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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세상, 쨍한 절망
[전문가 리뷰]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김소연 _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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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윤성호 작, 전진모 연출)은 생생하지만 사라져버린 한바탕 꿈같다. 몽환적 스타일이라거나, 현실 너머의 시공간이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뭔가 깊숙이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지만 그렇다고 무대 위의 저 사람들이 현실의 어떤 시간 어떤 공간으로 딱 맞춰지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현실 에서 자라나오지 않은 모호함과 그럼에도 다른 한편 내 삶을 찌르르 울리는 선명함의 기묘한 동거. 이 연극, 체홉을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한 겨울, 얼어붙은 세상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재창작한 이 연극에서 원작의 자취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백 년 전 러시아 시골농장은 지금 이 도시 어느 작은 빌딩의 인문사회과학 계간지 [시대비평] 편집실로 옮겨졌고 바냐와 가족들은 [시대비평]에 청춘을 바친 김남건 팀장과 함께 일하고 있는 편집실 식구들이 되었다. 은퇴한 노교수 쎄레브랴꼬프와 그의 젊은 아내 엘레나는 광고계 출신 편집장 박웅과 그의 젊은 연인이자 편집디자이너인 정새별이 되어 편집실에 새롭게 합류하고 편집장과 김남건 팀장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바냐 아저씨>의 연애사건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엘레나를 사이에 둔 바냐와 그의 친구로 농장을 드나드는 의사 아스뜨로프의 사랑은 정새별을 사이에 둔 김남건 팀장과 그의 친구 과학철학자 박용우의 삼각관계로, 아스뜨로프를 사이에 둔 소냐와 엘레나의 사랑과 열정은 박용우를 사이에 둔 편집실 막내 김유경과 정새별의 말 못할 가슴앓이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연극이 출발하고 되돌아오는 체홉이란 원작의 이런 자취들은 아니다. 이 자취들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맞닥뜨린 절망 앞에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는 서성거림에 스며들어 있다.

    [시대비평] 편집실을 무대로 새해 시무식에서 시작되어 봄호 첫 교정지가 나오기까지 연극은 겨울의 한 가운데를 지나간다. (여름 끝자락 혜화동1번지 작은 극장을 꽉 채우고 있는 관객들이 내뿜는 뜨거운 체온에 아랑 곳 없이) 이곳을 들고 나는 사람들은 추위에 종종 거리고, 움쩍도 않는 매서운 겨울에 잔뜩 움츠리고 있다. 겨울은, <바냐 아저씨>의 첫 장면에서 아스뜨로프가 투덜거리는 무더위의 끈적거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이 연극을 온통 지배한다.

    한 겨울의 찬바람을 의심하거나 저항하지 않듯이 이 연극의 누구도 이 위기를 의심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시대비평]의 위기는 어찌할 수 없는 한 겨울의 칼바람처럼 어찌할 수 없는 완강한 현실이다. 김 팀장은 이 겨울을 마치 처음 맞는 것처럼 휘청대고, 편집장은 더 이상 추운 겨울에 맞설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절망한다. 그를 지켜보는 새별은 이 겨울에서 빠져나가고 싶어도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안다. 이곳을 들락거리는 용우는 다른 사람과 달리 무거운 겨울코트를 걸치고 있지 않지만 그 역시 팔짱을 낀 채 잔뜩 움츠리고 있다. 회계를 맡고 있는 보나는 이 추위를 걱정하지만 늘상 오가는 계절을 지내는 것처럼 이 겨울을 지내고 있고, 기산은 더 분주하게 움직이며 추위를 잊으려 한다. 막내 유경에게 이 겨울은 매사에 아직도 서툴기만 한 세상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시대비평]의 위기는 누구도 묻지 않는 한 겨울의 차가움과 겹쳐있다. 겨울은, [시대비평]의 절박한 상황을,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 꽁꽁 얼어붙은 세상을, 그 세상의 황폐함과 쓸쓸함을, 그 속에서 빠져드는 절망을, 그 출구 없음을 부조한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과시하지 않고 불러들이기
  • [시대비평]의 위기가 겨울 찬바람으로 대체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구체적인 현실의 시공간이 모호함으로 물러서는 대신 체홉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완강한 현실 앞에서 더 이상 현실적 힘을 갖지 못한다는 무기력함, 자신의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 앞에서의 휘청거림, 신념과 가치에 대한 회의,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놓여있는 현실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나약함, 삶의 어떠한 함정마저도 비켜서게 하는 삶의 고단함, 그럼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 이 연극이 건져 올린 이러한 삶의 모습은 체홉을 말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체홉에서 출발한 모호함은 남지만 백 년 전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고, 체홉의 언어에 기대지 않고, 체홉의 긴 호흡의 전개와 세세한 순간들에 의지하여 무대 위의 삶이 쨍한 겨울바람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연극에서 체홉은 셰익스피어보다 더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체홉의 무대에서는 현대의 고전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느껴진다. 체홉에 대한 도전적 읽기가 체홉이 그려내는 삶보다 앞선다. 이 때문에 체홉 공연의 인물들은 삶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학교 졸업공연으로 초연되었다는 이 연극은 그러한 도전적 읽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무대 위에 서 있는 편집실 사람들과 그들의 친구는 마치 내가 언제가 마주쳤을 혹은 나 자신인 것만 같은 현실감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젊은 배우들의 연기도, 젊은 연출도 모두 놀랍다.) 이 연극에서 체홉은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마주 본 삶을 읽고 그리기 위해 불러들여진다. 초연의 제목이 <여기, 바냐> 이었다든가. 극작, 연출, 연기 모두 체홉을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체홉에 도달한다. 체홉도,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도, 모두 반갑다.

태그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얼어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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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김소연 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을 보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웹진 31호   2013-09-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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