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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전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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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역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특정 인물과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삼지만, 결코 실제 인물을 사실임직하게 등장시킨다거나 그 사건의 스펙터클을 그럴 듯하게 재현하려 들지 않는다. 영웅을 다루지만 영웅은 나오지 않고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역사가 전개되지는 않는 것이다. 무대에는 그저 사무실 공간에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변호사가 있을 뿐이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입장을 달리하는 두 인물이라는 설정만으로 ‘단 하나의’ 역사는 이미 위기에 직면했는데, 이들이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변호사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해석은 더더욱 간단치 않은 판단 보류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게다가 한쪽은 한국을, 다른 한쪽은 일본을 대변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이 갈등의 배면에 도사리고 있는 화두는 꽤나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수상한 공연, 지극히 제한된 조건하에서 연극적 기지를 십분 활용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연극, <영웅의 역사>가 다시 관객들을 찾는다,

역사, 다른 시간대의 충돌

백범 김구 선생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생애 첫 투옥과 관련된 ‘치하포 사건’을 언급하면서, 황해도 치하포의 한 여관에서 왕비를 시해한 일본 군인을 만나 민족의 원수를 갚았다고 썼다. 연극은, 당시 유명을 달리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의 아흔 먹은 딸이, 상인이었던 아버지가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며 『백범일지』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라는 요청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이 연극에서 이와 같은 국가적 소송이 발생한 시점이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시위대의 외침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수화기 건너편의 누군가를 ‘김 부장님’이라고 지칭하며 연신 굽실거리는 한 남자가 보인다. 그밖에도 ‘중앙정보부’, ‘각하’ 같은 말들이 오가는 것으로 보아 시대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이에 더해 그가 국가를 위한 임무 수행의 일환으로서 그저 변호사인 척 위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이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 그리고 또한 이 연극은 어디서 어떻게 멈추게 될지 자못 섬세한 흥미를 잡아끄는 시작이다.

무겁고도 가볍게 질문하기

하지만 갈등이 매우 첨예하거나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긴박한 것과는 별개로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을 매개로 사유의 틈을 넓혀나간다. 연극적 약속이 아니고서야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장치들이 극 전반을 끌고 가면서 불필요한 긴장을 덜어내니,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강렬한 주의주장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슬쩍 환기되었다가 짐짓 딴청을 부리거나 하는 식이다. 특히 당시 일어났던 일을 재연해보자며 『백범일지』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가 보여주는 능청스런 호흡은 가히 희극의 절정을 연출한다. 심지어는 억지스러운 듯 보였던 주장이 연극의 한 국면으로 수렴되면서, 자기 확신의 강렬함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어쩐지 상대를 이해할 만한 여지가 생기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작품은, 난처한 입장을 모면하려는 정형화된 수완이나 상대의 속셈을 빤히 읽으면서도 정색하고 말장난을 하는 두 캐릭터의 상반된 특성을 교차시킴으로써, 치열한 수 싸움의 전략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질문의 고삐를 바짝 당긴다.

영웅을 ‘위한’ 역사 혹은 영웅에 ‘의한’ 역사

이제 남은 궁금증은 작가가 만들어낸 이 가상의 소송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979년 10월의 대단원이 그것과 어떻게 연루되는지 여부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한 순간을 종결짓는 모종의 선택에 합류하게 된다. 차마 그 결말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자기 인생에선 각자가 다 영웅인 거지”라는 마지막 대사는 대문자 역사의 기록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저마다의 역사관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배태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시대가 어떤 연유로 영웅을 필요로 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 궁금하다면 부디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외면하지 마시길 강권하는 바이다. 누가 아는가.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의 모든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첫 걸음이 되어줄지 말이다.

[사진: 극발전소301 제공]

일시
8월 18~24일 평일 8시, 토 4시 7시, 일 4시, 월 공연 있음
장소
예술공간 서울
신은수
연출
정범철
출연
리우진, 박정권
문의
070-8958-1740

태그 영웅의 역사, 극발전소 301,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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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98호   2016-08-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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