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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vs 관객존엄
76극단, (주)이다엔터테인먼트 <관객모독>

정진세_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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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vs 관객존엄
2014.03.07~08.10
<관객모독>
  • “이 개혁주의자들아. 이 보수주의자들아…”, “이 관피아 해피아, 해적보다 더 X같은 이 해경, X같은 니기미 뽕이다”, “야, 이 권력의 개들 검찰 새-들아, 국정원 새-들아”, “너희들은 사실과 진실로 글로 쓴다. 이 찌라시 신문기자 새-들아. 너희들은 창조와 공정으로 방송한다. 이 너덜너덜한 텔레비전들아.” “이 예술가 새-들아. 사이비 예술가 새-들아.”

    참담하고 복잡한 시절입니다. 국민모독을 당한 심정으로 연극을 고르다보니 감정이입이 되었나 봅니다. 그리하여 이번 달은 독일의 극작가 피터 한트케가 쓰고 연출가 기국서 선생이 무대에 올린 <관객모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참고로 위 대사는 극중에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들으라고 전한 ‘말’이었습니다.

    <관객모독>은 상투적인 연극과 순진한 관객, 계몽적인 비평 등 우리에게 만연한 ‘연극문화’를 거침없이 ‘까는’ 연극입니다. 1976년에 창단한 76극단이 초연작(1978)을 올린 후 지속적으로 상연되고 있으니, 오랫동안 대중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시간이 흘렀어도 작품에서 드러나는 사회 비판의 예기는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작품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대체 어디까지 관객모독이 행해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어쩌면 모독의 범위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살짝 공개하면,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욕을 먹고, 무대로 끌려나와 성적 희롱을 당하고, 윽박지름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막판에는 상상초월의 물리적 공격까지 기다리고 있지요. “이 만성 페이스북병 환자들아!”하는 배우의 비아냥엔 저도 모르게 “이런, 미개한!”이라고 반응할 뻔 했습니다. TV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선 ‘시청자가 부모다’라는 주장도 하는 마당에, 당최 이 연극은 이렇듯 관객을 모독을 하는 걸까요.

    관객모독

    빈 무대에 네 개의 의자가 있습니다. 이윽고 자신만만한 네 명의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관객들이 연극을 보고 있는 상황’ 그 자체를 소재로 삼아, 극을 진행시켜 나갑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배우들은 연극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관객을 모독하는 ‘극행동’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둘은 문맥상으로 큰 차이가 있지만, 결과적으론 연극을 이해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요. 관객들을 놀려먹는 막-나가파 배우들은 실상 진지함과 엄밀함의 속셈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극은 극적인 것도, 충격적인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마 마음껏 속 시원히 웃지도 못할 겁니다. 여기서의 여러분은 존엄성을 가진 개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운명이나 과거나 개인적인 사건이나 얼짱, 몸짱 등의 자부심도 여기서는 문제가 안 됩니다. 여기서의 여러분은 연극 경험 그 자체일 뿐입니다.”

    위 대사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전통적인 문법을 거부하는 연극, 즉 ‘현대극’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특정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 상대를 만나 사건을 벌이고, 거기서 극적인 상황이 도출되고, 그것에 도전하거나 투쟁하며 종국에는 클라이맥스를 통해 성공(혹은 실패)을 이뤄내는 인간적인 드라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대신 상황극과 해프닝들이 모여 전혀 연극적이지 않은 ‘반-연극’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배우가 연극의 ‘안티(anti)’인 셈입니다. 덧붙이자면, 말장난, 말싸움, 말더듬기, 말자르기, 말따라하기 등등 유희적 화술을 통해 완성되는, ‘연극을 패러디한 연극’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본심은 매너리즘에 빠진 연극들을 조롱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한 관객들을 각성시키는 것이겠지요.

    재미있게도 진면목을 까발리고, 의지를 깨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러니까 배우들이 유려하게 설명하고, 유창하게 모독할수록, 관객들은 점점 연극에 빠져들게 됩니다. 배우가 ‘연극은 가짜야!’라고 하면, 관객은 ‘가짜인데, 재밌어!’라고 즉각 마음의 댓글을 다는 식이지요. 관객을 ‘까기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연극성이 힘을 발휘할수록, 관객들은 연극의 의미보다는 독특한 효과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연극과 반연극의 ‘꼬리물기’가 계속되고, 배우와 관객의 ‘네(내)탓이오’가 거듭될수록, 연극에서 말하는 ‘변증법’의 항로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맞춰집니다. 배우들이 퍼붓는 다량의 말들을 바로바로 해독하며, 다수의 맥락을 그때그때 붙잡아야 작품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데, 그 속도와 분량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아마도 의식 있는 관객이 ‘의미찾기’를 포기하거나, 혹은 감각 있는 관객이 ‘즐겨보기’를 주저할 즈음에, 객석은 다들 비슷해져 있을 것입니다. 고로 이 연극은 관객들을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고, 너덜너덜한 ‘모독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드는 독특한 미덕이 있습니다.

    관객모독

    한편으로 관객들은 ‘웃음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길 원하지요. 시종일관 깨알 같은 웃음이 극장을 가득 채웠지만 관객들이 특히나 좋아했던 부분들을 살펴봅니다. 관객의 상태를 콕 집어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어김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배우들은 관객들의 자학적 웃음코드를 끊임없이 공략했는데, 이를테면 셰익스피어 <햄릿>의 대사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의 한 대목이 섞여 나오는 부분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관객들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묘사하는 배우의 독백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지요.

    “로또를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개그 콘서트 삐끼들을 두 손으로 막는 척 하면서 쭐레쭐레 따라가는 것이 장한 것이냐. 똑바로 아트원 극장으로 걸어 들어가 고급 예술 허영의 극치를 맛보는 것이 장한 것이냐, 이 갈림길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이마를 부여잡는 고뇌 속에 빠지기도 하면서, 아니다, 관객모독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의 수렁에 빠져 가슴을 치며 몸부림 칠 것이다.”

    이처럼 까고자하는 대상을 유감없이 공평하게 타격하는 데서 작품의 재미와 의미가 발생합니다. 대중의 감각을 조작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자극적이고 진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상업주의 연극판, 그리고 이에 열광하는 관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모두까기’가 이행되는 것이지요. 그 가운데 관객을 딱히 ‘섬기지도 않으면서’ 섬긴다고 우기는 우리 연극계의 호들갑스럽고 부자연스런 모습까지 포착해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적 맥락을 강조된 상황들에 주목했습니다. 이를테면, “여긴 한국이야, 대충 (예술)해도 돼. 이 사람들 충분히 모독 받았어. 적당히 끝내자.”하는 부분에선 빵 터지고 말았지요. 물론 이러한 셀프-까기의 웃음 이후 씁쓸함이 엄습했습니다. 우리의 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실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다행히 뻘쭘한 순간을 다시 웃음으로 수습해주는 배우들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관객모독

    극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말(語)을 맛깔나게 구사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작품이 돋보였습니다. 연륜 있는 정재진 배우는 근엄함과 가벼움을 오가며 작품을 살렸고, 전수환 배우는 중년 남성의 완고함과 답답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능청스러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칫 여성비하의 천박해질 수 있는 상황을 품격 있는 연기로 잘 풀어낸 고수민 배우도 홍일점의 매력을 더했습니다. 무식하면서 용감하고, 저돌적이면서 샤프한 이미지를 보여준 젊은 배우 김태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심하게 등장하여 점점 과격해지는 중졸 무대감독 김형석의 독특한 화술과 희극적인 리듬 또한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였습니다. 다섯 명의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화술과 발성이 뛰어났기에 과도하게 뿜어져 나오는 언어극의 묘미를 잘 살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관객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캐릭터 간 앙상블이 탁월하기도 했고, 또한 극의 만듦새가 매끈하기도 해서, 어쩌면 작품이 달성하려고 했던 ‘관객모독’은 외려 성공적인 실패(?)를 겪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앞서 밝혔듯, 연극예술과 언어 중심에 대한 ‘폭압성’을 경고하는 지점에서 되레 폭로의 의도가 재미의 효과로 수렴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분명 사려 깊고 참을성 많은 우리의 관객들이 나름의 웃음과 반성으로 본 공연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극작가 한트케의 의도나 76극단의 의미 또한 그러하듯, 달달한 것만을 귀에 속삭이고, 아름다운 것만을 눈에 들이밀고, 거짓된 감정에 호소하는 연극과의 결별 선언은 ‘현대’ 예술의 사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도 연극을 좋아하는 자기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그냥 관객이 아니라 ‘현대’ 관객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러한 분들께 ‘관객의 존엄성’ 이 온전히 주어지겠지요. 힘든 세월입니다만, 여러분께서는 현실에서나 객석에서나 ‘가만히 있지 말고’ 깨어있을 것을 주문하면서, 이번 호의 성깔 있는 리뷰를 마칩니다. 끝!

    관객모독
    [사진: (주)이다엔터테인먼트 제공]

태그 관객모독, 관객존엄, 76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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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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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호   2014-05-2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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