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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관한 어떤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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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사회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어떻게든 소화해내기에 급급하다. 꿈에 관한 대화는 그래서 종종 사치스럽게 여겨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마음 속 한 구석이 간질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저 깊은 곳에 묻어뒀던, 꿈을 꿨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어느 순간 모종의 계기로 건드려지기 때문이리라.

이미지 꼴라주라는 수식어가 붙은 공연 <꿈속의 여정>은 잊었던 꿈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좋은 촉매제다. 고뇌, 추억, 열정, 꿈. 여정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림, 음악, 연기의 만남은 모처럼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완벽한 구성을 갖춘 세련된 공연은 아니다. 모두가 감탄할 만한 탄탄한 줄거리도 없다. 대신 진심 어린 생각들이 반짝이며 마음을 움직인다. 그 중심에는 고재경 마임이스트가 있다.

어둠 속 빛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제가 그림에 대한 혜안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니 그림 속에 사람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담았더라고요. 밀레 또한 기본적으로 서민들에 대해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있고요. 거기에서부터 시작을 한 거죠. 이들 모두 다 예술을 통해 사람을 찾고자 했다는 것 자체에 마음이 갔습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죠. 두 사람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저부터 이런 마음을 천천히 닦아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두운 면을 어둡게만 바라보지 말고 거기에 분명히 빛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고재경 마임이스트

고재경 마임이스트는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하며 출연도 한다. 다만 출연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고, 무대의 한 가운데에도 좀처럼 서지 않는다. 주로 솔로로 공연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곤 하는 마임이스트가 직접 기획해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비워진 공간을 바이올리니스트 박진희, 무용수 김주연, 배우 김은석, 김동곤, 건반연주자 채석진이 골고루 나눠 갖는다. 이런 설정을 구상하는 데는 <잠깐만>이라는 공연이 영향을 미쳤다. <꿈 속의 여정>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잠깐만> 때도 고재경은 혼자가 아니라 무용수와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을 마친 후 좀 더 다양하게 존재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지금 꼭 공연에서 표현하고 싶은 지점을 어떻게 하면 더 증폭시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 바로 <꿈속의 여정>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미지 꼴라주라는 형식에 걸맞게 각자의 방식으로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공연은 배우 두 명의 술자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현실과 이상에 대한 고뇌, 아름다웠던 추억, 식지 않은 열정, 꿈을 향한 여정 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 연극인 2명의 술자리 대화 안에 모두 담긴다. 이들 배우 역시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는 대신 왼편 앞쪽 공간에 비죽이 걸쳐 있다. 한 가운데 중심은 비워둔 채 배우의 연기는 연기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몸짓은 몸짓대로 무대 위에 가만히 흐른다. 바이올리니스트나 마임이스트는 각자의 임무를 마친 후에도 마치 거리의 예술가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무대 위에 배우들과 공존한다.

고뇌 속에서 길어 올리는 즐거움

“이야기를 더 많이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할 얘기가 많지 않습니다. 이야기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있어요, 함께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이런 생각 가지고 있어요, 이런 꿈을 꾸고 있어요’ 같은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공연에서 사회적 이야기는 일부러 다 배제시켰어요. 어떤 걸 연상할 수 있겠지만 연상은 관객 몫이겠죠. 물론 그냥 만들지는 않았어요. 이야기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면에는 생각을 다 갖고 있는 거죠. 이런 생각에는 그림들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삭줍기나 만종,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표현만 봐도 할 이야기는 다 끝난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성향의 그림은 아예 보지도 않았어요.” -고재경 마임이스트

<꿈속의 여정>은 논리적으로 쓰여진 대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생각의 연상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각기 다른 장르에 몸담고 있는 창작자들이 만나 작업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창작의 고통은 기꺼이 견딜 만한, 즐거운 고통이 됐다. 출연진들이 포기하지 않고 모두 열린 마음으로 작품에 임한 덕분이다. 배우 두 명이 술자리에서 꿈과 추억을 들춰 소통한다는 공연의 줄거리처럼, 연습실에서 본 출연진들도 자신의 진실한 상태를 어렵지만 천천히 꺼내어 보이는 듯했다.

관객과의 만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마임이스트 고재경의 생각이다. 고재경은 비단 <꿈속의 여정>뿐만 아니라 모든 공연에 대해 이해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으로 생각해달라는 당부했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들꽃 하나가 갑자기 눈물을 자아내듯 관객이 공연을 진짜로 체험할 때 비로소 카타르시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나려는 노력, 경험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꿈속의 여정>은 그런 노력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 될 듯하다. “이 공연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근데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라는 연출의 솔직한 말이 되레 믿음직스럽다.

[사진: 마임공작소 판 제공]

일시
8월 24일~9월 4일 평일 8시, 토 4시7시, 일 4시, 월 공연 없음
장소
대학로 게릴라극장
작·구성
고재경
출연
김은석, 김동곤, 김주연, 고재경, 채석진(건반), 박진희(바이올린)
문의
070-4912-9512

태그 꿈속의 여정, 마임공작소 판,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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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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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호   2016-08-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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