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함께’는 의무입니다.
[전문가 리뷰] 떼아뜨르 봄날 <해피투게더>

이진아 _ 연극평론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도서 살아남은 아이
「살아남은 아이」2012.11.26
전규찬, 한종선, 박래군 저
  • 부산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가 2012년 11월 첫 출간된 것에 이어(올해 2월 개정판 출간), 올해 10월 10일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가 있었다. 또, 국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은 고사하고 피해자 현황에 대한 집계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11월 22일 발족되었다. 책의 출간과 대책위 발족 사이의 시간 동안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사와 논평, 관련 인사들의 인터뷰 등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적잖이 등장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우선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민법 제766조에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 시효를 밝혀놓고 있는데, 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되며, 또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도 시효는 소멸된다. 때문에 30년 전의 형제복지원 사건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뭔가 더 큰 대중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책도, 언론 보도도, 텔레비전 르포르타주도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말하자면 영화 같은 것……, 아니 그냥 영화가 아니라 공유가 나오는 영화 같은 것……. 그래도, 공유는 없지만, 공유가 없어도, 연극 <해피투게더>는 힘을 보탠다. 우리에겐 ‘그래도’가 있으니까. 그래서 연극 프로그램에는 대책위 후원 계좌번호도 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 한종선 씨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2012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글쓰기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한겨레신문」 2013. 11. 9일자 기사). 이렇게 잊힐 뻔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종선 씨의 책으로 다시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 제작자 장영승 씨와 극단 떼아트르 봄날의 이수인 연출이 연극으로 다시 말한다. <해피투게더>를 쓰고 연출한 이수인은 이 사건의 전모나 한종선 씨의 체험을 무대 위에 이야기로써 재현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고, 그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분노할 일이며, 그러니 지금 우리도 분노하고 눈물 흘리며 함께 동참하자고, 연극은 관객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지도 호소하지도 않는다. 관객을 감정적으로 동요하게 만드는 것은 이 연극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이 필요치 않다고 말하려 한다기보다는, 극장 안에서 소모되는 관객의 감정보다 더 필요한 것은 관객의 ‘인지’라고, 무엇보다 관객 ‘네 자신’의 위치에서의 ‘인지’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연극은 꽤 성공적으로 그 일을 해 낸다.

    연극 해피투게더
    연극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 ⓒ극단 다리 [출처] 민중의 소리 2013.11.20자
영화포스터 해피투게더
<해피투게더> 2013.11.15~12.15

  • 연극은 복지원 원장의 연설로 시작된다. 그는 제법 긴 시간을 할애 받아 관객 앞에서 자신의 논리를 펴 나간다. 그는 뻔뻔하고 파렴치 하다. 그러나 우리보다 강하다. 그가 우리보다 강한 것은 우리의 나약함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여 항상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고 조금이라도 두렵거나 귀찮을라치면 언제라도 제 둥지 안으로 숨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를 그는 간파한다. 그래서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뻔뻔한 자신의 논리를 단어마다 힘주어 말한다. 그의 확신에 찬 언어가 관객을 다그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나라’도 못한 일을 ‘나’라도 해야 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원장의 말이 관객에게 폭력을 가하지만, 관객은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연극에서 원장은 제 언어를 지니고 언제든지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며 대 관객 연설을 할 기회까지 갖지만, 형제복지원의 원생들은 그런 언어를 갖지 못한다. 그들의 언어는 그저 자신에게 있었던 사건을 한 두 문장 정도로 짧게 보고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의 고통을 몸과 소리로 표현한다. 원장의 말 뒤에는 그 말을 배반하는 원생들의 몸짓이 있다. 그렇게 말과 몸은 서로를 거스른다. 논리의 언어와 비논리의 언어의 대립, 그런 언어를 가질 수 있는 자와 그것을 가질 수 없는 자, 발언의 기회가 항상 있는 자들과 발언의 기회를 박탈당한 자(연극에서 피해자 입장에 서서 논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자는 1987년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뿐이다), 연극은 이 대립이 지니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공연 미학으로 녹여내어 명징하게 보여준다.

    원생들이 논리의 언어로 연극에서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고통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은 체험이며 통증이며 무엇보다 공포이다. 연극에서 공포의 분위기는 자주 구현된다. 공포는 강제 구금, 노역, 폭력, 굶주림, 성폭행을 포함하는 정서이자, 동시에 이 모든 인권유린이 자행되도록 만드는 (복지원 ‘안팎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무대 위에서 공포를 구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폭력의 재현이다. <해피투게더>에도 물론 폭력의 재현은 있다.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의자 다리가 휠 정도로 공연 내내 의자들은 수난을 당하고 바닥에 부딪히며 관객의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폭력적 소리를 만든다. 가끔은 사이렌도 울린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연극에서 폭력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은 ‘반복’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터지는 플래시, 옷 벗고 갈아입기, 구보, 찬송가, 설교, 수차례 복창되는 내무부 훈령 410호 등, 이러한 것들의 끝없는 반복이 묘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연극 해피투게더
    연극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 ⓒ극단 다리 [출처] 민중의 소리 2013.11.20자

    우리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재현도 없고 관객의 정서를 쥐락펴락하며 눈물을 쏟게 하거나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지도 않지만, 연극은 관객의 집중을 한시도 놓치지 않으며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다 전달한다. 이는 작품에 연극적 재미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미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코러스이다. 의자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대도구도 없는 간결한 무대의 좌측 벽으로 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앉아있다. 애도의 검은 옷 같기도 하고 유혹의 붉은 입술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의 이들은 시종 무표정하게 앉아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때로는 장면에 엉뚱한 추임새를 넣는다. 폭력의 장면에 시선도 던져주지 않고 냉정하고 고요하게 ‘도미누스(Dominus)’를 부르는가하면, 웃지도 않고 탬버린을 흔들며 유행가를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관객과 무대 사이에 끼어 거리를 만들고 정서를 단절하고 사건을 분절하는데, 그녀들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장면에 대한 논평이다. 논평의 타이밍은 적절하고 형식은 재치 있다 여겨지며, 그래서 관객의 마음에도 뭔가 와 닿는다. 그런데 그 논평이 논리의 언어가 아니기에 관객의 해석이 요구된다. 그렇다. ‘인지’는 이 연극에서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거저 얻어지지 않기에 미적 쾌감을 동반한다.

    강요하거나 호소하지 않아서 <해피투게더>는 힘을 갖는다. 미적 쾌감과 인지의 기쁨이 서로를 독려하며 나가기에 <해피투게더>는 힘을 갖는다. 그래서 ‘함께’가 의무라는 사실을 연극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관객이 알고 나간다. 프로그램에 있는 대책위 후원계좌 번호는 752602-04-194222(국민은행, 예금주:여준민)이다.

태그 연극〈해피투게더〉

목록보기

이진아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본지 편집위원 
club.sookmyung.ac.kr/playgoer
제38호   2013-12-19   덧글 1
댓글쓰기
덧글쓰기

dgEXeceZJjYvvtQnub
kijrmvPVpwbRBhBMw

2017-06-1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