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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아닌데, 나의 아픔을 어떻게 전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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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의미하는 용어는 질환(illness)과 질병(disease)으로 구분된다. ‘질환’은 증상과 고통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을 뜻한다. 이 경험의 차원은 아픈 사람을 비롯하여 가족들, 그리고 더 넓은 사회적 관계망이 증상들과 아픔을 지각하고, 공존하고, 반응하는 방식을 폭넓게 아우르는 것이다. 반면 ‘질병’은 의료 종사자들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의 이상으로 파악되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지는 현상이다1). 즉 ‘질병’이 아픈 몸에 대한 3인칭의 해석이라면, 질환은 1인칭의 해석이다. 전통적으로 아픈 몸에 대한 접근은 ‘질병’에 대한 접근이었지만, 그 경험에는 3인칭으로 환원될 수 없는 1인칭의 영역이 언제나 존재해왔다. 물리적 통증을 수반하는 질병의 경우 통증이 갖는 비호환적이고 개별적인 속성이, 그 1인칭의 영역을 더욱 좁은 코너로 몰아넣곤 했다. 그렇다면 아픈 사람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이 영역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일까? 그 경험에 접근하고,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는 아픈 사람들이 전달하는 질병 내러티브를 통해서이다.

연극을 기획한 조한진희 작가는 동명의 책에서 투병 경험을 토대로 질병의 사회정치적 접근을 시도한 바 있다. 이번에는 ‘아픈 몸’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을 좀 더 잘 ‘발화하는 몸’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무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공연에는 질병 경험이 있거나, 현재 질병을 경험하고 있어 질병 이야기가 마음속에 ‘고여있는’ 여섯 명의 배우, 수영, 목우, 다리아, 쟤, 희제, 나드가 등장한다. 기획자가 이야기하듯 배우들은 무대에서 ‘멋진 배우’임을 보여주겠다는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2)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서 자신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영은 근육병을 앓고 있다. 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길고 깊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몸이 좋았을 때 친했던 이들은 수영의 증상을 확인하고는 당황스럽다는 이유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수영에게서 멀어졌다. 수영은 얼굴 근육을 통제할 수 없어서 아플 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은데 사람들은 웃는 그녀를 오해한다. 오해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사람들이 수영을 이해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질병의 경험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수영의 웃음의 의미를 알아주는 사람이 어색한 악수 대신 “다음 주에 또 볼까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수영에게 뛸 듯이 기쁜 순간이다.

목우의 어머니는 목우의 조현병을 발견하고 딸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에서는 반항하지 않아야 빨리 퇴원할 수 있으므로 마치 괜찮은 것처럼 지냈지만, 그 시간들은 목우에게 씻을 수 없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 목우에게 꿈이 있었지만, 사회에서 그 꿈들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정신과 약을 먹어 “문서 정리도 할 수 없는 몸, 강박 때문에 물건을 정리하기 힘든 몸, 설거지조차 물소리가 말을 거는 환청으로 들려 일할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그녀에게 간직되어 있다. 내면의 목소리들이 목우는 “선하고 아름답고 존엄”한 존재라고 말해주고, 그녀는 그 목소리들에서 힘을 얻는다.

다리아는 난소에 생긴 혹을 떼어내며 여성의 몸이 자궁으로 환원되는 경험을 한다. 난소의 혹을 떼어낸 다리아의 몸이 아니라, 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감사하는 부모님, 자신의 몸이 편하자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는 성직자들, 가임기 여성의 지역별 숫자까지 표시한 전국 출산 지도를 통해서다. 여성을 자궁으로 환원하는 사회에 분노한 다리아는 “나라를 위한 자궁이 아니니 아무도 이야기하지 말라”며 자신의 몸에 대한 발언권이 오직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을 천명한다.
(왼쪽부터) 공연하고 있는 수영, 목우, 다리아
쟤는 유방암 4기 환자이다. 쟤는 항암을 위해 삭발을 하는 동영상을 공유할 정도로 씩씩하고,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사회는 암환자에게 “아픈 사람이 왜 일을 하냐”고 묻는다. 운 좋게 일을 하게 되어도 쟤는 아픈 사람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병원에 눈치 보지 않고 갈 수 있을지, 한쪽 가슴이 없는데 브래지어를 않고 편한 복장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쟤는 일하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인데, 왜 암환자에게는 그조차도 허가되지 않을까.

희제의 무대는 크론병으로 인한 고통과 함께 병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회, 그리고 환자의 몸을 조각조각 쪼개서 진단하고 병원의 과를 떠돌게 만드는 파편화된 의학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그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몸 컨디션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건강한 사람들 속에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 속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로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무대가 만들어낸 연대의 모습들이 희제에게 위안과 새로운 연결들을 만들어내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드는 18살, 교실에서 책상다리에 걸려 넘어진 후 수 차례의 수술과 잘못된 진단, 처방을 받고, 통증과 후유증으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이다. 질병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수년간 재활을 하고 미국에까지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왔지만, 그녀의 고통은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취약한 몸으로 그녀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아픈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픈 사람의 역할은 “고통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것”임을 선언한다.
(왼쪽부터) 공연하고 있는 쟤, 희제, 나드
여섯 개의 질병 내러티브는 배우 각각의 내면에서, 무대 위에서 다소 각색된 모습으로 소개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내러티브가 ‘각색’되어 표현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질병을 ‘완치를 통해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중요성과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는 ‘질환’으로 적극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우에게 환청은 자신을 정신병원으로 밀어 넣고, 꿈을 이룰 수 없는 유약한 몸을 빚어낸 원망스러운 실체였지만, 이제 환청은 “세상의 연약한 것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해석된다. 나드는 오랜 시간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지만 이제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완전한 치유로부터의 자유”를 원한다. 새로운 서사들은 이들의 경험을 재구성하게 하고 삶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었다. 새로운 의미들은 여섯 명 배우들의 삶 속에서 차곡차곡 축적된 것일 테지만, 무대와 무대가 만들어낸 아픈 사람들의 연대는 그 내러티브를 정합적으로 꽃피우게 했을 것이다.

배우들의 삶을 갈아 만들어낸 진한 내러티브에 녹아있는 아픈 몸과 자아에 대한 ‘붙잡기’와 ‘놓아버리기’의 변증법적 시도3)들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아프기 전의 자아를 ‘붙잡는’다는 것은 그저 아프기 전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치료와 재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은 환자의 신체와 정서, 역할과 관계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 같지만 아프기 전의 ‘나’를 찾는 과정은 결국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자원이 된다. 나드는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글을 쓰고, 국카스텐의 콘서트에 가고, 춤을 춘다. 반면 병에 걸리기 전의 사회적 역할을 찾기 위해 질병의 치료와 재활에 힘을 써도 결국 병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놓아버리기’ 과정에서 이들은 또 다른 삶의 목적을 확인하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공연은 아래 링크를 통해 8월 31일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fbclid=IwAR1UkZUWyj5c-9OrF8KrxLgO7n2q7Z1a5JhdzUUnVhNPx_xS7mtkWPQeVxg

[사진 제공: 다른몸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일자
2020.07.11.(토) ~ 07.12.(일), 온라인 공연 병행
장소
대학로 이음아트홀
출연
나드, 다리아, 목우, 안희제, 쟤, 홍수영
연출
허혜경
기획
조한진희
주최/주관
다른몸들, 인권연극제, 장애인문화예술판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damom.action/posts/608456723125218
  1. Arther Kleinman, 1988. Illness Narratives. New York: Basic Books.
  2. 조한진희(반다). “‘아픈 몸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세상이 바뀔거야”. 2020.07.05. www.ildaro.com/8778/
  3. Aujoulat, I., Marcolongo, R., Bonadiman, L., & Deccache, A. 2008. “Reconsidering patient empowerment in chronic illness: a critique of models of self-efficacy and bodily control”. Social science & medicine 66(5): 1228-1239.

태그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시민연극, 이음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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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민

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에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에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제183호   2020-07-2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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