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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D의 실험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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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시작과 함께 ‘2017 두산아트랩’의 작품들이 속속 선보여지고 있다. 두산아트랩은 2010년부터 운영된 프로그램으로, 만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작품 개발을 여러모로 지원한다. ‘아트랩(Art Lab)’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실험실에서 발표된 작품들은 그해 공연계를 환기하면서 그 실험결과를 증명하고는 했다. 관객들의 지지도 야박하지 않았다. 2017년에 발표되는 여섯 편의 작품 역시 이러한 기대와 기다림 속에 있다. 이미 관객을 만난 릴레이 강연 퍼포먼스 <유리거울>(최윤석), 연극 <제로섬 게임>(파랑곰), 미디어 퍼포먼스 <딥 프레젠트>(김지선) 외에 세 편의 공연이 남아있고, 이 글은 그 가운데 연극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The Mode of Alternative Family>와 다원 작품인 <캇트라인 Cut/ine>을 미리 본다.

공동체여 잘 있거라!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E
가정이라고 규정하면 그만큼 기대하는 게 생기잖아. 우리의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좀 대안적인 말 같은 건 없을까. 공동체라든지.?
C
대안 가정은 어때? 근데 너랑 내가 진짜 부부는 아니잖아. 실제로는 가짜여도, 법적 으로는 내일 동사무소 가서 도장 찍으면 서류상으론 진짜야. 어쩌면 그게 더 현실과 가까운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가정하고 가족은 다른 거야.
E
같은 개념 아냐?
C
가족은 씨족, 그러니까 혈연관계 중심. 가정보다 좁은 범위지.

박서혜 작가의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다. A부터 F까지, 알파벳이 이름을 대신하는 여섯 명의 배우가 총 네 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 네 편은 각각 여섯, 셋, 둘, 하나씩 등장하는 인물의 수에 따라 나뉜 것인데, 이 차례를 따라 A부터 F는 내내 흩어져 분해된다. 이들은 등장인물이기보다 등장 ‘요소’에 가까울 수 있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사연이 생태 보고서 1장을 연다. 며느리가 곧 식모인 시모와 치매 환자 시부, 무능력한 남편, 퉁명한 중학생 딸, 거기에 매일 아침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기러기 아빠 고모부가 아침상 앞에 모인 풍경은 마치 상하기 직전의, 막 곰팡이가 피려 하는 시든 채소더미들 같다. 여기에 그나마 숨을 불어넣는 것은 부부의 이혼선언. 시들시들한 채소들이 짧은 숨을 바짝 쉰다. 보고서 2장은 재혼가정 이야기다. 아빠와 딸뿐이던 가정에 새엄마가 생긴다. 저녁 식탁을 앞에 두고 찍는 ‘인증샷’으로 어색한 관계는 성립되기 시작한다.
다음 장에서 이 연극은 큰 낙차로 점프한다. 가족에서 가정으로 – 혈연관계가 중심인 집단의 이야기에서, 특정한 이유나 목적으로 함께 거주할 뿐인 집단의 이야기로 – 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대본에서 E와 C가 ‘대안 가정’이라 부르는 이 공동체는 가상 결혼을 결정한 남녀로 구성된다. 30대에 접어든 된 E와 C는 행정상의 혜택과 편의를 위해 위장 혼인신고를 한다. 두 사람의 적은 자본이 합쳐져 대학가의 원룸 한 채가 되었고, 둘의 공동생활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작가 박서혜는 이 에피소드가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의 출발점이라고 밝힌다. 작가는 실제로 복지재단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가족을 꾸렸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들처럼 애틋하게 기르던 강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고만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인데, 이 역시도 작가의 목격담 중 하나다. 이 두 가지 경험에 상상을 보태서 덧붙인 것이 오히려 처음과 두 번째 에피소드라는 사실은 플래시처럼 ‘번쩍’하고 무언가 비추고 사라진다. 이 빛이 가리키는 것은 한 사회의 전환점이다.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이나, 핵가족 이야기는 오히려 현실 너머에 있다. 1인 가정,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삶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목적으로 결합하는 공동체, 어쩌면 공동하지 않는 공동체까지….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도) 살아갈 것이다. 해체하고 소멸하는 ‘가족’을 염려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되고, 창조되는 ‘대안 가정’들을 포착하여 이들을 무대에 초대한다는 점이 이 연극을 반짝이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주 드문 매력, 낙관(樂觀)의 매력이 있다. 대안이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될 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관객들은 이 발견의 보고(報告)를 함께 목격하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대화하기 <캇트라인 Cut/ine>

“‘선’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세요?” 연출가 장병욱이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운동회 때 달리기 결승점에 기다리던 하얀 천이요. 오직 1등에게만 허락되는 거였죠.”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선(Line)에 관해 연이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무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안과 밖, 위와 아래, 여기와 거기를 구분하는 것. 그리하여 안을, 위를, 여기를 분명히 하는 것, 그 도구. 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을 형상화한 어떤 물건이라고 늘 느꼈다. 국경을 생각해보라. 그러면서도 선은 모순적인 의미와 기능을 한 몸에 품고 있기도 하다. 경계 짓기도 하지만 잇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무스비?) 우리 마음속은 늘 누군가와의, 장소와의, 시간과의 선이 이어졌다 끊기곤 하는 공간이다. 그것이 모여 삶의 지도가 된다.

바로 이 선(Line) -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 – 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작업이 있다. <캇트라인 Cut/ine>이다. 연출가와 기획자가 한 팀을 이뤘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흥미로운 해보카 프로젝트(HaVokA Project)가 전작인 <어닝쑈크>(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경기문화재단 별별예술프로젝트)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을 준비 중이다.

장병욱 연출가

<캇트라인 Cut/ine>은 한 끗 차이로 IN(안)과 OUT(밖)이 결정되는 '캇트라인'에 관한 의문을 품고 출발한다. ‘캇트라인’은 누군가 정해 놓은 기준으로, 그 선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은 다른 처지에 놓인다. 장병욱 연출은 연극을 비롯한 순수예술을 하게 되면 사회적 기준들과 먼 삶을 살게 될 거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 안에서 더 많은 경쟁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과 경계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심리적 벽에 대한,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경계에 관한 이슈까지 이 작품에 접합하고자 한다.
한 사회에서 선과 경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관한 본질적인 탐구와 함께, 그 앞에서 이중적이 되어가는 ‘나’의 이야기 또한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디션에서 탈락한 연습생, 쌍둥이 자매,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오르지 못한 예술가 등 인터뷰이를 선정하여 그들의 경험을 수집했고, 이를 다큐멘터리 연극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출연자와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관객이 관여할 요소 또한 열어 두고 있다.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해보카 프로젝트의 전작들에서도 시도되었다. 이 바탕에는 공연이 ‘대화의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창작자의 바람이 있다.
어떤 질문들과 어떤 답들이, 대화를 위한 재료로 다듬어져 있는지 확인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지나친 추측과 과도한 기대를 품은 채 때를 기다린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일시
2.16~18 목금 8시, 토 3시7시
박서혜
연출
이연주
출연
조주현 최정화 조시현 윤정욱 이세영 연아
문의
02-708-5001

해보카 프로젝트 <캇트라인 Cut/ine>

일시
2.23~25 목금 8시, 토 3시
연출
장병욱
구성
김재동
미술
신승렬
음악
윤현종
문의
02-708-5001

태그 두산아트랩,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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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09호   2017-02-0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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