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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부터 미끄러지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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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기념비 탐사대〉: 기념비는 미래의 너와 나의 것
창작그룹 MOIZ(이하 ‘MOIZ’)의 〈미래 기념비 탐사대〉는 광주의 불꽃 모양의 돌덩이들을 발견하고 이를 추적해 보는 것으로 연극의 출발을 알린다. 실제 광주 곳곳에서 5·18민주화운동의 기념물은 현재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표로 이들에게 튀어나온다―이는 “기억 화석”으로 명명된다. 그리고 이 의미 상실의 기호는 5·18민주화운동을 재현의 방식이 아닌 차원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관한 윤리학―재현하지 않는 방식이나 재현 불가능성 자체를 이야기하는―에 근거하기보다 그 의미 없음을 매개하려는 어떤 소박한 흥미와 호기심의 차원에서 어떻게 미래와 과거를 합성할 수 있을지를 궁구하는, 역동적 고고학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어떤 신선함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는 동시에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영점(0)의 윤리로도 연결되는데, 곧 이들에게는 상실된 과거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다시 체험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현재로 매개될 수 있느냐의 차원에서‘만’ 의미가 촉발하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건 5·18의 정신과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와 이를 경유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과거를 붙잡아 두(려)는 기념비는 이를 온전히 현재화할 수 있는가. 과거의 의미는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변화되거나 사라질 것인데 말이다.
현존이 아닌 재현을 통한 표상으로 반복 수행되는 역사의 무게, 예컨대 기념비가 표피적 차원으로, 너무 무거운 것으로 감각됨은 비판이 아닌, 솔직한 이들의 직접 경험에서 드러난다. 각종 기념행사와, 기록 작업, 관련 공모전 따위를 경험하며 이들은 5·18보다는 5·18이 얼마만큼 현재를 짓누르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동시에 이것이 제도적인 기회와 대가로 이어질 수 있음도. 그러한 노력으로 MOIZ 역시 5·18이라는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그들의 매개도 이의 연장선상으로도 보인다. 곧 게임의 그래픽 화면과 사운드 등이 더해진 레이어에 5·18 사적지들을 올리고, 이 오래된 건축의 재구축을 통한 미래의 새로운 쓰임에 관해 이들이 진행한 시민 대상 설문조사를 공유한다. 이는 5·18의 재현이 아닌 5·18 이후를 지속하는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는 상상력을 토대로 한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작업 방식과 형식은 이들이 소개에서처럼 작가, 영상 작가, 시노그래퍼 등 여러 정체성을 가진 협업 그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무대 위에서 수행(연기)한다.

이들의 윤리는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오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일상적 존재가 아니라, 역사와 타자성을 다루는 예술가의 윤리적 소명의 차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곧 5·18과 자기의 충분한 연결이 없음의 상태, 곧 예술 작업을 위한 소재주의적 착취가 되지 않는 차원에서의 자연스러운 연결성을 본인의 내적 윤리에서 찾으려는 윤리적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없이 밝았던 모습의 퍼포머들과 기표의 유희적 연결로 진행되던 극은, 일종의 메소드 연기에서의 극적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따라서 처음에 기념비의 의미를 지움은 의도적으로 무지를 가장한 것이라 하겠다.

결국, 사라져 가는 기억의 현존을 마주하고 듣는 과정에서 그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마주하게 된다. 단순히 휘발하는 기호에 무한한 상상력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래(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써 구성되지만, 이 무거운 과거를 왜곡하거나 쉬이 변형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작업 과정의 성실성이나 진지함은 이를 방어하는 마음의 부적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작업과 삶의 분절은 끝까지 고뇌하는 존재로 이들을 구성한다. 앞서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구 광주적십자병원’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는, 미래라는 상상적 시점으로 확장된 주체가 과거가 실린 장소를 상상적으로 전유하는 저마다의 응답을 통해 민주주의적인 세계를 구성했다.
미래는 과거를 끊임없이 그대로 소환하는 것만으로는 구성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확인하고 그 매개의 불가능성마저 끊임없이 논함으로써 오히려 미래는 도착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들이 지은 상상의 건축이 과거를 폐허로 만들고 이를 대체하는 영구적 건축의 물리적 토대가 아닌, 아직 세워지지 않은 현재를 구성하는 것임을, 그러한 상상을 통해 이질적 주체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임을, 과거와 동시대로부터 과거를 연결하는 것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곧 이들은 기념비가 아니라 기념비를 구성하는 예외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다면, 기억에 인접하지 않은 이와 기념물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그러한 상황이 가정되기는 했지만, 광주는 그러한 곳곳의 기념물과 함께 의미가 새겨진 현존과 무덤이 같이 존재한다. 광주에서 극단을 하며 동 지역의 학교를 같이 수학했던 이들의 작업은 따라서 장소 특정적인 특이성을 띤다. 5·18민주화운동에 광주라는 이름이 따로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러한 기억이 우리 모두의 기억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이러한 이름은 어떤 논쟁의 결을 넘어 역설적으로 보편성을 갖는다.―이는 또 다른 기억과 기념(비)의 과제를 상상하게 한다. 바로 MOIZ가 서울에서 작업하고자 한 연유이기도 할 것이다.
작업에서, 시작 지점, 곧 극단적으로 기억과 기록의 단서가 사라진, 그리하여 기념물이 어떤 의미로도 판별되지 않은 상황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이들은 역사에 대한 매개가 완전히 사라진, 극단적인 기록 작업과 기념 문화 속에서, 이러한 스펙터클이 도착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5·18과의 예외적 관계성을 ‘짐짓 모른 척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따라서 MOIZ가 놓을 수 없는 고민은 재현과 결부된 예술(가)의 윤리적 차원에서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과거를 무겁게 전달하기 자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중간에 여전히 그들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중간’은 시대라기보다는 예술과 정치, 또는 그 사이에서 위치하는 어떤 존재의 양상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의미의 역사와 폐허의 현재 사이에서 어떤 미래의 조각을 구출한다.
〈귀쫑긋 소셜클럽〉: 얼굴이 없는 이야기를 듣는 얼굴들
암전되자 조명 기구와 각종 기기의 전기 신호가 편재한 빛의 극장이 드러난다. BLANK LAB(구하나, 김보람, 김연재) 〈귀쫑긋 소셜클럽〉이 보여주(려)는 건 ‘극장’ 자체이다. 극장을 부재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건 매우 단순하나 예외적인 경우다. 이러한 어둠에서 출현하는 게 목소리다. 무대 중앙에 놓인 스피커는 어둠 속에서 배우의 현존에 접근한다. 반원형 극장을 따라가는 관객석에 놓인 스피커들은 각각 다른 다섯 개의 이야기를 발화한다. 하나의 구역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배정되어 있다. 조명이 따라가며 하나의 소리가 거세지기도 하지만, 소리는 동시다발적이다. 관객은 이동 가능하다는 지침을 받는데, 자리를 옮겼을 때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가까워지지만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은 멀어진다는 원리에 지배받는다. 동시에 자리바꿈은 누군가의 빈자리를 내가 점유하는 일인데, 이는 한정된 관객을 받는 공연에서 다른 이가 그 자리를 비워줘야 성립하는 규칙성을 갖는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배우의 음성이다. 그리고 배우는 이야기를 전한다. 다시 말하지만, 스피커는 배우의 현존을 대체한다. 연극이 배우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보는 연극이 가진 최소한의 문법이 배우의 목소리와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쨌든 그 소리는 소리를 내는 공간이 필요하고, 긴 스피커는 배우의 물리적 크기를 대신하고 있다. 예컨대 처음의 희미한 빛 속에 음성을 내는 존재가 스피커인지 배우인지를 판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쩌면 배우일 수도 있을 스피커에 어떤 현존의 기대를 걸고 있는 관객(‘저 뒤에 배우가 있을 거야!’)에게, 이 공연이 연극의 문법의 어떤 경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러한 소리는 사실 ‘완벽한’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건 어떤 틈으로부터 존재하며 어떤 조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로서만 의미가 있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귀쫑긋 소셜클럽〉의 소리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소리와 이야기를 단순하게 기표(표현)와 기의(의미)로 구분 지어 본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의 소리는 각각의 관객, 유동하며 소리와 범벅이 되는 관객을 상정하는 가운데, 이야기 자체의 몰입과 완성에 목적이 있지 않고, 다만 극장이 수많은 소리의 집합임을, 그리고 나아가 그 소리의 조율과 간극, 또 화음임을 보여준다. 소리 위에 소리가 쌓이고, 소리 옆으로 소리가 지나가며 사실 쌓이는 건 없고 어떤 것이 지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정신-분열적 연극은 주로 사운드의 ‘현존’과 ‘기표’를 앞세운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한 사례로도 보인다. 스피커는 배우보다 진실하게 곧 거짓 없이 자신을 구성한다. 어떤 의도도 없이 주어진 대사를 재현한다. 만약 배우들이 이 역할을 대신했을 경우, 상대방의 관련 없는 대사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러한 기계적 현존의 양상은 연극을 최소한의 것들로 벼려내며 연극의 구성 원리를 메타적으로 심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아가 ‘음악적인 것’과 ‘장소적인 것’을 온전히 포개는 행위, 극장을 오케스트라의 공명으로 바꾸는 것, 순수한 음의 파고로 제시하는 건 점점 소리에 대한 독해가 아닌 소리에 대한 감각을 제시하려는 듯했다. 이러한 순간은 매우 짧지만, 전면에 내세웠다 해도 우리가 언어를 이해 가능한, 인지 가능한 어떤 것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통해 미완의 시도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에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가 울리고, 이동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때 홀연 자리를 떠서 먼 것을 가깝게 보려는 한 관객이 있었다. 배우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고 떠나도 되는 객석에서, 그 스피커를 이내 무심하게 바라보는 관객에게 그는 유일한 퍼포머가 되었다. 예컨대, 피터 브룩의 ‘빈 공간’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는 떠도는, 떠돌아야 하는 관객이 되었다. 누군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또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그렇게 관객과 객석은 분리되지만, 사실 이야기는 이동을 통해 완성될 수 없다. 다섯 개의 이야기는 연결되거나 종합될 수 없다. 따라서 이미 사람들에게서 여러 이야기를 수집해 이를 들려주는 역할을 하며, 이야기는 극장 바깥의 시간의 우리에게서 다시 수집되고 또 들려질 것이라는 마지막의 어떤 짧은 이야기는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 꽤 불명확한 데다 공허하다. 어쨌거나 하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중심이 될 수 없고, 이야기는 단순히 쌓이고 대체될 것이다. 어쩌면 이 연극은 배우의 현존을 스피커로써 보여주는 게 아니라 배우를 입은 스피커의 현존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목)소리만이 울려 닿는 극장은 극장과 배우에 대한 물음을 안긴다. 이는 연극의 조건과 연극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발화는 이 연극 이후의 시간과 이를 통해 그 이전의 시간, 그래서 이 연극이 갖는 고유의 시간성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로써 이 연극의 조건을 참작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면, 이는 앞선 이야기들과 같이 사라지기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끝없는 채널을 송출하며 중간중간 자사 광고를 삽입하는 TV 방송 형태는 극장의 먼 미래일 수도 있을까. 이런 상상과 함께 기술로 극장을 번역하거나 연장하는 어떤 공연의 형태에서, 그 기술의 매끈함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드러내는 극장과 그 안의 존재의 불완전한 양상 같은 것‘만’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처음 각자 선택한 카드가 좌석과 이야기로 연장되었지만, 그 연결은 불완전했고, 이후 극장 바깥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어떤 시간도 없었다.
‘서치라이트’와 상이한 것들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기술을 매체로 번역한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은 현존을 기술로 번역한다. 또는 대체한다.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역사와 미시사의 상상적 고리를 만든다면, 〈귀쫑긋 소셜클럽〉는 미시사들로써 역사의 사라짐을 기술한다.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발화하기 위해 배우가 된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은 재현을 위해 배우를 선택한다.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실재하는 장소로부터 출발해 극장을 소통하고 개입하는 정치적 장소로 구성한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은 실재를 문학적 장소로 변환하는 것에서 시작해 극장을 음향적 공간으로 탐험하게 한다.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연극이 할 수 없는 일과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은 연극이므로 할 수 있는 것과 연극이어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동시에 시도하려 한다. 〈미래 기념비 탐사대〉의 유희가 역사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에 눌리지 않아 신선했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의 유희는 문학의 언어가 이다지도 만져지지 않을 수 있나 하는 의구심에서 신선했다. 〈미래 기념비 탐사대〉가 역사의 파편을 줍는 데서 시작한다면, 〈귀쫑긋 소셜클럽〉은 일상에서 이야기의 조각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결국, 두 이야기는 개인의 역사로 수렴할 것이다.

상이한 두 공연, 그렇지만 드라마 연극의 규범을 벗어나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어떤 형태로 기입될 수 있는 이 두 공연이 남산예술센터의 서치라이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존재한다는 건, 이 플랫폼이 유연한 확장성과 실험성의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간다는 의미를 띤다는 결론을 이끈다. 결과적으로 남산예술센터가 텅 빈 극장인 동시에, 이미 수많은 공연이 올라갔으며 또한 이 내려다보는 플랫하지 않은 공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 혹은 전복할 수 있을지의 상상력과 미끄러짐의 차원에서 충만한 실패들을 생산하는 극장이라는 점에서, 서치라이트는 개별 창작자들의 자기 언어를 그대로 지지해주는 차원만으로 창작자들이 극장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역으로 창작자의 언어가 매개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 기획은 날 것으로서의 언어, 또는 부재하는 언어로도 느껴졌다.

극장은 온전히 창작자의 몫과 시간으로 맡겨졌다. 가령 관객과의 대화를 창작자 자신이 시간에 쫓기며 나와 바로 진행하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는데, 예술가의 업무가 창작을 넘어 너무 과중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서치라이트의 예산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어쩌면 제작 극장의 역할은 공간을 열어두는 것―물론 선별적으로―과 함께 온전한 하나의 작품으로 이를 포지셔닝하는 것―그것이 ‘빛을 탐색하는’ 어떤 실존적 여정임을 잊은 채―이 거의 다이지 않을까 하는 어떤 회의적 생각 역시 스쳐 갔다. 극장의 조건은 극장의 과정을 구성하는 조건, 그 총체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현재 지속하는 다양한 제작 플랫폼의 내실을, 개별 작업들에 관한 비평을 넘어, 한번 이야기하고 분석해보는 것/자리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두 작업만으로는 서치라이트를 종합할 수는 없겠지만, 다만 조금 더 적극적인 제작 극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가능할 것이다.

[사진 제공: 남산예술센터]

미래 기념비 탐사대
일자
2020.07.11.(토)
장소
남산예술센터
공동창작/공동연출
도민주, 문다은, 양채은, 전하선
기획
양채은
대본
구성 도민주
화면
구성 문다은
촬영
고나리
조명디자인
강혜정
조명 오퍼레이터
고은
드라마터그
임인자
창작그룹 MOIZ
관련정보
http://www.nsac.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312
귀쫑긋 소셜클럽
일자
2020.07.15.(수)
장소
남산예술센터
작/연출
구하나, 김연재
연출/사운드구성
김보람
사운드감독
장미
조명디자인
강혜정
조명 오퍼레이터
박세인
촬영
윤수진
목소리
권주영, 김강희, 김정, 남재국, 박세인, 박용우, 윤정로, 이찬비, 장미, 정혜영, 정혜지, 한재영
BLANK LAB
관련정보
http://www.nsac.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313

태그 미래 기념비 탐사대, 귀쫑긋 소셜클럽,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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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관

김민관 아트신 편집장
아트신(artscene.co.kr) 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관련한 아카이브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최근에는 비평, 기획, 창작의 교환과 매개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작업을 병행 중이다. 퍼포먼스 관련 서적의 편집에 다수 참여한 바 있으며, 저서로 『퍼포먼스아트의 다층적 시선』(2011)이 있다.
제183호   2020-07-2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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