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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극단 동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페이지가 뒤섞인 극 중 소설 <우주 알>의 ‘이야기’를 무대 공간에 또 하나의 ‘이야기’로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놓는다. 미래에 이어 등장하는 현재 또 현재에 이어 등장하는 과거의 페이지들은, 혹은 조각들은, 사건의 순서로도 또 어떤 인과관계로도 설명되지 않기에 ‘이야기’는 그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우며, 더 나아가 그 ‘이야기’가 ‘현실’의 세계, 혹 어쩌면 또 다른 ‘이야기’의 세계와 맞닿는다는 점에서 안과 밖의 경계 또한 불분명하다.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이 고쳐지고 있는, 극장의 지극한 ‘현재’ 속에서 어떤 모양의 현재를 길어 올리고 구성할 것인지 묻는 듯 보였다.

송이원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무대에 압도되었던 것 같아요. 객석과 가까운 곳에 작은 달이 하나, 그리고 바로 뒤에 큰 달이 하나 경사진 상태로 맞붙어 있었는데, 이 무대는 남산예술센터의 원형 무대가 아니면 구현하기 힘든 무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연습실에서는 어떻게 이 무대 상태를 구현하여 연습하셨을까도 정말 궁금하였어요. 무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강량원

강량원
이 원형 무대의 디자인을 만들어낸 게 사실은 얼마 안 됐어요. 오랫동안 다른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것이었냐면, 먼저 이 전체 공간을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학교 공간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고, 과거이기도 하고, 그래서 무대가 운동장 같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계속하고 있었죠. 그리고 남산의 무대가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와는 다르니까 반원이긴 하지만 원형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극장의 환경과 운동장이라는 공간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러다 연습을 하는 과정 중에 배우들이 움직임을 찾아냈는데, 도는 움직임이 제 눈에는 인상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굉장히 오랜 기간 연습을 해나가면서 결국 움직임 속에서 공간을 찾아내게 됐어요.
인물들 각자가 도는 것, 그리고 여러 인물이 함께 도는 것을 크게 확장해 보면, 이 돈다는 행위 자체가 가장 원형(原形)적인 패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돌자’, ‘돌려면 (공간을) 동그랗게 해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까 갑자기 운동장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운동장밖에 안 보일 것 같은 인상이 떠오르라고요. 달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일단 아무것도 없는, 가장 간결한 형태의 운동장 이미지를 먼저 잡아냈어요. 그리고 이 잡아낸 것에 비친 또 다른 작은 원 하나가 다시 생겼고, 이 두 가지 공간이 공존하게 됐죠. 거울일 수도 있고, 비친 빛일 수도 있고요. 무대에서의 연습은 극장에 와서 할 수밖에 없었는데, 윤민웅 배우 집이 미아리고개 쪽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경사면 우리 무대랑 비슷한가?’ 이런 얘기를 해가면서 진행을 했습니다.
김정아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 같은 곳에서도 하고요(웃음).
강량원
네, 이런 곳에서 연습하면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도 극장에 일찍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무대를 지어놓고 적응하는 기간을 좀 가질 수 있었어요. 어제 공연을 보고 간 어떤 연출가랑 통화를 했는데, 자신은 공연을 잘 못 보겠더래요. 경사 무대를 써본 연출이라 배우들이 얼마나 힘들지 알아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송이원
객석에서 봤을 땐 소품이나 도구들이 딱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경사인 것 같아서 되게 신기했어요.
김정아
아니에요. 숟가락이나 밥그릇, 가방 같은 것들이 다 흘러내려서 모든 소품 바닥에 실리콘 처리를 해놓았어요(웃음).
신소영
심지어 배우도….
김정아
맞아요. 배우도 지탱을 안 하면 굴러요.
김석주
그래서 배우들 신발도 다 통고무였어요(웃음). 경사 무대에서의 공연은 처음인데, 평지에서 연습을 하다가 경사 무대에 섰을 때 평지에서 만든 것들이 그대로 적용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서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고, 감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지금은 좀 적응이 되었지만 처음에 힘들긴 힘들었어요.
김정아
경사 때문에 안되는 동작들을 하기 위해서 다리 한쪽에 압박붕대를 감고 부목처럼 대고 하기도 해요.
송이원
아름다운 장면들의 이면에 이렇게나 많은 노고가 있었군요. 아무튼 끊임없이 도는 움직임과 원형의 무대 같은 큰 테마들이 배우분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처음 비롯되었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이 도는 움직임을 처음 찾아내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문희
작품이 선형적인 시간 순서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여러 시공간의 장면들이 뒤섞여 있잖아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은 선형적이기 때문에 저희는 이 장면들을 조각이라고 이야기해요. 각각의 조각들이 ‘여자’의 출판사 사무실, ‘남자’의 반지하 방, 버스, 길거리 식으로 제각기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데, 조각에서 조각으로 이동을 하려면 장면이 전환되었다는 표시가 필요하겠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한 바퀴를 돌고 새로운 장면을 했던 것 같아요. 또 우주의 여러 차원과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우주 알, 웜홀, 이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직선적인 타임머신의 개념이 아니라 ‘어떤 시간’과 ‘어떤 시간’, 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 우주 공간에서 구부러지면서 통과한다는 이야기도 나누게 되면서, 시간이 엇갈리고 만나는 것에 대해 구부러짐과 곡선의 이미지를 잡기도 했어요.
송이원
그러면 도는 움직임이 작품의 요소로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되면서는 어떤 변화를 겪으셨나요?
김문희
제가 배우로서 무대에서 뭔가를 하잖아요. 말을 하든, 움직이든, 존재하든, 숨을 쉬든. 그런데 내 안의 원인으로부터 이 모든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거대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나를 계속 휘청휘청 돌게 만들고 치고 가는 것 같았어요. 내가 도는 게 아니라 주변의 세계 자체가 도는 것이라서 나를 이 세계에 휘둘리는 한 존재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최태용
도는 움직임을 만들면서 처음엔 느리게 도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느리게 도니까 템포가 일정해지더라고요. 그러면 좀 다르게, 빠르게 돌아보자, 이러기도 했다가, 두 배우가 같이 돌다 보니 또 템포가 같아지고.. 그런 과정들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독립적으로 개인의 속도를 가지자, 자기의 선을 정확하게 지켜서 돌자, 이런 이야기도 나왔고요. 그리고 도는 것도 그냥 돌지 말고 각자의 설계나 움직임의 구조를 가지자고 공유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도는 것이 어떤 감정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돎이 아니라, 훼손된 몸들이 ‘돌아지는’ 감각으로 보이게끔 수행을 하자,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추가되고 바뀌어 왔던 것 같아요.
김정아
여러 인물이 같이 도는 경우도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를 가지면서 여러 관계가 보일 수 있도록 시도했어요. 제가 맡은 ‘아주머니’의 경우엔 ‘남자’를 만날 때는 별로 안 돌고 딱 붙어있는 느낌이에요. ‘여자’를 만날 때는 돌면서 계속 충돌을 하고, ‘남편(아저씨)’과는 항상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가까워지지 못하는 식이에요. 이게 딱 정해진 법칙 같은 건 아니지만, 부딪혔다 떨어졌다 하면서 입체적으로 이어지게끔 만들려고 시도했어요.

김정아유은숙신소영차지수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퇴적되는 시간
송이원
아까 뒤섞이는 각각의 시공간들을 조각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연기 방법이나 메소드는, 장면들이 선적인 시간 순서로 진행될 경우 그 사건들의 흐름이 배우의 몸이나 감정에 쌓이고, 배우는 그 흐름이나 진행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충동들을 수행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그믐>의 경우는 조각과 파편들이 뒤섞여 제시되고 있는데, 배우분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기에 접근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김석주
일반적인 드라마는 개연적인 과정을 쌓아가는 방식이지만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진행 자체가 선형적으로 구성된 게 아니다 보니 조각에 집중을 하면서 각 조각들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분석할 때도 일반적인 시간 순서대로 조각들을 재배열해서 전체 그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출발하는 식이 아니었고, 이 조각들이 도대체 어떤 맥락으로 다음 조각을 불러오고 또 다음 조각을 불러오는가, 각각의 조각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가, 혹은 이것은 어떤 기억의 파편인가, 이런 식으로 이해를 시도하면서 장면을 만들었어요. 이건 심리적인 선도 아닌 것 같고, 어쩌면 직관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비논리적인 맥락이니까요.
강량원
조금만 덧붙이자면, 김석주 배우의 말대로 작품을 시간적인 순서로 다시 바꿔서 논리를 확립한 다음 소급해서 조각들을 이해한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런 인간적인 시간 논리를 기준점으로 삼지 않고자 했어요. 그래서 더 어려운 과정이었고, 무언가 다른 감에 의존하기도 했죠. 작품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공간 자체가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면, 시공간 연속체로서의 세계를 구성하고 싶었고, 이 시공간 연속체란 세계의 논리를 얻고 싶었어요. 이것이 작품에서 획득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 구성된 세계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자신만의 논리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것이 우주 알이라면 우주 알의 논리를 획득하기를 원했던 거죠.

(우주 알과 시공간 연속체에 대한 질문을 시도하지만 소통 가능한 문장으로 구사되지 않아 질문을 여러 번 번복하는 질문자)

강량원
어렵죠, 이게(웃음). 저희도 매일 이런 과정들을 거쳐요.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뭔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도 많고요.
송이원
가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해라는 건 논리적으로 A는 B고, B는 C고, ‘아, A-B-C라서 C구나’ 이런 논리적인 과정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가 집약된 하나의 이미지로, 혹은 하나의 직관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에게 <그믐>은 여러 조각들이 얽힌 망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준비 과정에서 기존의 시간관을 재정의하고 우주 알이라는 시공간 연속체를 작품 속에 담아내시고자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신소영
저희가 <이야기의 철학(노에 게이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인상 깊었던 게, 기억과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퇴적되는 것이란 내용이 있었어요. 제가 연습 때 잠깐 연습에 참여하지 못한 기간이 있었거든요. 그때 돌아와서 전달받은 게 ‘돌아야 된다’라서 저는 일단 영문도 모른 채 돌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장면에서 배우가 제 앞에서 도는 걸 볼 때 그게 그냥 퇴적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 인물의 역사인지, 그 둘의 관계인지, 미장센인지, 말로는 모르겠는데, 그냥 두 배우가 교차하기도 하고, 각자 돌기도 하는 움직임들이 그냥 퇴적 같았어요. 그래서 돌기 시작하고 한 4일 후에 ‘이래서 돌라고 했구나’ 했죠(웃음).
김문희
그런데 시간은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퇴적되는 것이라고 했을 때 퇴적되는 시공간의 경험에 대해 정말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이걸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방식으로, 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인 것 같고, 아마 우리는 비유나 표현들로부터 상상을 하기 시작할 텐데, 그 상상의 감각이 이해를 시도하는 이 순간 안에서 ‘이해하는 것 같다’는 감각을 주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또 저희가 어떤 이론이나 새로운 생각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그게 더 매혹적이거나 그 입장을 취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은데, 사실 저도 시공간 연속체, 12차원, 우주 알, 이런 것들을 전부 이해를 하고 공연을 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저 역시도 모두 이해하고 있지는 못해요. 다만 이것을 선택하고 싶은 거죠. 모든 시공간 연속체는 한 덩어리로서 퇴적되는 거고, 내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동시에 놓여있다는 세계관을 선택하고 싶은 것 같아요.
강량원
과거, 현재, 미래를 원인과 결과로, 아니면 이전의 것이 이후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함께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이 연극은 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성인이 된 ‘남자’가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 ‘영훈’을 찌르는 장면을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여 기억할 때도/무대에 제시할 때도 ‘남자’의 웃음이 ‘소년’의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그 ‘소년’의 웃음이 ‘남자’의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여러 시간대가 지금 이 순간에 퇴적물로 흐르면서 서로를 끊임없이 반영하고 있는 거죠. 이런 의미의 거대한 하나의 시공간 연속체를 만들어내려고 했어요. 전체의 큰 덩어리에 대한 인상으로 관객과 만나면서 다른 감각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파편화되고 뒤섞인 조각들이더라도 우리는 이 조각들을 우리가 느끼는 시공간 안에 늘어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이 조각을 먼저 놓고 그 다음에 이 조각, 이런 식으로 시간적으로 늘어놓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퇴적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땐 이 조각들을 동시에 함께 늘어놔야 퇴적이 되는 거죠. 여러 가지가 함께 퇴적되어 있듯 이 조각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였어요.
송이원
연출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제가 지금껏 시공간 연속체의 연속이라는 말도 선적인 시간처럼 이해해온 게 아닐까 싶어요. 연속적이라고 할 때 1에 2가 연결되고 2에 3이 연결되어서 그 연속체를 1-2-3으로, 또 결과로서의 3으로, 그러니까 순서의 논리로 이해를 해온 거죠. 반면 퇴적이라는 말로 미루어봤을 때의 연속이라는 것은, 서로 어떤 경계를 이루고 있기도 하지만 서로 침투되어 뒤섞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흐르고 지나가 버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쌓여서 늘 함께 있는 것이란 점에서 현재와 더불어 전체의 덩어리로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퇴적되어 한 덩어리로 함께 존재하는 시공간과 패턴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강량원
패턴에 대해서 저는 되게 인상적이었던 게, 어른들이 '사람 사는 거 뭐 없어. 사실 몇 가지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통찰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극 안에서 패턴은, 굉장히 중요한 행위 몇 가지, 그리고 그 행위들로 설명되는 삶, 또 그 삶 들의 관계, 더 나아가 그 관계들로 이루어진 사회와 우주로 확대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삶이 너무나 복잡하고 난잡한 것처럼 느껴져도 불필요한 것들을 다 걷어내면 사실 몇 가지 안 남잖아요. 그 어떤 것들로 이루어진 공간, 덩어리의 방식으로 그런 단순성을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의 행위들도 보면 몇 가지 없어요. 도는 것, 이야기하는 것, 기억하는 것 정도로 몇 가지 안 되는 행위들로만 작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생각이 들었던 건, 어떤 친구가 이 공연을 보고 저희가 굉장히 원했던 말을 해주었는데, 만약 이 공연이 한 덩어리라면 도대체 이 덩어리는 어떤 덩어리일까? ‘남자’가 마지막에 자기를 고백하는 한 순간(의 퇴적들)으로 이루어진 덩어리가 아닐까?, 라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험을 꽤 많이 하는 것 같거든요.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하면서 그 사람의 전 생애가 온전하게 이해된다든지, 아니면 어느 큰 선택의 순간에 나의 전체 삶이 순식간에 이해된다든지 하는 이런 순간들이요. 그런 순간들로 집약된 한 덩어리가 이 연극이라면, 그 순간에 그 사람이 펼쳐냈을 것은 굉장히 단순한 패턴으로 이루어진 몇 가지 행위일 거고, 그 행위들의 덩어리가 지금 이 연극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최태용윤민웅김문희김석주

‘되어지는’ 사람들
송이원
그러면 이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여자' 캐릭터의 경우 극 중반에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김문희 님에서 유은숙 님으로 전환을 하게 되고, 두 배우분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여자’라는 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어떤 의도로 이런 선택을 하셨던 건가요?
강량원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인물들을 줄여서 최소한으로 만들었고,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맡도록 또는 한 인물을 여러 배우가 쪼개어 맡도록 하였어요. 처음엔 '남자'도, '여자'도, '소년'도 모두 여럿이었는데, 이건 한 사람의 기억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기억과 현재가 나란히 무대에 제시되어야 할 때 다른 ‘나’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였고요.
‘여자’ 같은 경우는, 거의 발견을 못 하시긴 하던데, 일단 초반부에 김문희 배우가 맡은 부분에서는 소설의 원고를 ‘여자’가 계속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여자’가 소설 원고를 ‘남자’에게 넘겨주고, 극이 ‘남자’의 시선과 ‘남자’가 읽고 있는 원고의 부분으로 바뀌면서 ‘여자’를 맡은 배우도 또 전반적인 의상도 바뀌게 돼요. 그래서 옷도 대부분 칠해진 옷인데, 이게 잘 구별은 안 되지만(웃음), 처음에 여자만 칠해지지 않은 옷이고, 후반부부터는 남자만 칠해지지 않은 옷을 입어요. 이렇게만 구별을 해놓으면 잘 읽혔을 텐데 그건 또 아니고, ‘여자’의 기억과 ‘남자’의 기억이 또 섞이기도 하죠. 일단은 크게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여자’가 주체로서 읽어내는 과정이 있고, 그 이후엔 ‘남자’가 읽어내는 과정으로 옮겨가는 식으로요.
김문희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는 ‘나는 현실의 여자고 저 사람은 소설 속의 여자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차이를 만들어야 된다’의 방향으로만 집중하지는 않았어요. 일단 제가 맡은 ‘여자’의 상황은 ‘남자’가 제가 일하는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서 그걸 계기로 그 사람을 만나게 된 상황이잖아요. 두 사람이 고등학교 때 헤어지고 굉장히 오랜 시간 서로를 불러왔다는 점, ‘남자’의 긴 부재 끝에 드디어 만났다는 점에서현재의 만남이란 사건에 보다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부르고 불렀던 사람이 나타나서 반갑기도 하지만 또 한편 달라진 점이 공포스럽고, 그것이 우주 알이라면 우주 알은 뭘까 궁금해하고 이상하게 여기기도 하고요.
유은숙
저는 분명 현재라는 시점에서 ‘남자’를 만나 데이트도 하고 있고, ‘아주머니’가 쫓아다니고 있기도 한데, 생각할수록 제가 맡은 부분이 과거의 ‘여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을 해보니 이 부분의 ‘여자’에게 벌어지는 상황들, 끊임없이 불러일으켜지고 부추겨지는 것들이 어릴 적 죽음의 시간, 뭔가 묻혀있었던 시간들이고, 저는 계속 그 기억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조각들의 끄트머리에서 ‘아주머니’가 듣지 말아야 할, 또 제가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하는 것 같고요. 그 조각 안에서 어떤 경로를 거치고 어떤 시간들을 맞닥뜨렸기에 이 인물이 이런 말들을 뱉는 걸까, 생각을 하다가 ‘과거’ 내지는 기억이라는 시간을 찾은 것 같아요.
송이원
그러면 최태용 배우님께서는 극중에서 혼자 여러 캐릭터를 맡으셨잖아요. 여러 역할을 맡으시면서 인물마다 다른 신체를 만들어 차이를 보이시는 동시에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전체적인 맥락은 어떻게 잡고 가셨을까 궁금증이 들었어요.
최태용
일단 ‘영훈’이 같은 경우는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외적인 감각들과 말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은 어떤 특정한 선생님이 아니라 수많은 선생님들을 관찰하고 조합하여서 만들게 되었고요. 그리고 또 한 인물이 ‘영훈’이의 아버지(아저씨 역) 역할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자료들을 통해 몸의 중심을 구분 짓고 사투리 같은 말의 사용, 또 소품인 모자를 다 다르게 이용하는 방식으로 차이점을 만들어 봤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이라 연출과 합의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는데, ‘영훈’이는 자신이 가진 폭력성으로 인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잖아요. 과연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폭력적으로 만들었을까, 그 구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했을 때, 그건 부모의 폭력이었을 수도 또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제도권의 폭력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인물들을 오고 가는 폭력이라는 연관성이 작품의 맥락 속에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이원
김정아 배우님께서는 ‘아주머니’ 역할을 맡으시며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리기도 했어요. ‘남자’의 경우도 분명 폭력의 피해자이자 그 고리를 벗어나지 못한 ‘되어지는’ 인물로서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다시 씀과 겪음의 과정을 통해 어떤 주체성이나 능동성을 느끼기도 하였거든요. 반면 '아주머니'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몰려가는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김정아
용서를 왜 해야 하나? 라는 주제의 글을 봤는데, 용서라는 건 사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라고 하더라고요. 용서를 하지 않은 채로 사는 삶이 사람을 계속 구렁텅이로 몰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용서를 하는데, 또 역설적으로 그 살기 위해서 한 용서가 다시 이 사람을 못 살게 만들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용서라는 행위를 하려면 그 가해자를 만나지 말라는 말도 하고, 가해자를 만나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이 ‘아주머니’는 가해자인 ‘남자’를 계속 만나요. 그러면서 용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계속 쌓이는 것 같고요. 배우로서 이 인물을 만들면서 계속 두 가지를 교차시켰어요. 용서를 하려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하려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이렇게 상태를 계속 바꿔가면서 결정을 하기보다는 늘어놓았고, 관객들이 이 상태들의 교차를 보고 각자의 감상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죽이는 순간에도 죽인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못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끝내게 됐어요.
총체적인 세계를 전면적으로 만나기: 신체행동연기
송이원
그러면 슬슬 마무리를 지으면서, 너무 늦게 여쭤본 감도 있지만, 연출님께서 이 소설을 읽으시고 거의 바로 연극화를 결정하셨고, 바로 출판사에 전화를 거셨다는 기사를 봤어요.
강량원
약간의 과장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네, 그렇죠(웃음). 저희가 메소드를 계속 공부해오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을 이 텍스트를 보며 찾게 됐어요. 우리의 생각을 잘 펼칠 수 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각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조각들이 한 덩어리로서 존재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송이원
한 덩어리로 퇴적된 조각들이라는 작품의 관점에서 메소드에 대해 접근을 해보자면, 각 부분과 전체로서의 몸을 느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요? 제 것이지만 참 제 것 같지가 않은 게 이 몸인지라….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정아
저희 극단의 대표 메소드로 ‘신체행동연기’라는 연기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요. 내면이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감정의 표현을 중요시하는 방법이 아니고, 행동의 나열을 통해 인물이나 장면의 이해를 돕는 방법 중 하나인데요. 그냥 각 부분으로서의 신체를 사용하는 분절의 방식의 경우엔 우리가 의지로 그걸 작동시키는 것이고 그냥 행동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것과 다르게 힘과 작용을 신체로 전면적으로 만나는, 작용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김석주
네, 각 부분들로 신체를 분절하고 쪼개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이 조각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내 의지에서 비롯되거나 내 안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힘들을 만나서 그것에 의해서 '되어진다'라고 표현을 해요. 그래서 이 세계를 순서대로 하나하나, 부분부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세계를 전면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방법인데, 이 지점이 예전의 메소드와 지금이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이에요. 계속 외부의 힘들을 만나고, 이 힘에 의해 ‘만나지기’ 때문에 신체의 전면적인 일, 총체적인 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의 마무리를 (아직은) 서로 맞붙지 않는 생각과 참고문헌의 조각들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1. 흰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린 다음 그 동그라미 위 임의의 지점에서 출발해 그것을 따라 그린다. 이때 그 덧입히는 동그라미를 왼쪽으로 그릴지, 오른쪽으로 그릴지와 같은 방향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 그리기가 끝나면 또다시 임의의 지점에서 출발해 그 동그라미를 따라 그린다. 이것들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동그라미의 윤관선은 두꺼워져 있을 테고, 종이엔 보다 깊은 연필 자국이 새겨졌을 테다. 동그라미를 어떤 지점에서 그리기 시작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테지만, 중요한 것은 매번 어떤 지점에서든 ‘그’ 동그라미의 형태를 반복해 그린다는 것이며,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반복이 매번 똑같을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2. 중세 철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에 대한 물음을 던지자마자 아래와 같은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고 한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고,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은 존재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시간이 마치 존재하는 것인 양 말하곤 한다. “미래의 일들에 대해 그것이 있게 될 것이라고, 과거의 일들에 대해 그것이 있었다고, 그리고 현재의 일들에 대해 그것이 흘러가고 있다고 말한다. 흘러가는 것조차 무(無)는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에 대한 질문은 그 존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시간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대체될 것이다. “세 개의 시간이 있다. 지나간 것의 현재, 현재적인 것의 현재 그리고 다가올 것의 현재. 이 세 가지는 영혼 속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을 수는 없다. 지나간 것에 대한 현재의 기억,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현재의 관찰, 다가올 것에 대한 현재의 기대.”

-김애령, 『이야기로 구성된 인간의 시간: 리쾨르의 서사 이론』, 철학과현상학연구, pp.273-275.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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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eewons@gmail.com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제148호   2018-09-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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