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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0년, 당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전문가 리뷰] 신주쿠 양산박 <달집>

이진아 _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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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
연극 <달집> 초연당시 포스터
[출처] 국립극장
공연예술아카이브
  • 노경식의 1971년 작 <달집>은 그의 첫 장막극으로, 신인 작가에게는 드물게도 국립극장(당시 명동국립극장)을 통해 소개할 기회가 주어졌던 작품이다. 당시 임영웅 선생이 연출하고 백성희 선생이 간난 노파 역할을 연기했던 <달집>은 그 해 백상예술대상 연기상과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희곡사의 대표적 리얼리즘 작품을 꼽을 때면 <달집>도 항상 70년대를 대표하여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한국희곡의 리얼리즘 작품을 무대 위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올 초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으로 ‘한국 근대 리얼리즘 명작선’이라는 이름하에 천승세의 <만선>과 김영수의 <혈맥>이 재조명된 바 있기는 하지만, 최근 십 수 년간 한국 리얼리즘 희곡문학은 우리 무대에서 백안시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모르긴 몰라도, ‘시의성 없는’, ‘뒤쳐진 감각의’, ‘왠지 뻔한’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눈앞에서 힘차게 공연되고 있는 <달집>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우리의 그런 편견이 희곡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방해한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이 든다.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이 아닌, 펄펄 뛰고 눈앞에서 살아있는 인물의 개성이 오늘에도 여전히 시의적인 까닭이다.

    창신동
    연극 <달집>의 한 장면 [출처] 한국공연예술센터-SPAF ⓒSang Hoon Ok

    다시 보는 한국희곡문학의 리얼리즘

    작품의 주인공인 성간난이 살아 온 시간은 일제강점기로부터 한국전쟁까지이다. 말하자면 한반도 근현대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그 삶에 녹아있는 셈이다.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고 이제 믿고 의지했던 두 손자의 불행까지 지켜봐야 하는 간난 노파의 삶은, 어찌 이런 인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극적이다. 그런데 작품은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을 말하지 않는다. 성간난이라는 인물을 말한다. 한국판 억척 어멈이라 할 이 노파는 서릿발 같은 눈빛이 느껴지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릴 듯 개성이 뚜렷한 인물이다. ‘개호랭이’라는 별명으로 그저 추상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강퍅한 성격이 마르고 꼿꼿하며 강단 있는 육체를 가진 촉각적 실체로 그려지는 그런 인물이다.

    요렇게 헷풍댓풍 돈을 써서 살림이 될 줄 아냐? 제집년이 손이 크면 내내 서방놈 등골만 빼묵다가, 종당에는 빌어묵기 딱 알맞고…… 어른이 한마디 시키먼 다소굿이 말을 들어묵어 줘야 내가 살제. 정원 대보름에 쓰게 쬐그만한 미역 한 가닥에다가 멩태 두 마리, 해우 한톳…… 해우는 우리 새끼가 잘 묵은깨로 대보름에도 쓰고…… 해우만 달랑 사가지고, 핑- 장바닥에서 돌아오라고 어른이 안시키드냐?

    그녀의 개성을 완성하는 것은 전라도 말이다. 작가가 종종 단어마다 괄호를 쳐 이해를 도와야 할 만큼 토속적이고 질퍽한 전라도 말은 간난 노파의 성격을 부각시킨다. 노파의 대사 마디마디에는 그녀의 사고방식, 그녀의 한계도 녹아있다. 없는 살림 살뜰하게 건사하되, 대를 이을 손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것이 그녀이다. 그 모진 세월과 치욕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오직 ‘살림을 건사해야한다’, ‘집을 지켜야한다’ 그것 하나이다. 그 의무 앞에서는 죽을 권리도 없다.

    빨치산에게 몸을 더럽힌 순덕에게 집을 나가라고 다그쳐 목을 매어 죽게 한 후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간난 노파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파는 손자며느리의 주검을 보자 느닷없이 ‘철썩’ 따귀를 올려붙인다.
    지지리 니년도 복이 없는 년이다! 손아랫것이 어른 앞에서, 요렇게 액사헌 꼴을 몬첨 뵈는 벱이 아니어. 요 배운데 없고 인정머리 없는 것. 요 할미가 너헌테 죽으라는 말은 안헸다? 할미가 고런 말을 헸으면 언제 그렜다고 당장 말헤 봐라. 기왕 죽을라먼 느그 친정 식구들헌테나 가서 죽어야제. 그레 송장 치울라먼 비용은 안드는 줄 알았드냐. 죽는 사람이 업고지고 가냐고 허지만, 고레도 들어갈 것은 다 든다. 널도 사들이고, 내다 파묻을라먼 상두꾼들 술도 받아야 허는 벱이어. 고건 죄다 돈 아니고 흙을 퍼서 준다드냐?

    이를 갈며 죽은 자의 뺨을 철썩 내리치며 괴기 서린 소리로 중얼대는 간난 노파는 대단히 그로테스크하다. 우리는 전 막을 통해 그녀가 순덕을 몹시 아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집안에서 내쳐야 하는 것은, 간난 노파가 배우고 살아온 법도이자 의무이다. 다른 방법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의무로 사는 삶이다. 자식을 위해 집안을 위해 사는 삶이다. 때문에 그녀가 순덕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이런 식이다. 사사로운 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의무 외에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을 한 번도 자신에게 허용한 적이 없기에. 여기에 한 시대의 전형으로서의 인물이 있다. 전형이자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개성으로서 간난 노파가 있다.

    창신동
    연극 <달집>의 한 장면 [출처] 한국공연예술센터-SPAF ⓒSang Hoon Ok

    경계인의 시선으로 노래되는 <달집>

    이런 작품을 일본어로 공연하는 용감한 시도를 신주쿠 양산박이 한다. 그들의 <달집>을 보고 있으려니, 2011년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초연하여 호평을 받았고 올 초 다시 재공연 되었던 작품 <백년, 바람의 동료들>이 생각난다. <백년, 바람의 동료들>의 시간적 배경은 2010년 8월 29일 저녁으로, 이 날은 일본 오사카 조선인 마을 이카이노의 한 술집이 개업 20주년을 맞은 날이자 ‘한일병합’ 100돌의 날이다. 개인의 시간에 한일 백년의 역사가 겹치는 것이다. <백년, 바람의 동료들>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언제나 경계인이었던 ‘자이니치’재일, 在日의 삶을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는 가족을 모두 잃어야 했던 제주 4·3항쟁과 1970년대 일본인 유학생에게 억울하게 덧씌워진 간첩 혐의와 고문,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살아야만 했던 아픈 과거들이 있다. 당시 극작가 조박은 “경계에 사는 경계인이야말로 동서남북, 좌우상하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일’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자이니치 극작가 조박이 해설자로서 등장하여 해설과 노래를 붙여 일본어로 공연되는 <달집>은 신주쿠 양산박이어서 가능한 공연이었다. 본디 덧붙인 해설은 일본인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도 낯설고 한국근현대사도 낯설며, 작품의 배경이 된 남원도 정월대보름도 달집태우기 풍습도 낯설 일본인 관객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꼭 일본인 관객에게만 낯설까? 미군의 북조선에 대한 폭격이 대부분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이었으며 투하된 폭탄의 총량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투하했던 양의 3.7배나 됐다는 사실이 일본인 관객에게만 새롭게 다가왔을까? 한국전쟁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민간인 희생을 내었던 전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과연 일본인에게만 필요한 설명이었을까?

    극의 초반 ‘일본은 전후 68년, 한반도는 전후 0년’이라는 말과 자막은 사실 적잖이 충격이었다. 휴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단과 전쟁이 일상이 되었다기보다는 그저 무감해졌다 하는 것이 맞을 우리와 달리, ‘자이니치’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언제나 현실이고 현존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분단의 현실로 인해 우리가 그들을 조총련이니 교포니 하고 제 맘대로 호출할 때, 그들은 ‘자이니치’라는 현존으로, 그 ‘사이’에서 ‘경계’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 시선으로 말해주기에 우리는 그것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신주쿠 양산박의 공연은 한반도의 비극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상투적인 결론으로 혹은 극적 감동이나 센티멘털리즘으로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달집>에 노래를 입혀 옛 이야기로 거리를 두는 한편, 다큐멘터리 영상 자료를 통해 사실성을 강조한다. 신주쿠 양산박의 <달집>은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전쟁이 없었다면 사람의 정과 자연의 은혜로 가득하고, 가난하지만 평온한 삶을 살면서 어떤 변화도 없었을, 어느 마을의 이야기입니다”라는 서사로부터 시작한다. ‘꽃-소녀-사내-작은 관-무덤가의 꽃’으로 이어지는 조박의 노래로 이어지면서 <달집>의 역사로부터 우리를 한 발 물러서게 한다. 서툰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대사도, 연극적 타블로Tableau, 정지된 화면가 강조된 장면 연출도, 객석과 무대 사이에 샤 막을 두고 연극적 세계임을 강조한 장치도, 신주쿠 양산박의 연출은 희곡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한국적 정서니 역사니 하는 것을 굳이 무대 위에 재현할 이유가 없음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무대 위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한다. 신주쿠 양산박의 <달집>은 우리가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이제 그만 들어도 좋다고 오만했던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고 발견하게 만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창신동
    연극 <달집>의 한 장면 [출처] 한국공연예술센터-SPAF ⓒSang Hoon Ok

태그 달집, 신주쿠 양산박, 김수진, 노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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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본지 편집위원 
club.sookmyung.ac.kr/playgoer
웹진 35호   2013-11-07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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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만이
일본에서 일주일 전 공연되었던 이 공연을 보았습니다. 신주쿠양산박 변신을 기대했었는데, 이진아 샘 말씀대로 한국적 사실주의와 다른 약간 배에 힘이 들어가도 일본 냠새가 폴폴나는 일본식 리얼리즘 공연이었다라구여.

2013-11-07댓글쓰기 댓글삭제

최영주
근데, 그렇기에 과거 익히 알던 희곡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한국과 일본이 섞이 경계의 사실주의적 공연이었지요. 때문에 더욱 진지하게 볼 수있었고요.공연이 끝나고 일본 관객 인터뷰를 하였어요. 일본 공연을 본 것 자체가 일본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었거든요, 그 공연이 지원을받아던 모양이던데, 아마 우리문화예술위원회 직원인듯.

2013-11-07댓글쓰기 댓글삭제

복만이
한분이 한국 관객이라고 하니까 과거 역사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 현재 남북한의 현실이 유감이라는 말도 하구요. 신주쿠양산박의 미학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이네들이 할 경겨의 발언이 미힉만큼 점점 더 흥미로와지네요.,

2013-11-0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