, 음악은 배를 섬으로 둔갑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가 총격전의 결과를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하는 등 무대의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음악감독 옴브레와는 이전 작업들을 통해 시도해왔던 것들이 있는데, <보물섬>에서 그것을 보다 확장해보려고 한다. 우리끼리의 문법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중들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 있다. 무대는 이전에 이 작품을 공연화한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여러모로 고민한 결과, 그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 공연에서 극장은 관객들의 상상을 도와주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그럴듯한 배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보다는, 자유소극장 전체를 활용해 출입구, 발코니, 리프트 등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쓸 생각이다. 영상 또한 단순히 배경을 제공하거나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객석과 무대를 연동시키는 방향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소년 짐 호킨스는 결국 어마어마한 보물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제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확인할 시간. 애초에 함께 보물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사람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 사이 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이대웅 연출은 원작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가면 갈수록 이 소년이 맞닥뜨려야 했던 비극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진정한 삶을 획득하기 위한 희생, 그것은 결코 쉬운 산수로 환산 가능한 물질적 가치가 아닐 것이다. ‘보물섬’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용기와 지혜 그 이상의 것이었다. 하여, 그 모든 ‘진짜’ 모험을 거친 소년이 집으로 돌아갈 배에 오르고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 ‘진짜’ 미지의 인생으로 들어간다.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일시
7월 26일~8월 28일 화목금 8시, 토 3시7시, 수일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작
로버트 루이슨 스티븐슨
각색
김세한
연출
이대웅
출연
김진곤, 김도완, 한인수, 김상보, 유승락, 정현철, 배보람, 김호준, 황의정
문의
02-580-1300

태그 인생, 소년, 예술의 전당, 보물섬,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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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96호   2016-07-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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