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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머물다간 자리들. 메아리.
극단 진일보 <봄날은 간다>

김경주_시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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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머물다간 자리들. 메아리.
2014.6.16.~7.20.
연극 <봄날은 간다>
  • 연극 <봄날은 간다>가 세 번째 공연을 맞았다. 2002년에 김경익 연출이 초연을 했고 작가인 최창근이 원작을 그대로 살려 공연을 한 후 다시 초연 때 연출을 맡은 김경익 연출이 세 번째 연출을 맡은 것이다. 나는 두 번째 최창근 작가가 직접 연출할 때 보고 이번에 다시 볼 수 있었다. <봄날은 간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창근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서정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요사이 우리 연극의 서정성이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 설왕설래하는 시기에 이 작품의 재입성(?)이 반가운 것은 나 뿐은 아닐 것이다. 판타지와 속도, 현실을 환기하지 못한 채 부상하는 환상성이 난무하는 시대에 서정성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갈래의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서정은 거기 본래 있는 것이다’ 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침묵의 세계』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막스 피카르트는 서정이란 서사와 달리 본질적인 침묵을 품고 있다는 주요한 메시지를 전해왔다. 서정의 본래적 기능이 다 말하지 않고 침묵으로 전달한다는 유산을 이어받는다면 『존재와 시간』의 하이데거는 좀 더 심층적이다. 우리 시대 현 존재의 개시성을 드러내고 있는 계기로서의 ‘말’에는 그 본질적인 가능성으로서 침묵이 속해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침묵 역시 말처럼 하나의 존재 양식으로서 "타자를 향해 명확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HGA 20. 368]이기도 하지만 침묵하는 자는 끝없이 이야기하는 자보다도 좀 더 본래적으로 다가간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말하자면, 세계가 퇴락할수록 <수다스러움> 속에 몸을 두고 있는 현존재는 어떤 종류의 침묵에 닿으면서 본래적인 자기의 가능성으로 불러들여진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그것은 정화라는 이름의 침묵일 것이다. 호소 받은 현존재는 침묵하면서 자신에게 다시 호응한다(entsprechen)고.

    속으로 머물다간 자리들. 메아리.

    연극 <봄날은 간다>는 침묵이 살아 있는 이야기로서 우리가 잃어버린 본래적인 서정성에 충실히 하고 있다.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 채 자식들의 주변을 맴도는 어머니의 메아리(고백)는 그래서 더 아프다. 담담하게 툭툭 뱉는 말 속에 구절구절 피 냄새가 베여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한 집에 모여 가족이 되어 살면서. 그 집에서 오누이로 만나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에 빠졌지만 세 사람의 가슴에는 말하지 못한 고통이 가득하다. <봄날은 간다>는 이 곡진한 이야기의 퍼즐이 과거가 현재처럼 벌어졌다가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작품의 결이 뻔뻔하고 상투적인 속세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도록 가까스로 체온을 유지하면서 연출은 서정적 서사를 통해 놀라운 방법으로 스스로 비밀을 풀어가도록 한다. 마치 이야기의 퍼즐들이 스스로 피붙이를 찾아가 맞추어지듯이.

    김경익 연출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서정성 있는 언어들이 드라마에서 살아나려고 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피눈물이 흘려져야 한다고. 말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처와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아픔을 만들어주어야만 이 말이 살아있는 말이 된다고. 나는 연출과의 이야기 속에서 잊고 있던 하나의 진정성을 발견해내고 뜬금없는 감동을 받았다.

    “서정성이 살려면 피눈물을 흘려줘야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말이 얼마나 고통 속에서 나온 정제된 말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피눈물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어떻게 상처를 낼 것인가를 고민했죠.”


    당신이 이 작품을 보고 난다면 이 말에 더욱 공감이 갈 것이다. 제대로 된 서정은 피를 흘리고 난 후에만 보이는 어떤 상처의 결이다는 의미 속에는 이 작품의 비밀을 푸는 좋은 열쇠가 담겨 있을 테니까.

    속으로 머물다간 자리들. 메아리.

    마이클 볼룸(연극학자)은 스스로의 비밀을 풀어가는 희곡이야말로 좋은 희곡이 가지는 서사성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서사와 서정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일체되어 있다. 연극 <봄날은 간다>는 지독한 상처와 고통을 견디고서야 가족이 될 수 있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누구나 가족이 존재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태어나자마자 가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극적 운명론에서 이 이야기는 가족이 '참혹과 배려'라는 두 울타리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를 끝끝내 버텨주고, 머금고, 견뎌주며, 입을 틀어막은 채 그것들을 관객과 함께 지켜본다. 우리가 삶을 견디고 있는 어떤 방식에 대해 끝끝내 그들은 우리를 설득하려 하지 않은 채.

    가장 친밀한 거리 속에 항상 우리의 실체는 숨겨져 있다. 가장 친밀한 거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불현듯 공포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어느 날 불현듯 상처가 되어 날아오기도 한다. 이러한 거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울타리가 있다면 그건 가족이라는 이름의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보편성을 얻고 관객을 글썽이게 할 수 있는 힘은 거기서 생겨난다. 모든 가족은 타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숨겨진 시간'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이 그러한 '숨겨진 시간'에 대한 비밀들을 고백으로 풀어가는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고백은 얼마나 어렵고, 고백은 얼마나 힘이 강한가에 대해 연극은 얼얼할 정도로 우리의 입안에 침묵을 차곡차곡 담아 간다. 어쩌면 그것은 시라는 이름으로 내가 규명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버팀들이거나 글썽거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연극이 시적인 느낌으로 관객에게 설명하지 않고 은은하게 자신의 은하를 보여주는 힘은 구성적인 측면에서 사건을 뒤로 빼돌렸다가 나중에 반전으로 드러내겠다는 상투적인 인과성에 의존한 접근이라기보다는 ‘드러나는 방식과 희미해지는 방식’을 선택한 빼어난 구성적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드러남과 희미함이야말로 시의 모성이 아니겠는가?

    속으로 머물다간 자리들. 메아리.

    슬픔은 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해본다면 이 아이러니는 더욱 실체를 드러낸다.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투성이다. 기쁘다가 슬퍼지고, 참을 수 있다가 못 참겠고, 눈물이 나다가 웃음이 나고, 울다가 갑자기 멍해진다. 아픔은 시간에 의해 달래지고, 어떤 시간에 의해 다시 드러나 삽시간에 피를 다시 흘려야 한다. 정화와 애환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우리 앞에 다가왔고, 이해하기 힘든 질서를 가진 채 우리 삶에 스며있다. <봄날은 간다>는 이러한 메아리(돌아오는 고백)를 들으려고 여행을 떠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 다름아니다. 그들이 마지막에 우렁우렁 모여 앉아 바라보는 능선엔 자신들이 언덕에 올라 몰래 멀리 던져두었던 메아리들이 글썽거리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만일 가족이라면… 함께했던 시간들에게 메아리를 던지며, 속으로 머물다간 자리들일지 모른다고.

    [사진 :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태그 봄날은 간다, 김경주, 극단 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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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김경주 시인, 작가.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데뷔했고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올리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여러 필명으로 야설작가, 방송작가, 영화사, 카피라이터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써 왔다. 현재 다양한 독립문화작업과 시극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singi990@naver.com
제48호   2014-07-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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