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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 반 조각의 퍼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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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분열을 꿈꾸는 리뷰, 드디어 세 번째 차례가 돌아왔군요. 그러나 저의 리뷰에 대한 리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으로 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면으로는 제가 리뷰를 쓰는 공연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문을 닫고 나가는 입장은 아닐 테니까요. 평자의 역할은 해당 공연의 의미에 종지부를 찍듯이 선언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말문을 트이게 하는 데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 보면 문득 암울해지기도 합니다. 자기 분열은, 종지부를 찍어대는 부류의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한 저 스스로의 몸부림입니다.

반신, 반 조각의 퍼즐들

하기오 모토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만든 노다 히데키 극본, 연출의 <반신 (Half gods)>에 대해서는 제가 별도로 자기 분열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연 자체가 스스로 다양한 자기 분열을 일으켜 주더군요. 이 공연이 일으키는 자기 분열들에 반응하다 보니, 결국 저 스스로도 헷갈리는 지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두 조각들은 저의 자기 분열이라기보다는 공연의 자기 분열을 담아보려 한 시도입니다. 노다 히데키가 세상의 분열을 샴쌍둥이에 담아내었듯이, 저도 제가 찾아낸 퍼즐들을 두 방향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샴쌍둥이인 수라와 마리아가 실은 하나의 존재일 수 있듯이, 두 방향으로 갈린 저의 단상들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인지도 모르지요. 혹은 그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1/2의 퍼즐 조각 두 개가 반드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1. 첫 번째 반 조각의 퍼즐들

저와 함께 <반신>을 보신 분들 중에서 두 분의 관객이 “정신없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걸어 나오시더군요. 저도 이분들의 반응에 대해서 수긍하는 한편, 제가 마찬가지로 관객으로서 4자평을 내뱉어 보자면 저는 “재미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 공연 자체가 여기저기에 퍼즐 조각들을 던져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퍼즐 조각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거든요. 제가 모은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본 결과, 대강의 전체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샴쌍둥이인 수라와 마리아는 심장을 공유하는 샴쌍둥이입니다. 지적 능력은 수라에게, 아름다움은 마리아에게 집중되어, 수라는 엄청난 천재인 동시에 흉측한 외모를 지니게 되고, 마리아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동시에 백치가 됩니다. 부모는 쌍둥이 자매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세상이 쌍둥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가 세상을 보지 않게 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들의 심장은 두 사람분의 생명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10살 생일이 되던 날 둘 중 하나의 생명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사라진 반쪽이 수라였는지 마리아였는지가 확실치 않습니다. 여기서, 이 사건의 다른 한 축에는 쌍둥이의 가정교사와, 치매에 걸린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수수께끼의 요괴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말해야겠군요. 가정교사는 ‘사라진 반쪽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안은 채 살아남은 반쪽과 함께 나머지를 찾아 요괴의 나라, 수수께끼의 근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이 맞닥뜨린 사라진 반쪽은 결국 수라와 마리아, 둘 중 어느 쪽이었을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끝에 다다르자 다시 시작으로 되돌아갑니다. 수라와 마리아는 자신이 태어난 근원으로 돌아간 동시에 또 다른 형태로 이 세상에 다시 되돌아옵니다. 가정교사는 자신이 만난 샴쌍둥이 이야기가 실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였음을 깨닫습니다. 결국 이야기는 교묘한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 자체가 말입니다, 이렇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채 끝없이 확장되고 있는 세상의 “뭔데?”가 아닐까요? 작품 <반신>은 모든 이야기들의 원형에 도사리는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작가 스스로의 수수께끼를 풀어놓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신, 반 조각의 퍼즐들

2. 두 번째 반 조각의 퍼즐들

공연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뫼비우스의 띠로 구성되어 있기에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연 <반신>의 퍼즐 조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반 조각의 퍼즐들이 작품의 내적 ‘이야기’와 관련된다면, 두 번째 반 조각의 퍼즐들, 즉 이야기를 둘러싼 채 ‘공연’을 진행시키는 조각들이 이들 첫 번째 이야기 퍼즐 조각들과 함께 마구 뒤섞여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편의상 첫 번째 조각들을 ‘이야기’ 조각들이라고 부른다면 두 번째 조각들을 ‘공연’ 조각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공연의 조각들은 그 자체만으로 또 다시 허구의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배우들과 연출, 조연출 등이 공연 <반신>의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역할을 제비뽑기하는가 하면, ‘이야기’ 퍼즐 중도에 갑자기 연출이 흐름을 끊으면서 배우에게 ‘비판적 거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공연은 사실 하나의 그림 맞추기가 아니라 두 개의 그림 맞추기 퍼즐인 셈이며, 그 조각들은 한 데 뒤섞여 있었던 셈이지요. 물론 이러한 복합적인 구성이 매우 참신한 기획인 것임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두 번째 ‘공연’ 관련 퍼즐 조각들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미심쩍은 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공연의 퍼즐들은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할 제비뽑기나 공연 중도에 연출이 등장하는 등의 에피소드들 역시 모두 인위적인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과연 이 퍼즐들이 온전한 ‘공연’ 퍼즐들이 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사실 저는 실제로 제비뽑기로 역할을 정하기를 내심 기대하기도 했습니다만―. 오히려, 저는 그러한 작위성이 자칫 재기 발랄한 구조를 식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됩니다. 재기 발랄한 이야기 구성에, 재기 발랄한 공연 구조에, 재기 발랄한 연출적 아이디어들이 켜켜이 덧붙여지다 보니, 공연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1/2 + 1/2 = 2/4”라는 도식이 공연 감상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신, 반 조각의 퍼즐들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반신(Half gods) 포스터

일시
9월 12일~10월 25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원작·극본
하기오 모토
극본·연출
노다 히데키
출연
주인영, 전성민, 오용, 이형훈, 서주희 박윤희 외

태그 반신, 반 조각의 퍼즐들, 반신(Half g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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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승

김민승 작가, 드라마터그
작: <구름>(2013), <원치않은, 나혜석>(2012)
드라마터지: <적벽가>(2014),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2013), <두뇌수술>(2012), <나는야쎅스왕>(2011), <아무튼백석>(2011) 외
수상: 2009년 제6회 젊은비평가상, 2012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두뇌수술>
제54호   2014-10-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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