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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나와 메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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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있는 리뷰>는 2015년부터 코너의 색깔을 더욱 진하게 내고자 새로운 시도를 선보입니다. 공연 관람 후 필자는 두근두근 관객의 마음으로 직접 창작자를 만나 질문을 던집니다. “극장에서 공연을 본다 - 집에서 리뷰를 쓴다”로 구성된 간단한 리뷰쓰기의 단계에서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를 더함으로써, 관객의 입장에서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보다 생생하고 세심한 공연관람기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예은, 정진세 두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진행하는 “예술가와의 대화+색깔있는 리뷰” 코너에 관객으로서 여러분이 묻고 싶은 질문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극단 떼아뜨르 봄날 <메데아>

1.

정열은 식는다. 언젠가. 그리하여 누군가는 온기가 다한 마음의 불을 끄고, 문을 닫고,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만) 보면 비극의 인물과 현대적 인간은 얼추 비슷해진다. 그리스 시대, 버리고 떠나온 고국과는 멀리 떨어진 코린토스. 그 곳에서 불안한 미래를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나’ 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거의 맹세와 다짐은 유효한가. 내가 지켜가야 할 것은 국가인가, 가정인가, 혹은 나 자신인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 는 도대체 누구인가.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짚고 가자. 하나, 그리스 비극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특정한 이야기다. 고로, 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나 또는 나와 아무렇게나 대입가능한 상황은 둘 다 아닐 거라는 말. 내 이야기인 듯 내 이야기 아닌 내 이야기인 너, 그게 바로 비극인 셈이다. 자기 클래스를 높이려고 더 나은 신분의 여자와 결혼하려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아이를 맡기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려는 여자. 이러한 ‘막장’ 드라마는 고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다만 행동에 있어서 인물이 고민하고 눈치 보는 사회적 맥락이 다르고, 또 그 실행에 있어서 보다 심오한 사연들이 발견된다는 점. 따라서 비극이 ‘나’ 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마땅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창작자에게 궁금한 것은 이러하다. 지금, 여기의 비극 <메데아>를 예술가들은 어떻게 읽어냈는지, 그리고 그 해석은 우리에게 이유를 스스로 찾아주기에 합당한지. 그리하여 관객들이 만난 ‘메데아’ 가 에우리피데스의 것인지, 연출가 이수인의 것인지 혹은 관객인 나의 것인지. 더 나아가 더불어 지금은 ‘봄’ 날도 아닌데 왜, 떼아뜨르 봄날과 이수인 연출가는 그리스 비극을 선택했는지.

이수인
왜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웃음) 어떤 텍스트에 대해서 나와 우리 팀이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를 먼저 고려하는 편이에요. 작품을 선택했을 때, 그 안에 담긴 주제 이런 것들이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적절한가를 크게 따지지는 않는 편이죠.
정진세
사회비판적인 작품(<엔론>, <해피투게도>)도 하셨지만, 치정극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이수인
네, 치정극 전문 연출가입니다. (웃음) 이번 작품도 그런 요소가 있죠. 그리스비극이라는 게 그로 인한 근친상간, 근친살해니까.
정진세
작품 안에서 독특하게 ‘우수’ 나 ‘회한’ 에 찬 인물이라거나, 혹은 지나버린 청춘, 혹은 식어버린 열정의 감성이 많이 느껴졌어요.
이수인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 작품에 퇴폐나 권태의 이미지가 많이 떠오른다고 해요.
정진세
그간 연극무대에서 보아온 <메데아>에선 비운에 찬 모성이라거나 혹은 당찬 여성이라든지, 그런 식의 해석이 많았잖아요.
이수인
그런 해석은 정말 싫고, 메데아를 그런 방식으로 보여주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죠. 사실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을 읽어봐도 나는 그렇게 메데아가 센 사람처럼 보이지 않더라고. 슬퍼 보이고, 가련하게 느껴졌어요.
이예은
많은 것을 가진 여자가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이방인이 되는 드라마,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자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드라마가 <메데아>의 드라마로 읽힙니다. 메데아는 매우 극단적인 드라마 속의 인물인데 이 연극에서는 그러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허무함이나 메데아의 부재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이수인
공연을 본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 <메데아>인데 메데아가 안 보인다. 음… 그래서 내가 그랬지. 무대에 저기 있잖아. (웃음)

극단 떼아뜨르 봄날 <메데아>

2.

그간 한국연극에서 <메데아>는 미디어에 나타난 여성성을 부각시키거나, 복수의 화신으로서 팜므파탈을 강조하거나, 타자로서의 이방인 문제를 화두로 삼아왔다. 남성과 여성이 격돌하고, 모성과 여성이 충돌하며, 악녀와 선녀가 맞서왔던 셈이다. 대체로 <메데아>의 무대를 가치 투쟁의 장(場)으로 그리는 해석이 우세했다. 고로 -외유내강이든 외강내유든- 필연적으로 강력한 메데아가 무대 중심에 놓였고, 이아손이나 크레온 혹은 글라우케 등 반동적 인물의 존재감이 동시에 키워졌다. 다른 작품보다 훨씬 자애롭고 현명하던 에우리피데스만의 코러스들은 공연 콘셉트에 맞춰 삭제되거나 유난스런 도구들로 사용되었다.
그러한 연출의 계보 속에서 이수인이 발견한 비극은 그 기저에 깔린 가련함의 정서를 품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전의 ‘메데아’ 들이 영웅이 되거나 어머니가 되는 ‘등극’ 의 길을 택했다면, 봄날의 메데아는 그저 불쌍하고 딱한 인간으로 ‘전락’ 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극중에서 메데아가 지혜로운 계책을 발휘하거나 잔인한 복수를 실행하는 장면은 그리 멋지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지녔던 가치와 품위, 존엄이 파괴되면서 드는 절망감이 더욱 간절하게 제시된다. 그리하여 무대는 회한과 비참의 정서가 가득하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이수인이 그려낸 메데아의 세계는 센 ‘척’하는 존재들의 허망함과 센 존재들의 가련함이리라. 그리하여 동정과 연민의 대상은 크레온에게도 해당된다. 자식의 생사를 고민하는 부모의 존재는 따로 또 같이 불쌍하다. 그리하여 연출가가 던지는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는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질문이되,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나를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이아손의 것이 아니라, 과거사실의 반대인 가정법으로 자책하는 메데아의 것이거나 혹은 과거완료형으로 늙어버린 자신을 돌아보는 크레온의 것이다.
즉, 지금, 여기의 무대가 질문하는 ‘나’는 무언가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발명된 열정적인 나가 아니라 무언가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냉정한 나에 가까울 터. 그런고로 원작이 크레온의 왕국인 코린토스의 메데아의 집 앞에서 서문을 여는데 반해, 이수인의 <메데아>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나간다고 큰소리치는 이아손의 출병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메데아, 크레온, 글라우케, 그리고 메데아의 자식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비극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정진세
중장년의 애환, 멜랑꼴리 이러한 감성은 젊은 배우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수성일거 같은데.
이수인
근데 우리배우들은 은근히 다들 나이가 많아서. (웃음) 그리고 젊은 배우 안에도 애어른이 있어. 늙은 자아들. 예술가들은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정진세
작품의 앞 장면과 마지막에 울려나오던 ‘케세라세라(Que sera sera)’가 인상적이에요.
이수인
그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될 대로 되라. 미래를 누가 알겠어. 사실 그 노래가 경쾌하기는 하지만, 허무함이죠. 관객들에게 마지막에 전하는 그 느낌은 우울한 거죠.

3.

이 작품은 열정이 식은 자리들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소설이 떠오르기도 하고, 현대인의 음울하고 퇴색된 욕망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느와르(noir) 영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편집 가능한 장르로서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기에 이 연극은 인물의 연기와 코러스와의 앙상블로 분위기를 조성해냈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바로 메데아의 연기. 소리 높여 외치고 울부짖는 메데아 대신 낮게 읊조리며 흐느낌을 보여준 김춘희 배우는 색다른 인물형상화를 보여주었다. 액션과 텐션의 대명사인 메데아를 지우고, 리액션으로 답하고 상황을 이완시킴으로서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셈. 그러한 인물구축은 동일한 결로 이어진 크레온(신안진 분)의 모습과 잘 어울렸고, 한편으로 철없는 소년 같은 이아손(송홍진 분)의 외적인 표현이나, 깔깔대고 히히덕거리는 글라우케(김누리 분)의 연기 또한 타당성 있게 전달되게끔 하였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코러스를 연기한다는 점이다. 그간 <노부인의 방문>, <왕과 나>, <해피투게더>, <엔론> 등에서 보여준 춤과 노래는 계속된다. 회한의 정서를 살리기 위해, 적절하게 힘을 빼는 방식으로 이뤄진 합창이 인상적이다. 상황을 역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혹은 감정 몰입을 방해하는 효과로서의 ‘팝음악’ 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 이를테면, 이아손이 메데아를 처음 본 순간, 로맨틱 팝송인 “You are so beautiful”이 흘러나오고, 그들이 혼약하는 장면에선 “Can't help falling in love”가 노골적으로 흘러나온다. 빈껍데기에 불과한 가사를 나열하는 용도로 “Try to remember”는 부부싸움 전초전에 합창으로 깔린다.
비슷한 맥락으로 거듭된 이수인표 블랙 유머는 등장인물과 코러스를 오가며, 여러 ‘입’들에서 발화되었다. 대사에 깔린 말놀이, 의미를 쌓아 나가기 위한 말의 반복, 혹은 의미를 벗어나기 위한 궤변 등등. 빼앗긴 양털에도 봄이 오는가, (그리스 이후에 나오는 로마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하고 외치는 지적인 대사가 귀에 스친다.
허나 이러한 유머코드는 ‘심각한’ 비극에 대한 거리두기를 의도하였음에도, 외려 극의 진행을 산만하게 만든다. 더불어 정교한 타이밍과 호흡을 크게 고려치 않고 나오는 드립의 향연은 해석의 피로감을 더해주었다. 자잘한 웃음들이 극 내내 떠다니기는 했지만, 관객들은 함께 박장대소하는 공유의 체험을 누리지 못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연극을 체험하는 것이 현대비극의 관람 방식이기는 하나, 그것은 ‘함께’ 공감할 때 그 파급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관객들이 즐기며 누렸던 장면들을 나열해 보자. 위험을 경고할 때 마이클 잭슨의 대표곡 “Dangerous"가 흘러나온다. 코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엇박자로 ‘데인저러스!’를 외친다. 보여주기 식의 조악한 발음과 과격한 군무가 당차다. 코러스들의 몸짓이 하나가 될 때, 객석도 웃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아손과 메데아가 본심을 드러내며 싸우는 장면에선, 작품의 설정인 ‘비련’마저도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치졸하게 맞붙는다. 배경을 이룬 코러스들은 이미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무대바닥을 뒹굴고 있다. 여기서 음악은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 관객들은 추악한 사랑에는 동의할 수 있다는 듯, 막장으로 전락한 난장에 격한 공감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수인
공연을 보면서 웃어도 되지만, 관객이 웃어도 되는 거야? 이런 혼란을 주면서 제가 연극을 만들어요. 좀 장난꾸러기라서.
정진세
다 같이 웃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수인
이상하게 제가 까다로워서. (웃음)
이예은
제가 이해하는 이수인 연출식의 화법을 알고 있어서 보기가 편했어요. 연출가의 장면 만들기가 순간적 힘을 뭉쳤다가 확 풀어내는 방식이어서. 저는 모호한 지점들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잘 봤어요.
이수인
어떤 사람들은 그걸 따라가면서 즐기는 사람도 있고, 어떤 관객들은 좀 어려워하는 거 같고.
정진세
독특한 리듬이 연출님의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인거 같아요.
이수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극단 떼아뜨르 봄날 <메데아>

4.

동시대 비극이 머물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스타일이 강한 극으로서 장르화 되고 혹은 ‘명품’ 되기를 택함으로서, 비극은 관객들의 연극관람 컬렉션으로 목록화 되고 있진 않을까. 혹은 창작자들이 먼저 그러한 박제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컨대 이는 창작자들이 인물의 성격적 결함이나 인간적 미숙이 현대적 캐릭터로 표현하기에도 불편하고, 더 나아가 통렬한 반성과 깨달음을 전제해야 하기에 이러한 계몽주의를 피하다 보니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창작자는 비극으로부터 멀어진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여러 방식들을 고안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비극과 관객과의 균형 잡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일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비극은 영웅이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여야 하니까.
그런고로 메데아를 통해 나의 슬픔을 보게 해주고, 오이디푸스에서 나의 오만과 마주치게 해주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나의 격정을 경고해주는, ‘살아있는’ 연극 만들기를 기대한다는 당부로 본 리뷰를 마친다. 이 말은 비극을 준비하는 연극 창작자들에게, 콕 집어서 연출가 이수인과 떼아뜨르 봄날의 창작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사진: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태그 극단 떼아뜨르 봄날,메데아,정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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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jinse.j
제62호   2015-02-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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