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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춘향. 더 남다른 춘향을 기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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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세계거장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이하 <다른 춘향>)이 11월 20일부터 12월 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랐다. 드라마투르그·협력연출, 무대·의상디자이너에는 서반과 호흡을 맞추는 공동스태프가 함께 하여 <다른 춘향>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조시켰다. 또한 국립창극단의 젊은 소리꾼 민은경·이소연·정은혜가 춘향 역에 트리플로 캐스팅되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안무를 맡는 등 막이 오르기 전부터 다양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안드레이서반의 다른 춘향

평일
어떻게 봤어?
평이
허… 어떻게 그렇게 춘향이를 두들겨 팰 수가 있나? 서반 선생도 거참.
평일
난 <다른 춘향> 보고 판소리의 계보를 좀 생각해보게 됐어. 지금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는 조선시대의 유교가 깎은 물줄기의 끝물이야. 당대의 사회가 유지하고픈 이데올로기를 입고 있는 작품이란 게지.
평이
그건 그래. ‘판소리 다섯 바탕’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삼강오륜을 ‘기준!’으로 ‘해쳐 모여!’한 거지. 심청가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춘향가는 부부의 정절을, 수궁가는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적벽가는 벗 사이의 의리를, 흥부가는 형제간의 우애를. 원래는 오락에 태생을 둔 텍스트들인데 지금은 교훈의 교과서가 되어 전해지고 있지.
평일
난 예전에 봤던 <서편제>의 한 대목이 떠올랐어.
평이
그거 오정해 나왔던 영화?
평일
그렇지. 어린 동호가 누나인 송화(오정해)와 춘향가의 한 대목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잖아. 동호가 “이러 오너라, 업고 놀자”를. 그러다가 동호가 송화에게 묻지 않나? “그런데 누나, 작은 이도령이 뭐야?”라면서.
평이
새끼… 어린 것이 발라당 까져가지고.
평일
송화는 남녀관계에 눈을 뜰 듯 말 듯 하는 사춘기잖아. 송화는 얼굴을 붉히고, 대답을 회피하지. 따라 부를 때 특별한 기교도 필요 없고 내용도 남녀 간의 보송보송한 애정 씬을 그리고 있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지.
평이
그건 사실 성춘향과 이몽룡의 섹스신이야, 섹스신. 지금도 유튜브에 뭐 ‘키스신 모음’ 이런 게 올라오지 않나. 조회 수도 제일 많고. 춘향가가 정절이라는 교훈을 뽑아내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랑과 섹스 문화가 들어 있지.
평일
그래서 판소리 다섯 바탕이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네. 원래 신재효(1812~1884)가 전해오던 열 두 마당 중 여성 마당을 기록으로 남겼지.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흥부가), 퇴별가(수궁가), 화용도(적벽가) 그리고 변강쇠가. 재밌는 사실은 변강쇠가는 중도 탈락되었다는 거야. 그것도 20세기에. 신재효가 기록에 남긴 변강쇠가의 일부를 보면 지속되기 어려웠던 까닭이 이해가 갈 걸세.
평이
무슨 내용인데 그랬을까? 한번 읽어 보게나.
평일
자네가 읽어.

안드레이서반의 다른 춘향

평이
에헤, 이 사람… 거참. 내가 한번 보겠네. 원문을 살려서 읽지. “계집이 허락 후에 청석관을 처가로 알고 두리 손질 마죠잡고. 바우 우의 올라가셔 대사(大事)를 지니난디, 산랑 신부 두 년 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일언 야단 없거꾸나. 멀금한 대낮에 년놈이 훨쩍 벗고 매색이 쁜 작난할 제,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 놈이 여인양각(女人兩脚) 번듯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구버 보며… 그런데 ‘여인양각’이 뭐야?
평일
두 다리
평이
‘옥문관’은?
평일
거시기… 거, 그만 읽게. 암튼 이후 변강쇠 타령은 음악사에 ‘맥이 끊어졌다’는 단 한 줄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지.
평이
그런데 ‘다른 춘향’ 보고 왜 이런 이야기로 운을 떼는 게야?
평일
자네는 서반 선생의 이번 작품에서 남다른 점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외국인 연출가?
평이
일단은 배경 설정이었어. 이몽룡(이광복 분)은 대학생, 그의 아버지는 정치인. 춘향(정은혜 분)의 모친인 월매(박애리 분)가 연금을 받는다는 설정도 재밌었고. 몽룡이가 한양으로 가듯 서울로 가고. 변학도(김학용 분)의 횡포에 감옥에 간 춘향에게 단 한 번의 면회가 허용된 날이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재밌고. 그런데 수절을 들지 않는다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지금의 현실과 어긋나는 대목이었지.
평일
하지만 원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연출가의 의지로 볼 수도 있고.
평이
그럴 수도 있고. 원본에는 잔칫날로 그려졌지만 <다른 춘향>에서 이몽룡이 춘향 앞에 나타나는 날은 춘향의 선고 공판일이고. 아, 변학도의 부임에 반대하는 파업·투쟁자들이 나온 설정도 눈길을 끌었어. 조선을 배경으로 그런 이들이 나올 수가 없지.
평일
나도 자네가 말한 점에는 공감이 가네. 그런데 서반 선생의 ‘다른 춘향’의 특징은 춘향이에 대한 판타지를 묘하게 가져가고 또 깨버린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네.
평이
춘향이가 좀 야하게 그려졌지. 무대 앞에서 봐야했는데…

안드레이서반의 다른 춘향

평일
춘향은 우리에게 지조의 아이콘이야. 그런데 서반은, 아니 변학도는 춘향을 퇴기(기생)의 딸로 재인시키지. 그리고 정조를 올곧이 가져가는 텍스트의 대로에 성(性)에 대한 샛길을 내어버린다네. 춘향이 수청을 거부하지 않나? 그런데 서반은, 아니 변학도는 주리를 틀거나 곤장을 내려치지 않고 쇼걸의 복장을 입히지. “기생이었던 네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끼를 꺼내보라”면서. 그러고 남성들이 두들겨 패는데, 바닥에 깔린 물에 젖는 몸, 헝클어지는 머리카락, 신음소리, 묘한 가학성 등에서 내가 듣고 배운 춘향이의 모습과 무대 위의 춘향의 모습이 다른 거야.
평이
그래서 어땠는데?
평일
솔직히 그 결과물이 무대에서 이렇게 표출되는 건 별로였어. 하지만 앞서 <서편제>를 논할 때처럼 작품 곳곳에는 성적 판타지가 있다네. <방자전> 같은 영화는 춘향 서사의 성적 판타지를 노골적으로 까고 가는 경우이고. (창극)작품들은 여러 개의 층위로 되어 있다네. 하지만 늘 하나의 시선으로만, 하나의 층위만을 들추지. 춘향은 늘 정조의 여인인거야. 그런데 서반 선생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그런 게 보였겠나? 기생의 딸이라는 것이 더 와 닿았을 것이고.
평이
자네가 말한 점이 이 작품이 ‘호불호’로 나뉠 수 있는 대목이라네. 아무튼 창극에 대한 실험은 다양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자네는 ‘다른 춘향’을 통해서 판소리의 계보와 연출의 기법을 논했다면 난 좀 아쉬운 점이 많아.
평일
그게 뭔가?
평이
창극(唱劇). 이 두 단어는 노래를 뜻하는 ‘창(唱)’과 연극을 뜻하는 ‘극(劇)’이 결합된 걸세. 절반은 노래 즉, 음악이고 절반은 연극이라는 게야. 하지만 긍정적인 진화든 부정적인 진화든 그 진화는 ‘극’에 치우쳐져 있어. 이건 지금 예술감독으로 있는 김성녀 시대만의 특징은 아니야. 그 전부터도 늘 그래왔지. 남다른 연출가의 개입은 음악에도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국립창극단의 작품에서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거든. 음악은 늘 극의 일부이거나 소재로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
평일
어떻게 하면 좋겠나?
평이
글쎄. 지금은 대부분 연출가로 밀어붙이지. 앞서 자네가 거론한 다섯 바탕은 내용과 주제가 되는 교훈이 제각각 다른 점도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매우 다른 특징을 갖거든. 음악의 색깔은 다 같은데 내용만 다르다고 신재효가 선별한 것은 아닐 걸세. 지금 창극은 음악적인 변화도 중요한데… 음악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논하고 싶은 내가 국립창극단의 작품을 보고 늘 할 말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네. 아무튼 음악적인 면에서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논해보도록 하지. 일단은 그런 반쪽짜리 변화와 혁신이라도 지금에 있어서는 큰 변화와 의지이니.
평일
그러게나. 다음에는 자네가 음악적으로 실컷 떠들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네.

안드레이서반의 다른 춘향

[사진: 국립극장 제공]

안드레이서반의 다른 춘향 포스터

일시
11월 20일~12월 6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예술감독
김성녀
각색·연출·조명컨셉디자인
안드레이 서반
작창 및 소리지도
유수정

태그 국립창극단,세계거장시리즈 2,안드레이서반의 다른 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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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제57호   2014-12-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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