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순정과 비린내
[전문가 리뷰] <이인실>

김옥란_연극평론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작가 고영범
작가 고영범

주요작품
<크로이체르 소나타/2005>
<태수는 왜?/2008> 외 다수


연출 박정희
연출 박정희
現 극단 풍경 대표
고려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 연극영화과 미디어학

주요 연출작
<아버지의 집>, <꽃이다>, <헤다 가블러>, <예술하는 습관>, <응시>, <기타맨>, <이오카스테>,
<마라, 사드>, <발코니>, <평심>, <하녀들> 외 다수
  • <이인실>은 작가 고영범의 신작이다.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고? 고영범은 2008년 공연된 극단 풍경의 <태수는 왜?>의 작가다. 그보다 이르게는 2006년 박정희 연출의 <새벽 4시 48분>(사라 케인 작, 극단 풍경), 2007년엔 이성열 연출의 <오레스테스>(극단 백수광부)의 각색자이기도 했다. 애초에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단편영화를 찍은 경력도 있다. <태수는 왜?>는 <오레스테스>를 각색하던 중 우연히 쓰게 된 창작극으로 고영범의 정식 데뷔작이 되었다. <태수는 왜?> 당시 고영범은 40대 중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신인 극작가로 출발하고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훈련된 유연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었고, 이미 자기만의 독특한 문체와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현대사에 대한 예민한 촉수와 그것을 영상감각을 바탕으로 한 해체적인 장면과 날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은 앞으로 그의 작가적 활동에 많은 기대를 걸게 하였다. 그러나 고영범은 단 한 작품만 발표하고 여러 가지 개인사정으로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이후의 작품을 계속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다.

    이인실
    연극 <이인실>의 한 장면 [출처] 코르코르디움


    탈북자에 대한 블랙 코미디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이인실>은 작가 고영범의 5년만의 신작이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연출에 의해 극단 풍경에서 두 번째 작품이 올라가고 있다. 작가는 여전히 미국에 있지만 공연은 한국에서 올라가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이인실>이 공연되고 있는 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소재는 다소 생경하게도 탈북자 이야기다. 동남아 이주 노동자, 연변 조선족, 탈북자 이야기는 영화 쪽에서 점차 많이 다뤄지고 있는 소재다. 그러나 최근 영화 <동창생>(박홍수 감독)에서처럼 탈북자는 여전히 우리 안의 낯설고 위험한 이방인의 존재다. 연극에서는 젊은 작가 김은성의 <연변엄마>(박상현 연출, 극단 그린피그, 2011), <목란언니>(전인철 연출, 두산아트센터, 2012) 등의 작품이 있다. 주로 여성 주인공의 입장에서 조선족 혹은 탈북자의 시선에서 낯설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을 되비추고 있다. 연변엄마와 목란언니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타락한 우리’의 경계선 바깥으로 다시 튕겨져 나간다.

    그런데 <이인실>의 전략은 다소 다르다. 탈북자로 환기되는 남과 북의 문제를 형제의 비유로 푸는 것은 일단 익숙하다. 탈북자 지룡과 남한의 광호(김정호 1인2역)는 이복형제다. 그런데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정작 이들이 아니라 뺀질뺀질한 사기꾼 진석이다. 진석(김승철 분)은,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공무원을 협박하며 병원에 드러누워 있는 일명 ‘나이롱 환자’다. 진석은 고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며 비싼 이인실에서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곳에 탈북자 출신의 성실한 공장 노동자 지룡이 찾아온다. 흔히 탈북자의 설정이라면 짐짓 심각한 상황을 연상하기 쉽지만, 지룡의 캐릭터는 심각하기보다는 희극적이다.

    우선 지룡은 발음이 비슷한 ‘지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희화화되고 있다. 그리고 살짝 대머리인 김정호 배우가 가발을 쓰고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습도 의도된 웃음의 연출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룡은 이곳에 무슨 거창한 수술을 위해 입원한 것이 아니라 지독한 땀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땀샘수술, 겨드랑이를 수술하러 입원한 참이다. 땀샘수술은 겨드랑이 털 몇 개를 지지는 수술 같지도 않은 수술 취급을 당한다. 지룡은 첫 등장 장면부터 지독한 땀냄새를 풍기고 있고 이인실의 사기꾼 남녀 진석과 미경(윤복인 분)은 그의 땀냄새에 진저리를 친다. 배우 김승철과 윤복인은 안정되고 여유있는 연기로 웃음의 포인트를 정확하게 살려낸다. 그렇게 일종의 희극적 만담 커플 진석과 미경은 좌충우돌 사고를 치며 극을 이끌어간다. 희극적 장치가 곳곳에서 빛난다.

    그렇다고 이 공연이 단순히 웃음만을 위한 극은 아니다. 이 극의 부제는 ‘두 개의 비극에 대한 하나의 코미디’다. 사기꾼 진석은 우연히 지룡의 수술동의서에 보호자 서명을 하게 되고, 지룡은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고 뇌사상태에 빠지고, 진석은 지룡의 남쪽 고향인 강릉의 집안 재산을 노리고 가짜로 지룡 행세를 하면서 극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두 개의 비극’―지룡이 죽고, 대신 지룡 행세를 하게 되는 진석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탈북자의 이야기를 탈북자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곁다리를 치고 들어온 사기꾼 인물에게 대신 맡기고 있는 지점이 흥미롭다.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와 연변족ㆍ조선족ㆍ탈북자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석이 지룡 행세를 하다가 지룡이로 죽음을 맞게 되면서 극은 끝난다.

    이인실
    연극 <이인실>의 한 장면 [출처] 코르코르디움


    순정의 비린내

    극은 이렇듯 진짜와 가짜의 희극적 장치를 통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데, 그 과정에서 강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바로 ‘냄새’의 모티브다. 극 초반 병실에 가지고 들어온 술과 안주거리로 잠깐 등장하는 오징어 냄새에도 비려할 정도로 진석은 유난히 냄새에 비위가 약한 인물이다. 그런데 진석은 가짜 지룡 행세를 하며 강릉으로 향하고 함경도 음식인 홍어애탕과 가자미식해의 지독한 냄새에 진저리를 치는가 하면 치킨양념에도 액젓을 넣는 강원도 음식에 학을 뗀다. “이 동네는 치킨에서도 비린내가 나!” 진석은, 가짜 지룡 행세를 하며 함경도 사투리를 흉내 내고 광호 모자에게 사기를 칠 수는 있지만 함경도와 강원도 음식 특유의 ‘비린내’ 앞에서는 가짜일 수 없다.

    작가 고영범은 탈북자와 남북문제를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진지한 철학으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비린내’라는 코믹하면서도 ‘콧구멍이 뻥 뚫리는’ 기이한 쾌감으로 그리고 있다. 탈북자의 인물과 상황을 ‘냄새’와 ‘비린내’라는 비유 하나로 잡아내고 있다니! 탈북자와 남북의 문제를 가장 일상적인 냄새의 차원으로까지 내려앉은 이야기로, 쉬우면서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룡의 몸에 밴 냄새나 아무리 서울말씨를 써도 흔적이 남아있는 함경도 말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탈북자에 대한 우리의 차별의 시선과 태도를 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역설적으로 광호 모의 순정을 배치하고 있다. 광호 모(이용이 분)는 분단 이후 60년간 월북한 남자를 기다리며 유복자이자 사생아인 광호를 키워왔고 가짜 지룡이인 진석의 입을 통해 광호 부의 임종 소식을 듣는다. 광호 모는, 광호 부에게 젊은 날 한때 불장난 상대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광호 부에 대한 순정을 버리지는 않는다. 진석은 가짜 지룡 행세하는 것에 질려하고 자신의 새 인생에서 “비린내가 난다” 자조하지만 광호 모에 대해서는 “할망구가 그래도 순정이 있더라” 말하며 광호 모의 죽음에 연민을 느낀다. 광호 모의 유품인 싸구려 나이롱 옷을 태울 때 “질겨서 생전 안 찢어지더니 불에 탈 때는 화라락 불붙어서 후다닥 가버린다”고 비유되는, 불같은 성격을 지녔으면서 가슴에 순정을 간직한 광호 모 역할의 이용이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땀냄새로부터 시작한 극이 강원도 비린내를 거쳐 60년간 분단의 현실을 견디며 버티어온 순정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홍어 애탕과 가자미식해의 비린내는 누군가에겐 고향과 추억의 냄새이겠지만 누군가에는 역한 냄새일 뿐이다. 작가 고영범은 너무 오래되어 삭아버린 ‘순정’에서 지독한 ‘비린내’를 맡고 비틀거리는 진석을 블랙 유머로, 때론 냉정하고 때론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다. 고영범의 <태수는 왜?>가 작가의 신고식이었다면, <이인실>은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극이다.

    이인실
    연극 <이인실>의 한 장면 [출처] 코르코르디움


    하얗게 표백된 무대

    그렇다면 <이인실> 공연을 풀어가는 박정희 연출의 전략은 어떤 것일까? 공연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대와 객석 사이를 가로막고 서있는 거대한 사각의 프레임이다. 무대는 마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 와 같은 네모난 상자 모양이다. 가운데엔 사각 문이 뚫려 있어 검은 여닫이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장면전환이 이루어진다. 배우들은 마치 커다란 상자 속에서 연기하고 있는 작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커다란 사각의 프레임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무대 위에 버티고 서있다. 무대는 임일진이 맡고 있다. 독특한 무대이다. 주로 직선 위주의 차갑고 냉정한 무대이다. 무대의 색채 또한 주로 블랙 앤 화이트로 단순화되어 있다.

    연출은 이 무대를,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화경처럼”(프로그램북 연출의 글 중에서) 들여다보는 무대라고 표현하고 있고, 무대는 “사회의 모순을 엿보는 만화경”(프로그램북 무대미술의 글 중에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연출이 한마디 더 덧붙이는 말은 “한 컷 한 컷 웹툰처럼”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경과 웹툰? 순간 머리가 갸웃해진다. 작품에선 땀냄새와 살냄새와 생선 비린내와 바다 비린내, 순정마저 세월 지나 오래 묵혀 삭힌 냄새가 나는데, 그것을 담기에는 무대가 얼음처럼 차갑다. 연출과 무대미술의 컨셉은 정확하게 보여지고 있다. 만화경처럼, 웹툰처럼 장면 장면은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된 무대를 깔끔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하얗게 표백된 병실시트의 이인실에서 시작한 극이 이인실에서 끝나는 이미지에서 하얗게 표백된 무대의 중심 이미지가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상자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인형들처럼 움직이는 배우들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고 깔끔한 선을 보여주는 연기도 양식상 통일되어 있다. 커다란 상자의 문을 닫았다 열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튀어나오는 듯한 효과는 긴장감을 가지고 극을 지켜보게 한다. 장면전환을 하는 여닫이문을 완전히 열거나 반만 열어 연출이 보여주고자 하는 미장센을 마치 편집된 영화 필름처럼 잘라진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광호 모와 진석이 함께 있는 투 샷 장면에서 먼저 광호 모가 앉아있는 무대 쪽 문을 반만 닫아 진석만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여운을 남기고 나머지 문도 닫아 장면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장면분할이 가능한 웹툰 식의 프레임이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닫이문의 반복되는 장면전환이 후반부에 이를수록 기계적으로 느껴지며 극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무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처럼 보인다.

    냄새마저 지워진 하얗게 표백된 차갑고 얼음 같은 무대를 대신해서 공연에서 살냄새의 온기를 살리고 있는 것은 상자 속의 작은 인형들처럼 움직이는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이다. 매끄럽고 차가운 재질로 이루어진 무대 바닥 위에 드러눕거나 비질을 하거나 처연히 앉아있는 이용이의 연기는 가슴에 오랜 잔상을 남긴다. 여기에 덧붙여, 박정희 연출은 이인실의 둘의 모티브를 확장시켜 중심인물들을 1인2역으로 활용하면서 남과 북, 진짜와 가짜, 탈북자와 사기꾼, 비린내와 순정 등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이중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김정호 배우는 지룡이와 광호, 김성미 배우는 간호사와 까페 강의 미라, 정재진 배우는 원무과장과 의사의 1인2역을 맡고 있다. 1인2역을 맡고 있지 않은 진석과 미경은 헌 인생을 버리고 새 인생을 살고 있는 이중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차갑고 냉정한 무대를 배경으로 1인2역의 연극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무대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면전환 등을 고려해봤을 때 박정희 연출은 이 공연에서 탈북자의 리얼리티나 이슈보다는 보다 연극적인 표현과 연출미학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이 공연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박정희 연출만의 무대감각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작가가 인물들의 다초점을 살리면서 극을 풍성하게 진행시키고 있다면, 박정희 연출은 생략과 단순화로 극의 구조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고영범 작가가 <태수는 왜?>에서와는 달리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인물들의 섬세한 결과 감정이 충분히 살아나고 있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다. 마치 하얗게 표백된 무대에서 비린내가 지워진 것처럼, 감각은 남았지만 감정은 지워졌다. 진짜 지룡이 죽고 가짜 지룡도 죽게 되는 ‘두 개의 비극’의 결말에 대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미가 정확히 살아나거나 전달되지 않는 점도 아쉽다.

태그 이인실, 태수는 왜?, 고영범, 박정희, 1인2역

목록보기

김옥란

김옥란 연극평론가
현장비평과 드라마투르그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한국현대연극사 기술을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 중이다. www.cyworld.com/culturevision
웹진 36호   2013-11-21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