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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 그 위험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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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나는 형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곳곳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고, 뉴스를 보고 있자면 폭력은 날로 가속도가 붙어 이미 호흡이 가쁘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가 이 사회를 집어 삼키고 있는데, 현실 인식은 늘 분노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많은 재앙들을 미연에 막아내지 못하였고, 단지 이 현실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그 분노에 희생되어야 했다. 여기,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테러를 결행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배신을 당해야 하는 삶이 있다. <나는 형제다>는 그 불길하고 불행한 삶의 경로를 추적해 분노보다 앞서 현실을 진단해보려는 연극이다.

누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키웠는가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결승 지점에서 압력솥으로 만든 사제 폭탄이 폭발했다.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고 검거된 범인은 이십대의 체첸계 이민자 형제로, 형은 촉망받는 레슬링 선수였고, 동생은 의대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이들이 왜 테러를 저질렀는가, 그건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분명 아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들은 너무 이른 실패를 경험했다 하고, 테러를 감행하기까지 알카에다와 접촉했다고 한다. 어떤 맥락에서든 그들을 두둔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고연옥 작가는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민하게 된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못이나 볼트, 너트와 같은 쇠붙이를 솥 안에 넣고 압력을 가해 터뜨리는 폭탄. 그것을 만들기까지 두 형제가 쇠붙이를 주워온 시간이, 결국 그들을 향한 세상의 냉담한 시선들을 모으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극단 <나는 형제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나는 형제다>의 두 형제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유독 가난한 인생을 시작한 부모는 자식들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 그들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했다. 형은 학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운동선수였고, 동생은 그 누구라도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고 장담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일상이 그렇듯이 명백히 그들의 잘못이 아닌 무언가로부터 삶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사회는 어찌하여 한번 어긋난 인생을 원래 궤도로 돌려놓을 여지를 주지 않는 걸까. 김광보 연출은 이것이 관계, 더 크게 보자면 결국 구조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고연옥 작가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사건이 유발된다. 그것이 작은 사고가 되었든 이와 같은 테러가 되었든 모든 것들은 사회구조와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 나오는 형은 그 구조 속에서 완전히 소모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로 인한 좌절이 분노로 이어지고 동생은 맹목적으로 그런 형을 따라간다. 고연옥 작가는 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들로부터 작품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그 이면에는 언제나 큰 이야기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 작품에도 그런 맥락에서 인물 하나하나가 매우 상징적인 대표성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을 구체화시켜 무대에 세우는 일이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였다. 그 전형, 나이면서 동시에 너이고, 그들이면서 우리인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나도 간절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지금 있는 이곳에 적응하고 싶었고, 그저 남들처럼만 살고 싶었던 두 형제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이 시대의 불행에 너무 오래도록 길들여져 있었으니까.

서울시극단 <나는 형제다>

거기까지가 당신이 믿고 싶은 허구

작품의 무대는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영화 세트장이다. 무대 뒷벽에는 대형 스크린이, 좌우측으로는 카메라들이 설치되어 있다. 영화관은 형제가 서로를 보듬고 위로했던 곳이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고함을 내지르기 위한 공간으로 작가가 설정한 것이나, 연극은 이 전체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 촬영 장면으로 상정한다.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면서 영화이고, 또 연극인 셈이다. 작품의 이 미세한 결들은 이제 최후의 답을 보류한 채, 공연을 보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나 연극을 단순히 허구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지, 혹은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순도 100퍼센트의 ‘리얼’이라 할 수 있는지, 당신이 믿고 싶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서울시극단 <나는 형제다>

김광보 연출이 서울시극단 에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공연하는 첫 번째 작품. 서울 공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난 8월 말, 연극 <나는 형제다>는 이미 김해와 경주 지방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관객들과 더불어 객석에 앉아 공연을 봤다는 김광보 연출은 무대 위 형의 마지막 선택에서 일종의 연민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이 현실을 가지고 연극을 만들고 보면서 품을 수밖에 없는 가장 최전선의 감정이다. 이 연극은 그 극단적인 결말의 무망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더 이상 미래의 테러리스트들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연극은 이렇게, 질주하는 현실의 분노를 극장에 풀어놓는다.

[사진: 서울시극단 제공]

서울시극단 <나는 형제다> 포스터

일시
9월 4일~20일 평일 8시, 토 3시 6시, 일 3시, 월 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고연옥
연출
김광보
출연
이창직,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최나라, 이승주, 천정하, 유성주, 문호진, 장석환, 김동석, 박진호, 신해은, 유미선, 조용진, 허재용
문의
02) 399-1095~6

태그 서울시극단,나는 형제다,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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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75호   2015-09-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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