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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연대, 땅에서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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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 극장의 주인. 연극이 있던 자리를 배회하는 존재. 말해졌으나 등장하지 못한 인물들과 잔치를 벌이네. 내가 살피는 건 너의 마음. 연극을 보기위해 찾아오고 떠나간 관객의 얼굴에서 이야기를 찾아내지. 나는 유령. 극장의 나의 집.

극단 해인 <노란 봉투>

여기는 혜화동1번지. 관객들의 어깨는 서서히 들썩이고 있습니다. 흐느끼는 관객도 있고, 연신 훌쩍이는 관객도 있습니다. (커플들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어떤 극이 상연 중이냐고요? <노란 봉투>입니다. 촌스럽고 얇은 그 봉투 맞습니다. 계좌이체로 들고나기 전, 월급을 넣어주던 그 봉투 말입니다. 작품 속에서는 월급을 넣어주던 봉투가 해고통지서를 넣어주는 봉투로 바뀌었다고 인물의 입을 빌려 가슴 아프게 고하지요. 입장 직전에 관객들에게 건네준 봉투 안에는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노란봉투>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의 행사가 하위법인 민법에 따라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의 대상이 되거나 형법에 따라서 업무방해죄의 처벌 대상이 되어서, 노동자들이 파업 과정과 파업 이후에도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이 연극이 그저 연극 한 편이 아닐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께서 손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연극은 손배가압류 때문에 고통 받는 파업 현장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봉투 속 편지에서 그러하듯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을 관객이 아니라, 시민으로 호명하는 것이 퍽 인상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극장은 사회에서 별개로 취급하는 특별한 예술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이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게 일깨워주는 장소인 셈이지요. (그래서 커플의 얼굴엔 실망감이 서려있었을까요?) 늘 보던 관객들과는 다르게 별난 사람들이 많이 초청되었습니다. 사회 각층의 사회학자들, 노동운동을 하는 운동권 인사들, 진보 정치인들과 그리고 해고 노동자의 가족들이 연이어 극장을 찾았습니다.

특이하게도 객석 첫 째 줄에 앉아있던 그날의 초청인사는 연극의 마지막, 극 중 인물에게 한마디를 건넵니다. 그 부분은 연극이기도 하고, 연극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현실을 살고 있는 실제 인물이, 배우들이 연기하는 극중 현실에 불쑥 들어오는 셈이지요. 작품이 상연된 3주 동안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바로 이 분의 말씀이었습니다. 70년대 청계피복 여공이셨던 신순례 선생님은 해고 노동자 병로를 와락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원은 못할 거 같고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극단 해인 <노란 봉투>

많은 분이 지치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자는 말을 건넸지만, 신기하게도 관객의 심금을 울렸던 건 엄마 같은 그녀의 울음 섞인 말이었습니다. 시종일관 상대와 타협하지 않고 악으로 깡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던 투쟁심 넘치던 ‘병로’도 일순간 울컥하고 말지요. 끔찍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연극은, 그 중 연출을 허락하지 않고 열어두었던 단 한순간의 틈으로 숭고한 인간의 온기가 스며들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혜화동1번지에서 유령 노릇을 하면서 눈물 참는 것은 이력이 났기에 이번에도 잘 버텨낼 줄 알았는데, 이 순간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지요. (이 부분에선 커플들도 손을 붙잡고 오열하네요)

극의 말미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들인 민우를 잃고 자기 스스로 목을 맨 김민성 노동자의 장례식이 벌어집니다. 처음엔 노조 측에 서서 파업에 동참하던 그가 손배 가압류 등의 압박으로 인해 다시 사측으로 돌아서자, 동료들은 그를 쓰레기 변절자로 취급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자살 앞에서 동료들은 다시 노란봉투에 조의금을 모아 돌리게 됩니다. 오로지 병로만 빼고요. 그 앞에 한 여고생이 나타납니다. 고인이 된 민우가 아빠를 주려고 명동에서 샀다던 넥타이를 가지고 온 것이지요. 하지만 아들 장례식에도 건네지지 못한 넥타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전해지지 못합니다. 주인을 잃은 넥타이는 결국 동료였던 병로의 목에 매어집니다. ‘목을 맨다’는 상징이 실로 의미심장합니다. 멋진 형님이었고, 좋은 동료였지만 마지막엔 원수보다 못했던 노동자의 죽음은 실은 우리 모두에게 가해질 수 있는 형벌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지요. (아, 물론 여기까지는 현장극의 당연한 흐름이라서 슬프지만 꾹꾹 감정을 눌러 담고 있었습니다. 살짝 강요당하는 느낌도 들어서 애써 넘어가지 않으려고도 했고요) 하지만, 그 다음에 뜬금없는 여고생의 당찬 말이 다시 한 번 관객들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죽는다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런 얘기는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요”

‘죽는다’, ‘죽겠다’는 말로 투쟁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여고생’은 당차게 경고합니다. 동생 같은 그녀의 울음 섞인 한마디는 ‘심쿵’ 상태로 방치되던 관객들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 주었습니다. 관객들도, 시민들도 실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손배소 가압류가 5억이든, 50억이든, 100억이든. 그 거대한 돈의 무게에 당하지 말고, 일단은 살아 있기를… 이어지는 여고생의 말은 압권입니다. “차라리 나가서 서명을 받으세요. 서명을 받으면서 말해야죠. 혼자가 아닙니다!”

극단 해인 <노란 봉투>

물론 귀를 의심할 정도로 순진한 말이었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이 서명을 안 했을까.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5년이 넘게 천막농성을 해도, 한강에 빠져서 허우적대도, 여기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고 알리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도, 아무도 알아주거나 보도해주지 않았는데… 하지만 여고생의 진심 어린 그 말은 철벽같던 병로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늘 위에 계신 가난한 아버지에게도 서명을 받고, 먼저 돌아가신 노동자들에게도 다시 서명을 받고, 다시는 억울하게 죽지 않겠다는 약속에 서명을 받겠노라고.

극장 안에는 가수 김민기의 노래 ‘친구’가 조용히 흘러나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친구를 잃은 슬픔 속에서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그 담담한 멜로디에, 기어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뻔했지만… 경망스럽게 이어지는 배우들 아니 노동자의 흥겨운 춤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극장 밖을 나서는 커플들의 이야기가 좀 궁금하기도 했고요)

자, 이제 이야기를 마칩니다. 혜화동1번지 극장의 유령으로 지내면서 몇 년간은 실로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젊은 연출가 동인들이 보여준 진한 세상살이 풍경들이 연극에 잘 담겨있었으니까요. 극장을 배회할 뿐 멀리 나가지 못하는 유령에게 관객들이 울고 웃고 분노하고 의지를 불태우던 모습은 영영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해준 연극예술가들을 대표하여 노란봉투의 작가에게 한마디 건넵니다. 양구야, 고마워. 정말이야.

[사진: (주)드림아트펀드 제공]

극단 해인 <노란 봉투> 포스터

일시
11월 25일~12월 14일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이양구
연출
전인철
출연
안병식, 김민선, 조시현, 백성철, 김민하, 양정윤, 윤미경

태그 극단 해인,노란봉투,정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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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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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호   2014-12-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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