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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나와 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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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시)

동시대 연출가 김현탁은 그동안 명쾌한 논리를 바탕으로 고전을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일단 그의 방법론은 이런 식이다. 먼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전 텍스트에 접근한다. 하나의 개념을 추출한다. 이어 미학적 뼈대를 세운다. 다시 문제의식을 점검한다. 그리고 분해한 원작의 구성물로 다시 살을 붙인다. 논리에 맞지 않으면 버린다. 혹은 그 현상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원칙은 최대한 재미있게. 마지막으로 뜬금없지만 - 듣고보니 그럴듯한 - 노래를 들려준다. 그리하여 이번에 과거로부터 호명된 인물은 춘향(春香)이다. 한국의 고전문학 <열녀춘향수절가>는 김현탁의 해체공정을 거쳐 조선시대 아이돌 춘향의 열녀(烈女) 오디션 무대가 되었고, 이는 ‘열녀(十女)’ 혹은 ‘십녀(sexy girl)' 퍼레이드의 형태로 줄줄이 꿰어졌다. 제목만 들으면 그간 한국연극의 ‘치부(恥部)’를 담당해온 ‘벗는 연극’ 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홉명의 춘향들은 맨살을 드러낸 몸매만큼 자기가 맡은 무대에 당당히 임했고, 관객들은 그 건강한 문제제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번 색깔있는 리뷰에서는 ‘월매’ 역할을 맡은 김미옥 배우를 직접 만나, 특히나 고전(古典)을 만나 즐겁게 고전(苦戰)하고 있는 극단 성북동 비둘기와 작품 <열녀춘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공연을 함께 본 최윤우 편집장, 이예은 필자와 그리고 김현탁 연출가의 페르소나로 알려진 김미옥 배우가 ‘술은 마셨으나 취하지 않은’ 자리에서 나눈 이런저런 대화들을 정리해본다.

극단 성북동비둘기 <열녀춘향(10 Girls ChoonHyang)>

(싫어할 혐)

정진세
공연을 보면서 짜릿하거나 나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장면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편집장님은 어떠한가요?
최윤우
관객들이 매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품을 즐기는 관점이 서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사실 조금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10개의 에피소드가 ‘쇼(show)’ 의 형태로 펼쳐진 거니까,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진세
나는 그렇게 봤는데
최윤우
나는 장면과 장면간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고, 전체 이야기의 틀을 좀 따져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보니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이미 의미를 알아버리니까, 그 운동하는 신체 외에는 크게 흥미가 동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막판에 군무씬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정진세
거기서 저는 쾌감을 느꼈었는데. 여자들이 다같이 괴성을 지르면서 합창을 하는 건 일상이나 예술에서나 접해본 적이 없잖아요.
이예은
남자들은 그런 부분에 감정이 발동하는구나. (웃음) 제가 이 작품에 초연당시 드라마터그로 참여했었는데, 그때 설정한 방향성은 춘향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기형적임을 증명하는 데에 맞춰져 있었어요. 춘향전이라는 텍스트는 구전(口傳)으로 전승된 건데, 그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는 거잖아요. 사람의 입을 통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더해졌을까, 하는 지점에도 문제의식이 있는 거죠.
김미옥
남자들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우리 춘향이를 현대로 갖고 왔을 때,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 도대체 이수만 사장이 왜 소녀시대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답을 찾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아홉명이나 되는 이 걸그룹은 그 안에서 모든 남자들의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멤버들로 구성된 거니까. <열녀춘향>도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9개의 에피소드와 하나의 군무씬으로 조합이 완성되어 있는 거죠.

극단 성북동비둘기 <열녀춘향(10 Girls ChoonHyang)>

(묘할 묘)

정진세
2013년 공연과 2015년 공연 사이에 2년이 흘렀는데요, 체감시간은 훨씬 길게 느껴지지만 (웃음) 배우님이 이번 작품에서 느끼는 감흥이 어떨지 궁금해요.
김미옥
극단 성북동 비둘기가 2년동안 많은 작품을 하고 <열녀춘향>을 다시 하는 거기 때문에 그때 월매와 지금 월매는 분명히 다르죠. 훨씬 강해졌고, 독해졌다고 느껴요.
정진세
이번에 공연하면서 기억에 남는 관객분이 있으세요?
김미옥
아, 오늘 맨 앞자리에서 고추전 드신 분.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흐뭇하게 웃으시면서 고추를 드시더라고.
이예은
왜 좋아하는지 보여요?
김미옥
왜 좋아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작품의 은근한 의도나 살짝 노골적인 장치들을 알고 있다' 하는 눈빛? 혹은 그냥 야해서? (웃음)
정진세
아마도 그런 성적인 코드가 좋아서 오신 분도 있지 않을까요? 제 앞자리에 앉으신 분은 굉장히 좋아하시던데. 객석 오른편에선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 연주자의 뭔가(?)가 더 잘 보이기도 하고요. (웃음)
김미옥
게릴라극장에서 한 초연 때에는 동아일보에서 우리 작품을 야한 코드로 읽어내서 기사로 쓴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그런 연극으로 오해한 분들이 단체관람을 오신 거예요. 보고나서는 본인들의 기대와는 다르지만 웃기긴 웃기니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좀 애매하고 이상한 거지.
이예은
저는 초연 때는 그런 기운을 잘 못 느꼈는데, 이번 공연에선 더욱 그런 부분이 노골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를테면, 여자배우가 리듬체조씬에서 티(T)자 형으로 다리를 쭉 벌릴때 조금은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김미옥
캐스팅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몸집이 작은 여배우가 할때는 그것이 단순히 귀엽게만 느껴진다면, 조금 키가 큰 배우가 할 때는 확실히 신체성이 부각되서 확 야하게 느껴지는 거죠.
정진세
캐스팅이 많이 바뀌었나요?
김미옥
남자 캐스팅은 그대로고요. 여자 캐스팅은 저 빼고는 다 바뀌었어요. 아마도 젊고 어린 춘향을 표현해야 하는데.... 초연당시 평균 나이가 26살이라면, 2년이 흘렀으니까 28살이죠. 그래서 새로운 캐스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정진세
음... 여자나이 스물여섯에서 스물여덟이라면 꽤 많은 것들이 변할 시기네요.
최윤우
이번에 공연을 다시 한 배우들은 초연 때 느꼈던 관객반응에서 나오는 차이에 대해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미옥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많아서 어리둥절해하죠. 자기들이 들었던 관객반응하고 좀 다르기도 하고. 그리고 관객들이 여기서 왜 반응하고 좋아하는지를 전혀 몰랐으니까. 이제 슬슬 그런 소통의 지점들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마지막 씬에서 소녀시대 군무할 때 자신들은 너무 힘든데, 왜 저렇게 사람들은 열렬히 좋아하고 웃고 그럴까, 우리는 힘들어 죽겠는데... 그럴 때 제가 설명해주죠. 관객들이 지금 웃음으로 공감하고 있는 거다.
정진세
새로 더해진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어떠셨나요? 일단은 여배우들의 숫자가 많기도 하고, 또 성적(性的)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
김미옥
저는 아이돌의 매니저처럼 역할을 했어요. (웃음) 마치 코디처럼 곁에서 지켜보는 거죠. 그래야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풋풋함과 생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어린 친구들이 있으니까.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자기들끼리 엄청나게 해요. 성적인 코드의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 것 같고. (웃음)

극단 성북동비둘기 <열녀춘향(10 Girls ChoonHyang)>

(좋아할 호)

김미옥
<열녀춘향>을 하면서 이정도로 나이가 있는 분들이 오실 줄 몰랐어요. 어머니들이 오신다는 거에 대해서 저희가 좀 걱정하는 게 있었거든요. 실은 그전에 우리가 강남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점잖은 사모님들을 좀 만났었죠.
이예은
예술의 전당에서 <혈맥>을 했었지.
김미옥
그때 그 관객분들은 우리 극단 작품을 조금 어려워하고 싫어하시더라고. 그분들(<혈맥>의 관객들)은 연극을 마치 음악회 보듯이 보기를 원했던 거죠. 근데 이번 작품은 오히려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더욱 즐거워하세요. 그분들은 확실히 우리가 새겨놓은 성적인 코드를 다 알고 보시는 거죠.
정진세
아홉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것인가요?
김미옥
의외로 요리하는 에피소드를 어머니들이 좋아하세요. 원래 초연 때는 그닥 관객들이 좋아하던 에피소드가 아니었거든요. 내용이 너무 노골적이기도 하고.
정진세
게릴라 극장 공연에선 20대초중반의 학생이 많았다면, 이번 두산아트센터 공연에선 관객의 연령층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반응을 주도하는 관객층도 달라졌고.
김미옥
이제는 요리하는 장면에서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잘 웃으니까, 젊은 관객분들도 따라서 자유롭게 웃는 거예요.
정진세
고추의 씨를 손으로 발라내는 장면에서 어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
김미옥
네, 맞아요. 씨를 제거한다는 말과 행동이 어떤 관객층에게는 너무 통쾌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레슬링 에피소드야 원체 에너지를 쏟아내는 장면이니까, 초연이나 지금이야 다들 좋아하는데, 이번에 고추전 요리 장면에서 보여준 관객 반응은 의외라서 재미있었어요.
정진세
저는 스튜어디스 헤어스타일을 한 여배우가 툭 던지는 ‘좋습니다’ 라는 대사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 하이톤으로 시작하는 발성과 어색함을 억누르기 위해 활짝 웃는 미소, 그리고 끝을 흐리는 말투 등등.
김미옥
연습에서 애드립으로 발견된 것인데, 연출도 그 말이 뭔가 힘이 있다고 느꼈나봐요.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즐길 희)

정진세
실제로 오늘 공연 보는데, 레슬링 장면이 끝나고 나이가 좀 있으신 여성 관객분께서 ‘아이고 시원하다’ 하시더라고요.
김미옥
그 전까지 모든 장면마다 춘향이가 가학적인 위치에서 당하거나 성적인 대상물로 표현되잖아요. 근데 유일하게 레슬링 장면에선 전세가 역전되니까. 그걸 정확하게 보고 있다가 그 장면에서 감정이입을 하시는 거죠. 춘향이가 몽룡과 변사또를 막 패니까.
최윤우
아마도 관객분들이 자기 남편을 생각했던 거 같은데 (웃음)
김미옥
평소에 얼마나 때리고 싶었을까 (웃음) 연극에서 제대로 즐기게 되는 거죠.
정진세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장면은 레슬링 장면에서 여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러니까 반칙을 쓴 남자들에게 다시 공격당하고 헤롱거리는 춘향에게 오히려 월매는 한 대 쥐어박지요. 무작정 도와주는 게 아니라 여성의 각성을 촉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미옥
원작에도 있어요. 춘향이가 이몽룡이 한양으로 떠난다고 할 때 엄마인 월매가 달려가서 따끔하게 정신 차리라고 하지요. 그 씬을 레슬링에서 그렇게 푼 거예요. 살펴보면 원작의 흐름에 따라 각 에피소드들도 진행되거든요. 공연의 짜임새를 원작의 드라마에 딱 들어맞게 구성했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관객들은 그 흐름을 인식하게 되지요.

(미워할 질)

정진세
성북동 비둘기가 만들어낸 문법이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관객들은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아닌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미옥
초연 때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어요. 커플이 보러왔는데, 작품이 너무 노골적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아마도 사귄지 얼마 안된 커플인거 같은데 정말 정색하고 작품을 보더라고요. 여자는 ‘어디서 이런 작품을 골랐냐’ 하는 원망어린 표정을 남자에게 보내고, 남자는 너무 미안한지 핸드백을 꼭 끌어안고 있더라고요. 저는 바깥에서 무대와 객석을 관찰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죠.
정진세
아직까지는 남녀간의 환상이나 아름다운 연애의 순간들을 간직하고 싶은 풋풋한 커플이었나 보네요. 아마도 그분들을 위한 다른 연극이 있을텐데.... 현실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로맨틱한 연극들.
김미옥
그렇죠, 이 작품이 환상이 깨진 사람 혹은 깨고 싶은 사람에겐 동참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불쾌할 수 있어요. 그래도 무대의 장면들이 어이가 없는지 종종 그 커플도 피식피식 웃더라고요. 나갈 때는 다시 굳어진 얼굴로 변했지만. (웃음)

(간사할 간)

극단 성북동비둘기 <열녀춘향(10 Girls ChoonHyang)>

정진세
작품을 보는 내내 저의 여성 취향을 점검하게 됐어요. 여성을 바라보는 내 욕망의 포인트는 어디일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에피소드와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에피소드를 구분하기도 했고, 다들 예쁘고 발랄하지만 그 안에서 특별히 내가 맘에 들어하는 캐릭터는 누구인가를 솔직히 따져보기도 했고요. 그런 점에서 나는 섹시하고 안 똑똑한 백치미의 여자를 가장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나 (웃음)
김미옥
그게 어쩌면 당연한 거 같아요. 남자의 로망이라는 게 세상에 없는, 자연스럽지 못한 ‘언밸런스’ 한 여성을 강조해왔던 면이 있고.
정진세
환상들을 점검해보니까 그 예쁜 것들에 대한 욕망이라는 게 뭔가 잘못된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한편으로는 그 욕망들을 억압된 상태가 아니라 자유롭게 두고 싶은데, 그것은 애초부터 과하게 요구된 여성상이라서, 그것을 따르기엔 무리가 있는 거고.
이예은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 일부의 남자들만 그럴걸. 본인이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서 그런거지.
정진세
의식적으로 깨어있는데... 섹시하고 안 똑똑한 여자가 좋은거야? (웃음) 아무튼 공연은 나의 욕망을 점검하고, 그것이 만들어낸 허상의 크기를 되새겨보는 시간이었어요. 한편으로 억압의 기제로서 스스로 남의 눈치를 얼마나 보고 있는지 자각하기도 했고. 그래도 욕망을 모르는 체 하거나, 부정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김미옥
아는 게 나아요. 남자들의 욕망의 크기, 욕망의 방향, 욕망의 열정 이런 것을 알고 나서 이해하는 게. 모르면 막연하게 비판하고 미워하게 되니까. 저들이 여자의 옷을 보면서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구나, 여자들도 그 시선에 부응하는구나, 하는 지점들을 인정하는 거예요. 연습할 때 ‘리듬체조’ 경기중계를 많이 봤거든요. 해설하는 분이 계속 선(線)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강조해요. 여자의 몸을 보는거죠. 그런데 이게 스포츠에서 말하는 강인한 신체와 정신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정말 손연재와 김연아를 보면서 남자들은 어떤 환상을 갖는구나 하는 발견을 했었죠.
정진세
요부와 양처가 한 몸에 있는 여자가 존재할까. 전문성과 낭만성과 도덕성을 동시에 갖춘 여성이 가능할까. 그런 점에서 춘향이란 인물은 ‘괴물’ 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열녀춘향>은 아마도 그러한 억압적인 이데올로기 또는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폭로하는 지점에서 큰 공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탕을 억지로 입에 쑤셔넣는 춘향에게 보냈던 나의 연민과 동정의 크기는 초연 때에 비해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임계치가 그만큼 또 갱신되었음을 알려주는 연극적 신호겠지요.

(끝낼 종)

<열녀춘향>의 포스터에서 드러난 ‘킬힐’ 의 엑스레이 이미지는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는 아름다움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자유롭지 못한 아름다움은 그 주인(主人)을 노예(奴隸)로 전락시키며, 더 나아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신을 학대하게 만든다. 원래 ‘종’ 자 대신 마지막 글자로 쓰려고 한 예쁠 ‘아(娥)’ 자는 ‘여자’ 와 ‘나’ 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예쁨 혹은 아름다움이란 본디 남의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참고로 ‘여자’ 와 도구로 쓰이는 ‘손(又)’ 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글자는 종, 노예의 의미로 ‘노’(奴)라고 읽는다.

살짝 뜬금없지만, 이제 막 풋풋함에서 벗어난 커플들에게, 혹은 약간은 싫증이 났을 부부들에게 또는 혼자 성(性)생활을 즐기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이 연극을 추천하는 바이다. 뭐, 어쨌든 겨울(冬)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계절 봄(春)이니까요.

[사진: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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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jinse.j
제64호   2015-03-1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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