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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세기의 사나이>가 떠올리게 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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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in은 지난 공연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리뷰를 제안합니다. [응답하라]는 공연 창작자들의 메타 비평을 의도하고 기대하는 리뷰입니다. - 연극in 편집부
왜 어떤 역사적 인물, 시기나 시대가 의식에서 지워지는가? 역사적 사실들을 제거함으로써 위치가 강화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유효하고, 의미있는 과정들을 의식적으로 왜곡함으로써 누가 이득을 취하는가? 과거를 묻어버리는 것이 사회의 어떤 계층에 해당하는가? 행해지고 있는 변조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그런 변조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 페터 바이스, “기록극을 위한 주해”, 만프레드 브라우넥 편, 『20세기 연극: 선언문, 양식, 개혁모델』, 김미혜·이경미 역, 연극과 인간, 2000
1919년 3월 1일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석차 상경했던 25세의 한 청년(덕배)이 우연히 독립선언문 낭독에 참여하고 만세 운동에도 끼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진압대의 총에 맞고 쓰러지는데 알고 보니 저승사자의 착오였다. 사태를 수습하려는 저승사자로부터 특별한 약속을 받은 그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 세계 최장수 기록을 세울 때까지 살게 된다는 이 약속 때문에 그에게는 무려 100년의 삶이 더 주어진다. 그런데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125년을 살다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앞에 펼쳐진다는 백 세 인생이 과연 축복일지 의심스럽다.
덕배가 살아가야 할 시간이자 극의 시간인 100년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한 소시민이 그 순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우연히 역사의 주요 장면에 참여하게 된다는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닮아 있지만, 남의 역사와 우리 역사는 보는 태도를 달리하게 된다. 극 중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그것도 무척이나 서글픈 이야기로 만들어질 만큼의 기구한 사연들인데, 그 사건들이 오롯이 한 개인에게 얹힐 때 더해지는 무게와 압력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3·1절 백 주년을 연극은 어떻게 기념해야 할까? 우리 각자가 "각개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이루고 "신예와 독창으로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보비"한다면 그것으로 족할 수도 있으나, <세기의 사나이>는 민족 자유와 인류 평등을 선언한 역사적 행동을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복원하는 것이 재현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은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연극에 주어진 몫임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 연극은 애초 기대와는 달리 백 년의 삼 분의 일 밖에 다루지 않는다. 어느 단계에서 어떤 힘이 작용했기에 나머지 삼 분의 이가 사라졌을까? 100년짜리 이야기를 1953년까지만 다루고 2019년으로 건너뛰는 것이 형식 논리상으론 마뜩잖지만 나머지 70년이 펼쳐지더라도 과연 감당할 수 있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기왕 이렇게 된 것 이번 작품이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가 되어 후속편의 마중물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이어질 에피소드들을 예상해본다. 제2부는 80년 광주를 반드시 다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김일성은 오판 말라"라는 구호가 들어가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80년 광주에 북한 특수부대가 수백 명 내려왔다는 흰소리를 하고 일부 언론은 그것이 논쟁할 가치가 있는 주장인양 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3부가 가장 최근을 다룬다면 제1부에서 다뤘던 일본군 강제 징집 및 성노예 피해자들을 우리의 정치, 사법, 외교 권력이 어떻게 대했고 누구를 대변했는지도 다뤄야 한다. 또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손에 들려져 있던 태극기가 한 세기를 지나 현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다룰 필요가 있으며, 그럴 때 이 삼부작은 수미상응한 결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의 무대 연기와 배경의 만화를 연동하는 시도는 나름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장르 간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장치를 통해 몰입과 "만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상의 효과를 추구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 이미 관객의 시각적 경험은 웬만한 무대 배경이나 영상으로는 압도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우리의 지난 100년의 역사는 몰입에 따른 정서적 카타르시스로 귀결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이상 이 장치를 연극에 처음 도입했던 서사극이나 기록극의 접근 방식—비록 이 또한 그렇게 새롭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을 채택했더라면 어땠을까?
2019년 3월에 이보다 시의적절한 공연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습적이고 대중적인 문법에 기댈 필요도 있다. 객석에서 웃음과 흐느끼는 소리가 적잖이 들려온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지만 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의 힘이 여전한 이상 관객이 연민과 공포를 배출하고 정화한 채로 극장을 떠나도록 하는 데 이 이야기가 머무를 수도 없고 머물러서도 안 된다. 나는 <세기의 사나이>가 그러한 세력에 분명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연극을 보며 페터 바이스의 질문이 생각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이스의 질문에 우리 연극이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지 무대와 객석에서 지혜와 상상력을 함께 모아야 할 때다.

[사진제공: 극단 명작옥수수밭, 아트리버]

세기의 사나이
일자
2019.2.22.(금)~3.3(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최근호 연출 최원종 출연 김동현, 오민석, 이갑선, 김왕근, 유승일, 박종태, 최영도, 김승환, 문경태, 임정은, 박현수, 김형섭, 김민규, 이창민, 나명선, 전소영, 김설빈, 정수연, 조수지, 서상원, 박석원, 정아람, 민태홍, 주연우, 한민구 프로듀서 이시원 무대디자인 심채선 조명디자인 성미림 조명어시스트 홍유진 영상감독 최종찬, 한준구 만화 조성훈 의상디자인 김민경 음악감독 김동욱 안무 석수정 소품디자인 박현이 사진 이강물 기타리스트 이남우 조연출 송상혁, 이슬비 무대크루 박성진, 이경훈, 박형원, 김형석, 고자현, 김수민 조명 오퍼레이터 김윤아 영상 오퍼레이터 이슬비 음향 오퍼레이터 강수현 기획 아트리버

관련정보 http://theater.arko.or.kr/Pages/Perf/Detail/Detail.aspx?IdPerf=257250

태그 임승태, 세기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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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태

임승태
평론과 드라마터지 작업을 오가며 말과 몸이 만나는 특별한 시공간을 탐구한다.
www.facebook.com/im.seungtae
156호   2019-03-2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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