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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소리를 찾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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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빈약함을 토로하며 여성 연극인들이 연출, 작가, 배우 할 것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내고 있다. 더 이상 역할의 경계에 연연하지 않고 연극이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로 제 3회를 맞이한 페미니즘 연극제를 통해 그런 작품들이 계속 공연되고 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윤상은의 <죽는 장면>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연극이나 뮤지컬, 발레, 영화, 소설 할 것 없이 인물과 서사를 창조하는 작업에서 여성 캐릭터는 늘 빈약했다. 성녀 아니면 창녀인 캐릭터만 많고 그마저도 남성 인물을 각성시키는 존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가 발레는 그 여성 인물이 죽는 것으로 서사가 완성된다. 연출가 윤상은은 발레 레퍼토리에서 ‘죽는 장면’에 의문을 품는다. 왜 발레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매번 죽는지, 그것도 예쁘게 말이다.
한 세계가 죽는 장면
윤상은은 18~19세기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발레 작품 중에서도 현재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라 실피드>, <지젤>,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다섯 작품에서 사랑 때문에 미치고 결국 죽어버리는 여성 주인공들을 탐색한다. 아름답기만 한 ‘죽는 장면’이 오히려 얼마나 기괴한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예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예쁘게 ‘애절함’을 표현할 수 있을지, ‘입을 찢’으면 마음속에 환희가 없어도 ‘화사함’이 표현되지 등등, 발레를 하면서 품었던 질문을 하나씩 꺼내어본다. 그 과정에서 발레의 역사에 기입된 여성혐오를 확인한다. 그리고 여성 인물이 죽는 장면이 윤상은의 몸을 통해 여성혐오적인 발레가 죽는 장면으로 바뀐다.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한때는 유명 발레리나의 유명한 죽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거기에서 자꾸 자기표현이 튀어나온다. 애절하게 울어야 하는 장면에서 울음이 나오지 않기도 하고 너무 펑펑 울어서 애절하기보다 눈물, 콧물 다 나와 더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예쁘게 울고 예쁘게 죽는 것은 이상하다.
한 세계가 태어나는 장면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백조의 호수>까지 올라오며 발레와 점점 괴리를 느끼는 자기를 표현하던 윤상은은 끝나기 직전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발레를 좋아하지만, 이제는 발레를 하지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치지도 못하게 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막으로 그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때와 직접 목소리를 들을 때의 차이는 현격했다. 마치 목소리를 잃었던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되찾은 것 같은 순간이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온 감상과 질문을 참고할 때, 이 순간의 어색함과 또 한편의 뭉클함은 관객들이 동시에 느낀 것 같았다. 무용 공연에서 말을 하면 안 되나? 왜 안 되지? 그동안 왜 안 했지?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왜 무용을? 장르적 편견, 장르적 구획에 갇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경험이었다.
2월에 했던 초연을 보지 못해서 그때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그때에는 발레 작품들에서 여주인공이 죽는 장면과 발레라는 장르에 내재한 여성혐오를 좀 더 탐색했던 것 같다. 그 공연으로부터 5개월 후 이번 공연에서는 좀 더 ‘나’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레와 나와의 갈등을 느끼고 그걸 넘어서는 과정, 한 명의 페미니스트로서 자각하는 과정 등 오랜 시간 발레와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한 이의 공연이었다.
사실 여성혐오의 문제는 어떤 장르가 더 문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해 있다. 기실 예술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번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도 새롭게 확인하게 된 것은 성폭력 가해 사실이 아니라 ‘우리 편’인 줄 알았던, 아니 적어도 이런 상황을 이해할 줄 알았던 이들이 얼마나 눈이 멀어 있는지 이다. 윤상은의 공연은 자신의 눈 멀었던 상태에 대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여성혐오적인 발레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발레의 시각으로 구성된 나의 세계도 문제라는 인식이 이 공연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 점에서 윤상은의 공연은 솔직했고 이 공연이 앞으로 윤상은이라는 예술가가 나아갈 동력이 될 거라 믿는다.

*참고 자료
박성혜, 「우리가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발레를 바라보는 시선-윤상은의 <죽는 장면>」, 『몸』 Vol.304, 창무예술원, 2020.03.
윤단우, 「여성의 사랑은 죽음으로 완성되는가?-윤상은 <죽는 장면>」, 『댄스포스트코리아』 2월호, 한국춤문화자료원, 2020.02.
윤상은, 『death scene ballare 죽는 장면과 발레 일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사진 제공: 윤상은 ⓒ이은정]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

죽는장면
일자
2020.07.15.(수) ~ 2020.07.16.(목)
장소
1M SPACE
안무/출연
윤상은
드라마터그
이민진
무대디자인
김서연
영상오퍼레이터
한정민
조명오퍼레이터
유소정
사진기록
이은정
영상기록
김태경
그래픽디자인
김보라
주최
페미씨어터
주관
윤상은
협력
플레이포라이프
관련정보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20004725

태그 죽는장면,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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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주

유연주
연극비평집단 시선 동인. 글 쓰는 사람.
likegoethe@nate.com
제183호   2020-07-2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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