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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으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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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른다면 직업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결정된 개인의 생계유지 수단인데, 이 정의가 현실에서도 유효할까. 유난히 이 시대에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의 직업이 반드시 적성과 능력에 따라 결정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생계유지수단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특히 예술 관련 직종에 종사한다면 더더욱 직업이 생계유지수단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렇다. 이 시대에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기 위해 예술을 포기한 채 아르바이트에 종사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잡온론>은 현실의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잡온론>의 남자와 여자는 비정규직이다. 남자는 출근이 몇 번 늦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난다. 여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고 연락이 없는 강의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자신의 직업이 연극배우인지, 학원 강사인지, 혹은 택배 배달원인지 혼란에 빠진다. 왜 직업이 생계유지의 수단이 될 수 없는가. 왜 많은 예술가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해야하는가. 왜 나의 직업(job)은 빚(loan)을 기반으로 성립될 수밖에 없는가. 두 배우는 <잡온론>을 통해 이 오래된 난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기고백과 증언의 사이에서

김태희
텍스트가 참 좋았어요. 작품을 어떻게 구상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신문영
우연히 말장난의 달인인 김승언 배우가 ‘자본론’으로 ‘잡온론’이라는 제목을 만들어냈어요. 순전히 제목만 먼저 만들어진 거죠. 이후에 실제 저희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었던 경험을 써보자고 의기투합을 했어요. 각자 이야기를 써서 그걸 바탕으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도록 구성을 했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집어넣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고민을 하다가 차라리 마르크스와 아담스미스를 끄집어내서 싸움을 붙이기에 이른 거죠.
김승언
초고를 가지고 상암월드컵경기장 땡볕 아래에서 연습을 했었어요.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직업을 둘러싸고 우리가 고민했던 이야기가 직접 작품 안에 들어 와주면 좋겠는데 어떻게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니 신문영씨가 좀 투박하더라도 차라리 직접적으로 가보자고 한 거죠. 그래서 마르크스와 아담스미스를 가지고 오고 말장난으로 성격을 만들고, 그렇게 발전이 되었어요.
김태희
저는 예술가들이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보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빠져버린다는 아쉬움을 느낀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러다보면 관객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가 등장해서 논쟁을 벌이는 부분이 들어가면서 그런 위험성을 극복해주는 것 같아요.
신문영
저희 작업에 참여한 전강희 드라마투르그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어느 책에 나온 글귀라고 하는데요, “예술작품이 고백을 넘어서려면 그것이 증언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저희도 작품이 힘든 삶에 대한 개인적인 토로가 되는 걸 계속 경계하고 있어요. 저희의 출발은 우리 이야기를 알아달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관객 분들이 우리 이야기로부터 어떤 공감대를 얻기를 원했고, 그래서 솔직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더 나아가 이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예술가가 예술가의 삶에 대해 말하는 작품만큼 위태로운 작품이 없다. 진지하게 시작한 자기고백은 곧 자기연민이 되어버리거나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되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당연히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일도 요원하다. <잡온론>의 창작자들 역시 이 지점을 명확히 알고 경계하고 있었다.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비정규직과 칼을 잘 다루는 레스토랑 사장으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말장난에서 시작된 캐릭터 설정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경제학 이론의 그것과 같다. 조금 더 쉽고 이해하기 쉽게 변형된 이들의 이론은 어느새 우리를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에 대해 상기하도록 이끈다. 덕분에 개인적인 경험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활로를 얻게 된다.

4시 3분의 햇빛

김태희
사실 막쿱(만리동 예술인주택)의 조성, 운영 과정에서 예술가임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문제가 많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막쿱을 공연 공간으로 선택하신 것도 인상 깊어요.
김승언
네. 여기서 그런 내용을 담은 <아임 언 아티스트> 공연을 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공간 자체는 저한테 낯설지 않은 공간이었어요. 사실 <잡온론>을 기획 할 때 공간을 몇 군데를 찾아 봤었어요. 기획자인 희경씨와 많이 고민을 했었죠. 실제 지원신청서를 낼 때도 몇 군데 접선을 할 예정이라고 적었고요. 그런데 극장 밖으로 벗어난다고 했을 때 적당한 공간을 찾고 또 그 공간의 사용 허락을 받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기도 해요. 절차상의 복잡성이 여기는 조금 더 쉬워서 선택을 한 것도 있었어요. 게다가 이 공간은 매력적이에요. 지금 아파트가 거의 다 지어져서 그 매력이 조금 없어졌는데 저희가 처음 여기 왔을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거든요. 재개발 현장을 보면서 우리나라 현재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을 받아서 그게 선택의 포인트가 되기도 했었어요.
김태희
저도 이 공간이 갖는 매력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기획자님 입장에서는 좀 곤란하실 것 같아요. 관객들 입장에서 찾아오기도 엄청 힘들고요.
나희경
언제 어디서 공연을 하든 올 사람은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웃음) 저도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좋았어요. 생활공간과 도심의 풍경이 함께 공존하는 곳 같아서요.
김태희
막쿱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함의들이 작품과 어우러지는 것도 좋았지만 또 공간구조와 동선도 절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특히 시간강사 이야기 할 때 너무 좋더라고요. 그 장면을 위해서 위층 난간으로 공간을 이동하시잖아요. 위에서 아래에 있는 관객들에게 울려 퍼지는 소리,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볼 때의 각도 같은 것들이 참 좋았어요. 또 하나는 그 4시 3분의 햇빛을 만끽하는 장면이요. 그 때 하필이면 그 비슷한 햇빛이 쏟아지는 장면도 너무 예쁘더라고요.
나희경
시간 때는 그 때를 노린 거예요.
김승언
공연 시간대를 희경씨랑 상의를 했죠. 5시에 시작을 해서 약간 해가 넘어갔을 때의 느낌이 좋은 것 같은데 관객이 올까요?
나희경
올 사람은 올 거다.
김승언
아주 자신있게 말해주셨어요. (웃음) 저희가 계속 탐구하고 싶은 건 사실 소리와도 관계가 있어요. 트인 공간에서 소리를 낼 때, 조금 안에서 낼 때, 올라가서 낼 때 울림이 조금씩 다른데 그런 것도 하나의 이미지라고 생각했어요. 공간을 그림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 어디에서 어떤 소리를 냈을 때 그 소리가 이 공간과 어떻게 어우러질 것 인가하는 것도 되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일단 저희가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추구하고 선호하는 방향은 그런 셈인 거죠. 그런데 저희가 지금 시즌제 거리극도 같이 하고 있는데요, 거리로 나갔을 때는 그런 부분은 포기를 하고 가야되더라고요.
신문영
이 공연을 보라매공원에서 3시에 했고요. 서울숲에서는 5시에 했어요. 그런데 3시에 하니까 그 때는 보통 노는 시간대잖아요. 그래서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공연하기에는 힘들더라고요. 관객들이 듣기에 힘들어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공연에 맞는 시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대에 따라 기운이 다르고 반응이 다르고요.
김승언
3시의 공기와 5시의 공기가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햇빛이 정면에서 내리 쬘 때와 옆에서 쬘 때도 다르고요.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탐구하고 있어요.

서민 경제 3부작

김태희
서민경제 3부작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평상시 가지고 계신 문제의식이 경제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신문영
저희가 그런 문제의식에 대해 강하게 발언을 하거나 직접 행동에 뛰어들 정도로 강성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희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이 결국 사회의 문제와 맞닿아 있죠. 기존의 텍스트에 현대적인 해석을 넣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거칠고 못난 글일지라도 우리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서민경제 3부작을 좀 소개를 해보면요. 먼저 <스피드 잡스(Speed jobs)>라는 작품인데 끝없이 알바를 하는 이야기에요. 요즘 우리 삶이라는 게 일을 아주 많이 해야만 겨우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삶이잖아요. 물론 최근 사회 분위기가 많이 희망적으로 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구조의 문제는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어제 부산 민간 오케스트라 단장님이 자살하셨더라고요.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3부작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증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승언
3부작 중 이번에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아담스 미스(Adam's miss)> 같은 경우에는, 남성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에요. 요즘 세상이 남혐, 여혐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런 현상이 결국 현재 사회의 폭력성을 증언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폭력은 결국 누가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지, 누가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근데 우리사회는 이상하게도 남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세상이고 제가 남자다보니까 약간의 원죄의식 같은 게 있어요. 남자들이 제대로 인식해야한다는 반성적 측면도 있었고요. 하지만 단순히 남자가 잘못했다고 규정지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일단 그 폭력적인 구조를 만들어 간 게 우선적으로는 남자들이 힘을 이용해서 여자들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생각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김태희
<잡온론>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결국에는 구조와 개인의 문제로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김승언
사실 역사적 사실만 놓고 봤을 때 공산주의는 몰락을 했죠. 그런데 이념적으로 놓고 봤을 때 마르크스가 가지고 있는 이념이 실현될 수 있었으면 이상적인 사회일 수 있었잖아요. 그게 불가능한 게 문제였지요. 자본주의도 이론에 따라서 잘 운영되었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정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완전경쟁시장이라는 그런 시장이 존재하고 서로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그것도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 중 벌어지는 마르크스와 아담스미스의 싸움에서 승패를 결론 짓지 못했던 건, 사실은 이 둘의 싸움이 끝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역사적으로는 공산주의가 졌지만 이론만 본다면 이쪽 저쪽 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나 그게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우리를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는가. 그건 양쪽 다 실패인 것 같아요.
김태희
우주마인드프로젝트는 서민경제 3부작 완성을 위해 계속 달려가시나요?
김승언
네. 우리 둘의 관심사를 우리끼리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보자고 작정을 하고 재작년에 아예 사업자등록까지 했어요. 팀 이름만 만드는 게 아니라 뭔가 책임의식을 갖는 게 좋은 것 같아서요. 매년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어요. 뭔가 1년에 하나씩 이상한 거라도 창작을 하는 방향으로 해보자. 육아에 생활에 바쁘더라도. 그 의무감이 없으면 그냥 좀 거창하게 이야기해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한동안 포기하고 살아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작년에 <아담스 미스>가 한 번 공연이 되기는 했고요. 올해는 스피드 잡스를 할 예정이고 앞으로도 계속 일단 프린지 페스티벌에 매년 참여를 하려고요.

두 배우는 직업이 직업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법을 택했다. 거칠고 서투른 언어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본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빚더미밖에 남지 않는 직업일지언정 놓지 않겠다는 의지와 징글징글한 애정도 함께 말이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신문영 배우의 말은 큰 함의를 갖는다. 그들의 삶 위에 수많은 관객들의 삶이 겹쳐지길,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이 난제의 해결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기를 기원해 보자.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태그 잡온론, 우주마인드프로젝트,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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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연극평론가
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공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화려한 공연보다 소박한 객석과 무대를 좋아한다.

shykth@hanmail.net
제117호   2017-06-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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