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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리뷰]미래연극의 초석이 되기 위한 실패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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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서울미래연극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의 슬로건은 ‘FAIL BETTER.’ 그만큼 참여팀들은 마음껏 시도해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전 공연이 KOCCA 콘텐츠문화광장 스테이지66에서 진행된 만큼, 대학로를 벗어난 호기로운 도전이 느껴진다. 본래, 서울미래연극제의 전신은 2010년에 등장한 ‘미래야 솟아라’였다. 미래야 솟아라는 서울연극제에 속한 프로그램으로서, 신진연출가 발굴을 목적으로 했다. 그것이 2017년, 서울연극제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서울미래연극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변화는 축제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9회 서울미래연극제 공식 안내 책자에 따르면 “서울미래연극제는 기발한 표현기법과 참신한 무대 언어로 새로운 연극적 감성을 개발하고, 미래연극의 초석이 될 작품을 발굴·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미래야 솟아라에서는 신진 창작자들만 참여 가능했다면, 서울미래연극제에서는 기성의 창작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는 뜻이다. 거시적 안목에서 융성하는 연극현장을 일구어내겠다는 의지로 이해되나, 그에 따르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 미래연극의 초석을 찾는 자리에서 현재의 주역들이 등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미래’연극제라면 안전한 성공보단 가능성 하나로 밀어붙이는 위험한 도전이 더 어울리는 듯하니 말이다.
올해 서울미래연극제에는 총 다섯 작품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서류심사부터 실연심사까지 거쳐 무대에 오른 작품들이다. 극단 노마드의 <메이데이>, 창작집단 지오의 <양팔저울>, 극단 상상창꼬의 <후에>는 공연됐던 작품을 다시 다듬어 올렸다. ICONTACT의 <필라멘트> 또한 이미 공연된 바 있으나, 부산에서 1회, 대한민국연극제 in 서울 네트워킹페스티벌에서 1회로 시범에 가까운 초연이었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 개중에 극단 비밀기지의 <아웃팅>은 유일한 신작이다. 참가작 모두는 각각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듯 보인다. 그중에서도 ICONTACT와 극단 비밀기지는 신진창작자들로 구성된 집단으로서, 미래연극의 초석이 될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경험한 듯하다.
<아웃팅>
극단 비밀기지의 <아웃팅>은 김동식 작가의 장르소설 『아웃팅』을 연극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아웃팅>의 서사는 크게 프롤로그와 메인 서사로 나뉜다. 프롤로그는 안제홍 연출이 김동식 작가의 또 다른 단편소설을 직접 각색한 내용으로서, 우주선 내에서 세 인물이 깨어나 각자 자신들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내용이다. 이후 메인 서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아웃팅’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인간과 인조인간의 구분이 불분명한 미래 시대에 인조인간을 전문적으로 세상에 아웃팅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은, 결과적으로 우리에 갇힌 소수의 인간 외에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인조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아웃팅한다.
작품에서는 ‘재미난 연극’, ‘연극으로서의 SF’를 어떻게 관객에게 체험케 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그것은 SF를 어떻게 연극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도 맞물려 있다. 그 결과 <아웃팅>은 빈 무대를 선택했다. ‘연극성’으로 SF장르에 정면 돌파하는 형세다. 연극은 영화에 결코 물리적 자본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영화가 할 수 없는 것에서 승산을 보아야 할 것인데, <아웃팅>은 영화에 비해 시각적으로 만족시키기 어려운 지점을 영리하게 청각으로 보완해냈다. 상업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풍부한 음향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배우들의 연기와 감각적인 조명은 상상 속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관객은 빈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연극 또한 영화 못지않게 SF장르를 구현해낼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다.
연극시장에서 장르연극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장르연극이 현 연극시장에 필요한 분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6년부터 올해 4회째 진행 중인 소극장 혜화당의 SF연극제만 보아도 그러하다. 일부 마니아 관객층이 형성되기도 하고, SF연극에 관심을 보이는 관객들이 꾸준히 극장을 찾는다는 점에서 SF연극의 존립 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그러니 <아웃팅>은 반가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창작자가 진심으로 장르연극을 애정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원작을 변형하되 원작자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원작이 가진 미덕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웃팅>은 여러 지점에서 ‘미래연극의 초석’에 가깝다. 다만, 구체적으로 묘사해놓은 소설을 단시간으로 압축하여 모든 것을 설명하려니, 아쉬운 지점도 나타난다. 풍부한 음향으로 서사의 틈을 메우고자 하였으나, SF상업영화에서 익히 들어봄 직한 음향은 관객의 논리에까지 침투하진 못했다.
본래 ‘아웃팅’은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강제로 밝혀지는 일을 의미한다. 즉, 원작의 제목이 ‘아웃팅’인 것은 어쩌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한 반추의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 의도는 아닐까. 인조인간이라는 약자에 대한, 현대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인간의 폭력. <아웃팅>은 미래사회를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자 시도하고 있었다.
<필라멘트>
ICONTACT의 <필라멘트>는 네 명의 인물이 한 공간에 갇힌 채 시작되는 추리극에 가깝다. 네 인물은 극 중에서 서로 각기 다른 “핸디캡”을 지닌 채 결박된 상황이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안대가 씌워져 있지 않고 누군가는 손이 풀려 있으며, 누군가는 다리가 자유롭고, 누군가는 모든 신체가 결박된 상황이다. 작품에서는 이 각각의 결박되지 않은 부분을 핸디캡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엄밀히 하자면 ‘어드밴티지’에 가깝다.
네 명의 인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자극하거나 의심하고, 때론 신뢰를 쌓는다. 그 끝에 결국 세 인물이 한 인물을 대상으로 모략하고 계획범죄를 저지른 것임이 드러나게 된다. 세 명의 인물은 정부 기관에 소속된 인물들로서, FLOR라는 집단에 소속된 캐럴의 사상을 의심하여, 그녀를 납치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을 야기한다.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는”, 그래서 “진정한 정신 개화를 통하여 완전하게 발아래로 굴복시키는” 일을 벌인다. 즉, 상황을 조작하여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통제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가깝다. 극의 말미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납치사건이 아니라, 거대집단을 배경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현실임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Fail Better'에 맞게 <필라멘트>는 다양한 연출적 시도를 선보였다. 객석 천정에 천을 달고 사람의 형태를 그림자로 형상화하거나, 다양한 조명을 다양한 방향으로 사용하고, 무대 위 TV 모니터를 이용하여 지속해서 명화들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풍부한 연출적 구성은 관객의 흥미를 유발했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등장한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집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장치들을 실험해본 것은 앞으로 나아갈 신진창작자라는 지점에서 필요한 시도였다.
<필라멘트>는 박용희 연출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탄생되었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개인으로서 감각했던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캐럴에 대입하여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적 현실을 전달하고 싶었으리라 짐작된다. 거대사회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자 청년세대라는 지점에서 충분히 의의와 시의성이 있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그것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무대 위에 필라멘트 전구가 홀로 깜빡일 때에야, 잠시나마 위태로운 개인을 연상시킨다. 외롭고 쓸쓸한 필라멘트는, 외롭고 쓸쓸한 개인, 캐럴과 궤를 함께해야 했지만, 그 잠시간의 깜빡임 외에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필라멘트>는 분명 대중과 소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방법에 있어서 문제 되는 지점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품은 남녀인물 모두에게 다소 폭력적인 언어와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남성 인물의 특정 신체 부위를 극적인 연출을 위해 조명하는 설정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또, 여성 인물을 향한 여러 인물의 끊임없는 신체적·언어적 성희롱은 불필요해 보인다. 여성‘인물’을 자극하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여성’인물을 자극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작품에는 주로 남성의 시각에 입각한 여성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캐럴은 주로 성적으로 대상화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인, 캐럴이 주체적인 태도를 취하는 지점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해지고 말았다.
<필라멘트>에는 이 작품만의 미덕이 분명 존재한다.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고자 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자 하는 지점에서, ICONTACT라는 팀이 보다 진지하게 연극에 임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기에 작품에서의 윤리와 창작과정에서의 윤리에 대한 지점을 고민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번 서울미래연극제에서는 극단 비밀기지와 ICONTACT를 통해 신진창작자들의 재기발랄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기성창작자들과의 경쟁 속에서도 이들이 당당히 어깨를 견줄 수 있었던 것은, 서울미래연극제가 참신함과 기발함이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으리라. 앞으로도 서울미래연극제가 모든 창작자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정성만큼, 새로운 연극적 감성을 깨울 도전적인 작품을 지속해서 발굴·지원하겠다는 의지를 유념하면서, 다양한 미래연극의 초석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사진제공: 서울연극협회]

아웃팅
일자
2019.10.19(토) ~ 10.20(일)
장소
콘텐츠문화광장 스테이지66
원작
김동식
연출/각색
안제홍
음악감독
공한식
무대디자인
Shine_od
조명디자인
김민우
조명오퍼
박준규
음악오퍼
이은지
포스터디자인
김영채
출연
홍성민, 김태윤, 박상윤, 박철웅, 조혜안, 김남은, 한성현
극단 비밀기지
관련정보
http://www.st-future.co.kr/showinfo_02_d.asp?idx=15
필라멘트
일자
2019.10.26(토) ~ 10.27(일)
장소
콘텐츠문화광장 스테이지66
작/연출
박용희
조연출
최지혜
음향
신준영
조명
조경수
영상
최다은
진행
송희
분장
안영현
출연
강승환, 백규진, 남현우, 김주효
ICONTACT
관련정보
http://www.st-future.co.kr/showinfo_02_d.asp?idx=13

태그 아웃팅,필라멘트,장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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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연극비평집단시선, 공연과 이론의 모임, 『한국희곡』 편집위, 문화잡지 『쿨투라』 소속. 연극평론가 및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한다. yjlife1@gmail.com
제172호   2019-11-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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