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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도 없고 연민도 없는
[전문가 리뷰] <창신동>

김소연 _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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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창신동> 2013.10.10-20
  • 창신동. 낙산 기슭에서 시작해서 흥인지문으로 이어지어지는 오래된 동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는 지나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으로 등장했던, 아니면 낡은 집들과 좁은 골목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같은 분위기에 카메라를 들게 하는 이색적인 동네. 고층빌딩이 쭉쭉 뻗어 올라가는 서울에서 오래된 동네가 우리 앞에 드러나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 지워지는 시간들 속에서 오래된 동네들은 잃어버린 시간의 저장소 같다. 그런데 풍경으로 서 있는 낡은 담벼락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그곳엔 되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추억도 판타지도 없다. 왜냐하면 담벼락 안쪽에는 시간이 멈추어 있는 추억이 아니라 지금 내 삶에 흐르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연극 <창신동>은 그 담벼락 안의 이야기다.


    창신동


    그때그때 덧대며 살아온 삶

    그런데 이곳에 흐르는 시간은 사뭇 지독하다. 대문이자 현관문인 문 하나만 열면 골목과 곧바로 이어지는 작은 집. 안쪽 벽면을 따라 깊숙이 놓여 있는 두 짝 싱크대가 부엌이 되고 한쪽엔 바닥의 높이가 다른 방들로 들어서는 문과 다른 한 켠으로 멀찍이 화장실문이 보이는 작고 휑한 거실. 무대의 불안한 기운은 때 묻고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이 아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덧대고 이어 붙여 살아가는데 갖추어야 할 것들을 갖추고 있는 이 집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닮았다. 삶을 위협하는 결핍을 지우려 안간힘을 쓰면서 덧대고 이어 붙이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한 삶과 닮았다.

    아직 아이를 키우기에는 젊은 여자가 우는 아이를 어르고 있는 첫 장면. 이어서 현관문이 열리고 하나하나 이 집의 식구들과 이웃들이 들고나는 동안 젊은 여자는 사람들을 맞고 그들을 위해 상을 차리고 이들의 고단함을 염려한다. 그러나 아직 앳된 이 젊은 여자는 이 집의 안주인도 아닐뿐더러 식구도 아니다. 여자가 언니, 오빠, 할아버지,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들은 여자의 보살핌을 만류하고 미안해하지만, 그들 또한 여자의 보살핌 없이는 삶을 지탱하는 것이 어렵다.

    오늘은 그녀가 스스로를 언니라고 부르며 어르고 있는 아기의 엄마 장례식날. 평생 미싱을 돌리며 살아온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나 역시 노동자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벼랑 끝까지 몰아가는 세상 속에서 남편이 목숨을 끓자 남편을 뒤 따라 그녀 역시 어린 생명을 두고 목숨을 끊었다. 아이의 혈육이라곤 이모와 할아버지뿐. 아이의 이모는 겨우 이 집에서 탈출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집과 식구들의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아이의 할아버지 동식은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집의 주인인 동식은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봉제공장 미싱사다. 자신의 손으로 바람 막을 벽을 세우고 비 가리는 지붕을 얹어 마련한 이 집에서 동식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불거져 나오도록 평생 미싱을 돌리며 일했다. 한때 이 불안한 삶의 탈출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 적도 있지만, 결국 덧대고 이어붙인 이 집에 남았고 이 집에서 어린 자식을 두고 목숨을 끊은 딸의 장례를 치루고 있다.

    저 혼자서 살아낼 수 없는 것은 이들을 돌보고 있는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이복 오빠라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이 동네에 흘러와 살게 되었다. 그때 어린 그들을 동식네 식구들은 가족처럼 거두었다. 지붕이 잇닿아 있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 온전하지 않은 삶, 부서진 삶을 그때그때 덧대며 살아온 것이다.


    폭력 속에서 지탱되는 삶

    그러나 이 연극은 비록 온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상처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덮어주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극은 시종 성폭행과 살인 등 충격적인 사건, 원수의 손에 자라난 아이라는 끔찍한 비밀 등의 극단적 상황을 향해 치달아간다. 그런데 가혹함은 그러한 극단적 상황에서 삶이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가혹함은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 그것에서 비롯되는 관계들이 결국 이들의 온전하지 못한 삶, 부서져 가는 삶을 그나마 지탱해주고 있는 버팀목이라는 것이다. 제 집에 불을 지르고 제 가족을 죽도록 폭행한 이의 손에 구출되어 그의 이복 여동생이 되어 삶을 이어온 그녀나 결국은 세상의 벼랑 끝에서 그녀 말고는 부여잡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녀의 이복 오빠나 그녀에게 푼돈을 쥐어 주며 그녀의 몸을 더듬는 동네 아저씨들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녀가 든 칼이 그녀와 그녀의 이복 오빠의 굴레를 끊지만 결국 그녀의 손에 든 칼을 제 손으로 옮겨 잡은 동식은 그녀에게 혼자 남은 손녀를 맡길 수밖에 없고, 혼자 남은 그녀에게는 등에 업힌 아이가 유일한 삶의 버팀목이 된다. 연민도 없고 위로도 없다.

    연극의 한 장면. 그녀의 이복 오빠와 동식의 친구인 재광이 주인 없는 이 집의 거실에 앉아 취해가는 장면. 재광은 한때 번성하던 창신동과 문래동을 회상한다. 미싱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쭉쭉 뻗어 올라가는 아파트들에 자신의 공장에서 만든 부품들이 쫙 깔리던 그 때. 아마도 그때 그녀의 이복 오빠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낡은 집들에 불을 지르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죽도록 패면서 터를 닦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땅과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비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창신동


    연극 <창신동>의 가혹함은 그 폭력 속에서 지탱하고 있는 삶이 그때그때 이어붙이고 덧대어 지어진 무대 위의 낡은 집 거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불안한 삶들이 예외적인 어떤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국 근대화, 산업화의 역군들의 놀라운 역사에 얽혀 있는, 우리의 욕망과 폭력에 대한 둔감함 그리고 여전히 그 폭력에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언뜻언뜻 드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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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김소연 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을 보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웹진 34호   2013-10-2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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