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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자본적인 연극의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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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가? 2017년 현재 최저시급을 떠올려본다면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물건을 구입하며 생활을 영위해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동을 해도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월급을 받아도 월세와 공과금,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정작 생활비는 부족하다. 월급은 속된 말로 ‘통장을 스치고 지나갈 뿐.’ 노동의 굴레는 점점 빡빡하게 돌아가고 우리의 삶은 움츠러든다.
이런 팍팍한 삶을 게임판에 빗댄 공연이 등장했다. 丙소사이어티의 <노동집약적유희2017>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는 노동의 굴레를 어릴 적 누구나 해봄직한 부루마블 게임으로 재구성했다. 이제 게임의 참여자들은 생존을 위해 부동산을 구입하는 대신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그 돈으로 소비를 한다. 참여자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한 시간이 채 못 되어서 이들은 파산을 맞이한다. 이 살벌한 게임의 결과는 곧 우리의 현실 그 자체다.

폐지줍는 60대 노인과 연극하는 30대 청년

김태희
작품 구상 계기가 궁금해요. 왜 하필 부루마블이었을까요? 그 게임은 사실 부동산을 사고파는 건데 어떻게 노동으로 바꾸게 되신 건지도 궁금해요.
송이원
예전에 제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기사를 하나 봤어요. 그 기사가 ‘폐지 줍는 60대 노인 여중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벌금을 물어’ 이런 식의 제목을 갖고 있었죠. 60대 노인이 여중생에게 성추행을 가한 건데 여기에서 왜 갑자기 이 사람이 폐지 줍는 노인이라는 걸 강조를 할까 싶었어요.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는 거죠. 이걸 가지고 게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임을 만들려면 특정한 상황이 주어져야하는데 아무래도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업장을 상황으로 주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부동산이 노동으로 바뀌게 된 거죠. 사실 처음부터 의도를 했다기보다는 제 삶을 반영하다보니까 이렇게 게임이 완성이 된 것 같아요.
김태희
관객들의 호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유난히 객석의 몰입도가 높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선 게임이라는 특수한 형식 때문인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우리 일상이 담겨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공연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거든요. 그날 패널로 참여하셨던 ‘참여관객’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주사위를 던지는 게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보면 거기서는 주사위지만 현실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원치 않아도 월세 내는 날짜는 돌아오고 이것저것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돈은 없고. 이게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훈재
맞아요, 그래서 공연 초반에는 관객 호응도가 굉장히 높아요. 그런데 재밌는 건 작품이 후반부로 갈수록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슬픔을 느낀 달까요. 처음에는 현실을 비꼬는 게임의 아이디어 자체에 재미를 느끼다가 나중에는 그 게임에서 현실을 보는 거죠. 게임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게임판 위의 인물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게 예상이 되면 그 때부터 관객들 반응이 진짜 달라져요. 단순히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인물들과 함께 슬픈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김태희
제가 들은 바로는 작년에 초연을 한 이후에 다양한 실내 공간에서 공연을 했었고 올해는 야외에서도 공연을 진행하셨더라고요. 공간마다 느낌이 조금 다르셨을 것 같아요.
송이원
아무래도 조명과 영상을 사용하니까 제대로 이 공연을 잘 구현하려면 극장이 좋겠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이 공연이 가장 어울리는 공간은 보신각이었던 것 같아요. 야외에서 지나가던 사람들도 자유롭게 공연을 보고 관객들끼리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보는 게 좋았어요.
이지은
사실 배우 입장에서 보신각 공연은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관객들을 집중시키고 게임 진행을 중계하는 아나운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조명이 없으니까 관객들의 집중력이 떨어질까 봐 신경이 쓰였죠. 그런 면에서는 극장이 편했지만 그래도 보신각에서 공연 했을 때 상황이 유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신훈재
저는 보신각에서 공연할 때 좀 위축이 되더라고요. 높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공연을 하는 게 시위 아닌 시위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김태희
재밌는 장면이네요. 그야말로 초정규직들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서, 시급 6,470원에 대한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하고 공감대를 만들고 그걸 본다는 거 자체가 의미 있네요.
신훈재
심지어 금요일 8시 퇴근 시간예요.
이지은
제 친구들도 보신각 근처에서 일을 많이 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퇴근을 하고 오겠다는 친구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5분 거리인데 일이 안 끝나서 못 오더라고요. 그것도 웃겼어요.
김태희
공연 끝날 때면 밤 9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했단 이야기인데 그건 그거대로 슬픈 현실이네요.

참여관객과 즉흥성, 공연의 필수조건들

김태희
참여관객 네 명은 무대 중앙에서 게임을 진행하고 두 배우님은 각각 아나운서와 캐스터 역을 맡으셔서 게임을 중계하시죠. 그러다보니 이 공연은 두 배우님의 순발력이 굉장히 필요한 공연인 것 같아요. 게임이 끝나면 아나운서가 캐스터에게 그날의 공연을 한 마디로 정의 내려달라고 요청을 하잖아요. 그 질문과 대답은 온전히 그날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거고요. 그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그만큼 부담도 많이 되실 것 같아요.
이지은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죠. 다른 공연과 다르게 연습을 여러 번 할 수도 없는 공연이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없는 데 나가서 웃기라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저희가 게임판 위에 서있지 않을 뿐이지 전체 진행을 맡는 거라서 중압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신훈재
그거랑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이번에 두 번 공연을 했는데 수요일 첫 공연에는 제가 게임판 위 인물들의 HP에 대해서 설명을 안 했구요, 목요일에는 언급을 했어요. 그랬더니 목요일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인물들의 HP에 대해 엄청 신경을 쓰는 거예요. HP가 모자라서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되면 저희보다 미처 중계를 하기도 전에 먼저 안타까워하는 반응들이 객석에서 터져 나왔죠. 기존에는 없었던, 새롭게 만들어진 세계이다 보니까 저희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되기도 해요.
김태희
말씀하셨듯이 이 공연은 즉흥성이 중요하잖아요. 거기에 참여관객이라는 변수가 더 들어가는 건데, 제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이 큰 것 같거든요. 공연 전체가 위험 요소가 가득하고 통제가 안 되는 게 많은데 굳이 왜 배우를 쓰지 않고 일반 관객을 참여시키는지 궁금했어요.
송이원
배우 두 분 같은 경우에는 게임룰에 대해서 숙지를 해야 되고 게임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연히 알아 야된다고 생각했지만 게임판 위에 올라가는 분들을 배우로 캐스팅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사실 연기력이 필요하지 않고 안무 몇 가지만 하는, 기계적인 일만 하는 건데요. 이 말의 역할을 배우에게 하게 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무례한 일처럼 느껴졌어요. 또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6,470원이라는 시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보니 참여하는 사람에게 시급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시급을 주는 대상의 범위를 전체 프로덕션으로 잡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게임판 위에 올라가는 분들은 신청을 받아서 이 분들에게 시급을 정산하는 걸 목표로 하게 된 거죠.
이지은
게임룰을 익힐 때는 몰랐는데 공연으로 올리니까 모든 요소들이 생동하고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명확해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참여관객은 이 작품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은 예전 공연과 다르게 환경이 좋아지면서 참여관객 분들을 불러서 미리 연습을 시키고 리허설도 해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리허설을 하니까 이상한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수요일 공연 때 참여관객 분들이 공교롭게도 다 무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었어요. 거기다가 리허설도 진행하니까 이 분들이 오히려 딱딱해지고 무대 위에 배우로서 존재하려고 하시더라고요. 자연스러움이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 공연은 리허설을 하면 안 되는 공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신재훈
작년에 인천에서 공연을 했을 때 같은 참여관객이 2회 차 공연에 참여를 했어요. 그랬더니 재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게임을 보수적이고 전략적으로 진행을 하시니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스토리가 제한이 되더라고요. 물론 자연스러움을 연기할 수도 있지만, 진짜 즉흥적인 반응들이 더 재미있는 요소들이거든요. 익숙해지면 그런 것들이 살아나지 않더라고요.

연극의 상실 혹은 지속에 관하여

김태희
평상시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편인가요?
송이원
제가 이걸 하기 전에 노동문제에 대해서 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동관련 법들을 찾아봤을 뿐이고 공연을 완성한 지금도 여전히 노동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건 없어요. 저는 사실 시간과 공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노동집약적유희>를 하면서 우리 삶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딱딱 떨어지게 거래가 되고 있구나, 그래서 노동이라는 게 정말 자연스럽지 않게 삶의 어떤 부분을 팔아서 삶의 어떤 부분을 사는 수단이 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랬을 때 최저시급 6,470원이라는 건 정말 부당하게 책정되어 있는 거죠. 제가 찾은 건 사실 이 정도예요. 아직 노동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하진 못했어요. 다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해요.
김태희
관객과의 대화에서 인상 깊었던 연출님의 말씀이 있었어요. 그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하신 말씀이었는데요. “블로그에 게임룰과 말판이 다 있으니까 각자 돌아가셔서 집에서 연극을 해보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상시 생각하시는 연극의 개념이라는 것이, 극장이 아닌 소박한 공간에 최소의 인원이 모이면 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가 연극인건가요?
송이원
그것도 연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저도 극장에서 좋은 영상과 조명을 쓰면서 예쁘게 만들고 싶죠. 근데 <노동집약적유희>를 하면서 그게 정말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 지원금에 의존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게 또 지원금이 언제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한두 번이야 돈을 모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연극이라는 게 너무나도 반자본주의적인, 더 나아가 비자본주의적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연극이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의문과 이 작업이 만나게 된 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시간과 공간이 계량화되어서 팔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시간과 공간에 연극이 지배를 받기 때문에 연극이 지속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걸 아예 없애버리자. 시간과 공간을 없애서 제약을 없애는 것, 따지자면 연극을 죽여 버리는 것,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터넷에 연극이 가능하도록 모든 걸 데이터로 만들어서 올리기 시작한 거죠. 이것도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다운로드를 받아서 게임판을 만들고 주사위를 오려 붙이는 게 다 타자의 행동에서 비롯되더라고요. 연극 3요소에 관객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정말 관객의 참여로 연극이 만들어진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는 모르고 도입한 것이지만 참여관객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죠. 연극을 죽여 버린 것이 결국은 연극을 지속하게 해주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노동집약적유희>를 2년 동안 진행하면서 배우게 된 것이 많은데 특히 이번 공연을 통해 얻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기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망들을 만족스럽게 찾아낸 것 같아요.
이지은
보신각에서는 아예 게임 키트를 다 나눠드렸어요. 그 때 공연을 보신 분이 인터넷에 평을 써주셨는데, 저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어요. 그 분 글 마지막 문장이 “이 연극을 각자의 집으로 들려 보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것 같다”였어요.
송이원
양가적이긴 해요. 연극은 정말 공공의 장소에서 토론을 벌이고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건데 정 안되니까 각자의 집에서 미세하게 연극의 장을 만들어보자 는 건데요. 좋게 볼 수 있다면 좋은 거고 어떻게 보면 슬픈 거죠.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만 하는 시대, 나의 시간과 공간을 쪼개어 팔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시대. 이런 시대에 연극을 하는 일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리는 법. <노동집약적유희>는 연극을 옥죄는 제약들을 가볍게 비틀어버림으로써 연극의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이 관객에게 들려 보낸 연극이 곳곳에서 풍성하게 발화한다면, 자본주의시대에 가장 비자본주의적인 연극이 생존하는 길도 그리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태그 노동집약적유희, 丙소사이어티,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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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호   2017-07-0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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