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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극을 보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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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찰스 린드버그는 33시간 30여분 만에 뉴욕에서 파리까지 무착륙 단독 비행에 성공한다. 인류가 이룩해낸 기술의 혁신은 실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앞으로의 사회가 더욱 빠르게 진보해나가리라는 믿음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낙하산조차 싣지 않은 채 하루가 넘는 시간을 꼬박 비행기 조종간에 매달렸던 한 인간의 도전 정신은 전 세계를 열광시켰고, 그렇게 그는 위대한 인간 승리의 역사를 완성하는 듯 보였다.
이에 고무된 브레히트가 자연의 법칙과 육체적 한계에 맞서 싸운 인간을 그려낸 라디오극 「대서양 비행횡단」을 발표한 것은 1929년의 일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을 통해 비행에 실패하고 추락한 비행사를 무대에 세움으로써 기술이 진보한 사회에서 인간이 처하게 된 위기와 재앙을 경고한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창단공연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는 브레히트의 이 두 작품을 경유해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질문한다.

우리는 돕지 않습니다, 우리는 요청합니다

제목이 ‘학습극’인 만큼 브레히트의 원작은 보고와 조사, 관찰, 해설, 동의를 거쳐 ‘과연 인간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지’ 묻고 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음은 비행 도중 추락한 비행사와 정비사들이 군중에게 물과 담요를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우리를 도운 적이 없는데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만 할까? 기술은 진보했으나 빵 값은 싸지지 않았고, 인간은 인간을 학살했으며, 도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폭력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할까?
브레히트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에게 “죽으세요, 하지만 배우세요. 배우세요, 하지만 틀리게 배우지는 마세요”라고 일갈하며 내어놓고 포기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어떠한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맞서겠다는 ‘동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파한다. 하지만 죽음을 코앞에 둔 비행사는 한때 하늘마저 정복했던 자신의 능력과 성취에 고무되어 최후의 순간까지도 스스로를 내려놓지 못했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세계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하고 만다.

연극의 현실, 현실의 연극

브레히트가 꿰뚫었던 당대의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세상은 좀 더 혹독하게 우리를 소진시킨다. 하여 연극을 보면서 사회를 학습하고 삶을 학습하는 일은 여전히 퍽 유효한 일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혹은 오히려 연극 그 자체를 학습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은 브레히트를 보다 가깝게 우리의 현실로 끌어안는다.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해 영상으로 제시하는가 하면, 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불쑥 마이크를 쥐고 그들 각자의 일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연출가 임형진은 그에게 있어 연극을 한다는 것이 결국 삶 자체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돌아보는 것임을 강조한다.
예술과 삶은 유리된 게 아닌데,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극장을 나서는 순간 연극이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때문에 연극을 보는 동안 결코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극장 밖에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방식으로서 다큐멘터리를 지향한다. 브레히트는 오늘날 더욱 필요한 연극이다. 자본이 무기가 된 시대, 브레히트는 우리가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질문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 순간, 관객들로 하여금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실을 대면하게 만듦으로써 또 다른 맥락에서 브레히트를 뛰어넘어 보려고 한다.

음악이 아닌 소리가 들린다

이 작품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음악적인 것들이 건드리는 낯설고도 이질적인 감각이다. 우선 작품 전반의 정조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음악으로서, ‘Die Moritat von Mackie Messer’가 라이브로 연주된다. 이 곡은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 도입부에 쓰인 것으로, 살인자 맥키 메써의 온갖 악행을 담은 가사와는 대조적으로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에서는 종교음악의 오르간 소리가 성스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하늘을 날고 추락하고 죽어간다. 하지만 소리는 이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 그 자체의 기능을 통해 객석을 자극한다.
소리는 말이 필요 없이 보이지 않게 관객들에게 정서를 침투시킨다. 소리의 서사가 아닌 현상을 통한 수행인 것이다. 처음에는 멜로디로 정서를 쌓아가다가 소리의 색깔, 즉 음향이나 울림을 키치적으로 변주한다든지, 고급스러운 육성을 담아내다가도 과장된 기계의 소음이 튀어나오게 만든다든지 하는 식이다. 물론 관객들 각자가 소리에 대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매 순간 소리로 인해 감각하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분명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소리를 만들고는 있지만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여전히 수행적이며, 연극을 통해 이러한 소리의 실험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싶다.

‘철학하는 몸’은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머리와 몸의 연동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실제 이 작품의 배우들은 대본을 손에 쥐기까지, 무수한 리서치와 토론을 통해 브레히트 당대의 사회상과 우리의 현실을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양손에 아령을 들고 팔을 좌우로 나란히 한 채, 온갖 악천후와 졸음을 이겨가며 마침내 비행에 성공한 배우가 있다. 이제 막 프롤로그 한 장면이 끝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그 배우가 가쁜 호흡으로 객석을 향해 묻는다. 왜 이 중요한 시간에 연극을 보러 왔느냐고.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느냐고.

[사진: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제공]

일시
8월 11~21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공휴일 3시
장소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
베르톨트 브레히트
각색·연출
임형진
출연
오다애, 박보현, 이주형, 김다미, 김지원, 김세원, 허자영, 박재희, 천수정
문의
02-946-0108

태그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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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97호   2016-08-04   덧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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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현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공연너무 기대되네요!!

2016-08-04댓글쓰기 댓글삭제

바둑이네 뒷집은 참기름집
글을 정말 잘 쓰시는 듯. 간만에 관심이 막 생기네요. ^^ 극단명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6-08-05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지원
마지막 문장이 참 좋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016-08-05댓글쓰기 댓글삭제

박현규
뭔가 새로울 것 같은 공연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6-08-05댓글쓰기 댓글삭제

lullu
감사합니다~~!! 철학하는 몸 화이팅 힘힘

2016-08-05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시연
공연 보러 갈게요 글 좋습니다!!!

2016-08-05댓글쓰기 댓글삭제

포크랜드
어떤 공연일지 관심이 가네요ㅎㅎ 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2016-08-06댓글쓰기 댓글삭제

포크랜드
어떤 공연일지 관심이 가네요ㅎㅎ 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2016-08-06댓글쓰기 댓글삭제

이소라
브레히트 참 좋아하는데 많이 기대가 되는 작품이네요ㅎㅎ

2016-08-06댓글쓰기 댓글삭제

박찬
꽃점과 한줄평에 이 작품이 안올라서 여기에 씁니다. 간만에 많은 걸 느꼈던 공연이었어요. 특히 포스트드라마연극이 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음악이 좋네요. 신선한 울림을 준 공연! 연출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별점 ★★★★★

2016-09-0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