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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 대한 ‘형식’을 고민하는 음악-하기
국립극장 <제비·여름·민요> & 비빙 <피-避-P project>

송현민_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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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식’에 대한 ‘형식’을 고민하는 음악-하기

    (1) 리뷰, Re-view. 그리고 리(理)-view.

    오늘은 두 개의 공연을 놓고 ‘공연’에 대해 오밀조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공연에 대한 리뷰는 그 뜻이 공연을 다시-들여다보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론 리뷰란 어떤 이론, 즉 이론을 뜻하는 ‘리(理)’를 동반한 ‘뷰(view)’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지면의 성격을 먼저 바꾸고 <제비·여름·민요>(7월 16~17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와 비빙의 <피-避-P project>(8월 13~17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형식’에 대한 ‘형식’을 고민하는 음악-하기
국립극장
‘2014 여우락 페스티벌’
2014.7.4~7.26
  • (2-1) 전통음악을 ‘한다’는 것을 묻기 위한 전초

    우리가 흔히 ‘근대’라는 부르는 시기에는 국악, 전통음악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국악이라 쓰고, 뒤에 전통음악이라고 덧붙이는 저의 혼란 또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 역사의 지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혼란은 지금도 행해져 오고 있죠.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음악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로 고착화된 전통음악의 역사와 그 음악 하기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자기 성찰에의 급진적인 요구를 시행하는 작업이고 오늘을 만든 ‘어제’를 고찰하는 일이죠.
    사실 이러한 경향은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늘 두드러져 온 것들입니다. 잠시 시(詩)의 역사를 예로 들겠습니다. 서정시는 낭만주의 이후로 ‘시작(詩作) 행위’ 즉,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을 언어화하는 메타(meta) 시의 성격을 띠어 왔죠. 미술사도 그렇죠. 세잔(1839~1906) 이후의 회화는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그림의 주요한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소설. 연극에 대한 연극.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적인 예술인 메타-예술이 등장했습니다.
    이제 이야기할 <제비·여름·민요>(이하 <제비>)와 <피-避-P project>(이하 <피>)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즉 <제비>는 민요를 통해 오늘날 ‘민요를 부른다’는 것과 ‘민요를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피>는 판소리를 통해 ‘판소리를 (생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형식’에 대한 ‘형식’을 고민하는 음악-하기
음악그룹 비빙 프로젝트4
<피-避-P project>
2014.8.13~8.17,
두산아트센터space111

  • (2-2) <제비>와 <피>


    <제비>와 <피>는 음악회라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을 뿐이지 실은 민요 ‘즐기기’와 판소리 ‘짓기’의 구조를 추출하여 이를 분석하는 작업에 대한 기획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비>는 ‘민요’라 하면 씨름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등장하는 민요를 떠올리는 이들을 향해 민요의 개념을 수정하기 위한 공연입니다. 한 마디로 ‘민요 개념 수정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죠. 젊은 소리꾼으로 각광 받는 이희문과 국립창극단 정은혜 외 편곡을 맡은 장영규와 이태원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음악동인 고물, 민요그룹 앵비, 프로젝트 놈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습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민요는 재밌는 노래였다”가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재밌는 노래다!”라는 것 같았습니다.
    <피>는 <제비>에서 작곡가 이태원과 편곡의 호흡을 같이 한 장영규와 비빙(Be-Being)이 선보인 작품입니다. 다음은 프로그램 북에 적힌 문구; ‘시대가 흘러가면서 새로운 창작판소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비빙의 <피>는 여타 창작판소리 공연에서 시도되고 있는 이야기, 반주, 극적 장치 등의 변화를 넘어 판소리의 음악적 구조 자체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심청전’의 한 대목에 집중한다. ‘공양미 삼백석’이라는 충격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아버지와 딸이 그 상황을 ‘피’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간 보편적 정서와 감정이다. 죄책감으로부터 달아나는 아버지와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딸은 피해야만 하는 것,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름과 형상을 모두 버리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간과 귀신의 경계에 선다.’

    ‘형식’에 대한 ‘형식’을 고민하는 음악-하기

    (3) ‘작품’보다는 ‘함’을 되돌아보기

    한마디로 <제비>가 민요를 즐기는 규칙을 검증한다면, <피>는 판소리를 생산하는 규칙을 검증해보는 작업입니다. ‘검증’이라는 말에서 이론가나 연구자의 행위를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음악가가 음악으로 하는 검증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비>와 <피>의 핵심에는 “전통음악에 대한 ‘사유’를 ‘재(再)-사유’하라” 혹은 “‘성찰’을 ‘재(再)-성찰
    하라”는 강령이 있습니다. 그걸 스스로 생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즉 <제비>와 <피>는 민요와 판소리 하는 자아에 대한 자기 성찰이며, 그 성찰의 필요성에 대한 시대적 ‘압박’(이는 지극히 긍정적인 뜻)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요와 판소리에 대한 새로운 작품 생산 이전에, 민요와 판소리의 생산주체가 해온 ‘음악하기’와 장르에 한계와 가능성을 묻는 것입니다. 이는 전통예술이 겪어야 할 문화적 모더니티의 주요한 에피스테메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이기도 합니다. 민요 즐기기와 판소리 짜기를 규정하는 선험적 구조를 파보는 것이죠.

    (4) 전통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들여다보기

    <제비>와 <피>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전제하고 있는 건 전통음악을 들여다보는 시선의 운용법입니다. 이에 대해 좀 긴 설명을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물이나 세계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 우리의 의식이 대상을 ‘자연적으로’ 지향하는 방식입니다. 가령 ‘나’는 ‘그림’을 본다고 합시다. 이때 나는 시선을 통해 그림과의 지각관계를 구성합니다. 예를 들어, 화살표로 그 관계를 표시한다면 ‘나▷그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앞의 예가 일반적인 시선, 자연적 시선이라면 이와 다른 ‘성찰적 시선’은 그 두 번째입니다. 이는 심안(心眼), 사유(思惟)의 운행입니다. 가령 내가 책상 위의 사과를 보고 있다면 그건 ‘나▷사과’라는 자연적 시선입니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의식을 작동하여, ‘사과’를 보고(▷) 있는 ‘나’를 객관화하여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나(I)는 사과를 보고 있는 나(me)를 객체로 전환시켜 다시 탐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죠. 도식화하면 ‘나(I)▶[나(me)▷사과]’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 두 번째 시선을 <제비>와 <피>에 적용하자면 <제비>는 ‘나(I)▶[나(me)▷민요]’으로, <피>는 ‘나(I)▶[나(me)▷판소리]’로 도식화할 수 있겠습니다. 즉 <제비>에서 민요를 행하는 자아(I)는 ‘민요를 행하는 자아(me)’를 다시 반성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죠. <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압축된 근현대의 시간이 운용해온 한국음악사는, 혹은 전통음악 역사는 ‘음악’만을 다루었지 ‘음악’을 바라보는 자(me)와 그의 시선(▶)을 다룬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 무대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과 인식론적 관계를 맺는 과정, 그 자체([나▷음악])를 새로운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나▶[나▷음악]’이라는 메타적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죠.
    따라서 <제비>와 <피>가 이 메타적 관계에서 생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만이 아닐 겁니다. 이러한 음악 하기는 곧 전통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시선’을 생산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죠.
    참고. 이런 복잡한 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비>와 <피> 모두 진지하고 난해한 작품처럼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제비>는 정말 밝고 경쾌하고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 공연이었습니다.

    ‘형식’에 대한 ‘형식’을 고민하는 음악-하기

    (5) 메타-음악의 가능성

    메타-음악, 그것은 음악가가 음악을 구상하고 쓰는 과정에 대한 성찰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을 의미할 겁니다. 그래서 메타-음악은 일반적인 의미의 ‘음악가▷음악’을 다시 대상으로 삼는 ‘음악가▶[음악가▷
    음악]’이라는 구조를 갖게 되죠. 그럼 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하나. 이러한 과정에서 메타음악의 주체는 음악 하는 주체(메타음악가)와 서술되는 주체(음악가)로 분리됩니다. 실제로 곡을 쓰고, 음악을 하는 메타-음악가는 탐구의 대상이 된 음악가(대개 자기 자신)의 삶, 의식, 고뇌, 음악 쓰기 혹은 방황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진술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들뜬 분위기에서 즐기며 감상했던 <제비>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난해한 암호와 같았던 <피>는 ‘외면적인 논쟁’을 연출하는 의도가 담긴 작품이며, 그 이전에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온 음악하기를 되짚어보고자 하는 ‘내면적인 분쟁’의 산물이자 고백이기도 할 겁니다.
    둘째. 이는 앞서 말한 첫 번째와 관련 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서술의 주체가 된 음악가는 대상이 된 본인을 음악의 내부로 포괄하여 그의 활동·의식·창작행위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시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공연을 보도 듣고 즐기는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귀는 때로는 혼란함 그 자체가 오히려 정상처럼 느껴지는 해방 전선과도 같을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이론적 담론에 노출된 육체를 빗대어 바바라 크루거가 말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를 적용하자면, 오늘날 몇 개의 전통음악을 듣는 “당신의 귀는 전쟁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연극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사진: 국립극장, 두산아트센터 제공]

태그 국립극장, 비빙, 송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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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제50호   2014-08-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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