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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와 나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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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연극이 끝난 후. ‘나’는 극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분이 묘했지요. 어떤 연극은 꼭 나를 위해 만든 연극이구나 싶을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랬거든요.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대체로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작품과 ‘거리를 두고’ 보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왜 그랬을까. 나는 나에게 가만히 질문해 보았습니다.

정진새
연극 내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놀랐고, 한편으로는 슬펐어. 내 안의 은둔하던 외톨이의 정체를 들킨 느낌? 내가 저렇구나, 무대 위에 내가 있네... 하는 공감이었지.
정진세
어느 장면에서 더욱 그랬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정진새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에 나온 지 2년밖에 안 된 모리타(최광일 분)가 타인에게 과도하게 친절하잖아. 하지만 그가 말할 때 상대방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지도 않고, 하는 말들도 진심이 아니라 겉치레 인사고. 결국에 그 친절함은 상대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쉴드’라고 느껴졌어. 예의바름으로 상대가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거지. 토미오와 함께 다니는 쿠로키(강지은 분)가 그걸 지적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뜨끔하더라고. 기계적인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해할거야.

참, 이 연극은 다른 몇몇 작품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2009년 한국에서 공연했던 사카테 요지의 <다락방>이 있었고, 이어서 2011년 히라타 오리자의 <잠 못드는 밤은 없다>가 있었지요. 히키코모리를 섬세하게 다룬 일본 연극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랄까. 한편으로는 최근에 재상연했던 <청춘예찬>(박근형작/연출)의 거친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했고요. 그러고 보니, 두 작품뿐이지만 일본연극을 박근형 연출가가 다시 만들 때는 내면적 정서(일본)와 분출하는 감성(한국)이 묘하게 어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작품의 섬세한 의미를 흩트리기도 하고, 한편으로 인물의 끓어오르는 내면을 차고 넘칠만큼 설명하기도 하지요.

외톨이 연극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주인공이 스스로 항변하는 장면이 나오게 마련인데요. 그래서 한국의 배우들이 고통스런 감정에 취해서 ‘말’을 통한 설명을 온전히 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한국의 관객들은 대사를 ‘듣기 보다는’ 한 박자 먼저 뿜어져 나오는 배우의 감정에 동해서 저도 모르게 동정의 자세를 취하게 되거든요. 이번에도 그러한 지점이 있었습니다만, 앞서 언급했던 대로 나의 이야기였기에, 무대에서의 의미 수신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이 연극은 히키코모리와 그의 가족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또 다른 히키코모리에게 자기 사연을 들려주면서, 장면들은 중첩되었고 이어졌지요. 관객들은 관찰자의 시점을 따라갔지만, 극중에서는 이야기를 듣는 또 다른 히키코모리가 있어선지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히키코모리 되기’에 동참해서 관람하는 게 작품의 포인트였지요.

히키코모리의 존재 부정과 잘잘못 프레임을 싹 걷어내고 보니까, 그들의 모습에서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의 모습과도 닮아있어서 놀랍기도 했고요. 히키코모리는 대체로 사회부적응자거나 자기부정이 심한 ‘모지리’라고 생각하지만, 무대 위의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카즈오는 외려 놀라운 사교성을 갖고 있었고, 타로는 바로 컴퓨터 회사에 취직할 만큼 뛰어난 프로그램 실력이 있었지요. 게다가 다들 어떤 점에선 자기 확신이 있을 만큼 도취적인 면이 있었던 셈이지요.

외려 그들의 부모에게서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과도하게 눈치를 본다거나, 혹은 꼭 남과 비교를 해야지만 직성이 풀린다든가, 필요이상으로 미안해한다거나. 스스로를 못난이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던 거지요. 히키코모리 타로(김동원 분)의 아버지인 키요시(윤상화 분)는 그런 점에서 더욱 딱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로는 최소한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챙겨주지만, 실직 위기에 놓인 가장인 키요시는 사회로부터, 집으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있었으니까요.

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정진세
출장 상담사 쿠로키와 모리타가 타로 집으로 찾아가잖아. 거기서 8년차 히키코모리를 만나게 되고.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 벌벌떠는 부모의 머리채를 하나씩 잡아챌 때는 겁이 덜컥 났었어. 그 장면에서 타로가 애비에미도 못 알아보는 호로자식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
정진새
처음엔 그랬는데 돌이켜보니 이해가 됐어. 히키코모리의 문제는 스스로를 통제할 어떠한 기제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사회적 합의로서의 도덕이나 인륜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테고... 실제로 집에서 틀어박혀 있을 때 나도 부모님에게 함부로 할 때가 많아. 그들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을지 새삼 느끼게 됐지.
정진세
‘은둔’이 자신이 머물 공간과 경제적인 조건에 기반하고 있는 거잖아. 결국 히키코모리에 일조하는 건 부모의 일방적인 원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부모들은 극중에서 자식에게 “미안하다”를 연발하지.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어. 히키코모리는 난동부리고,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출장상담사는 사과하지 말라고 다그치고.
정진새
히키코모리들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관념이 없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 위약금을 내놓으라든지, 늘어난 옷을 물어내라고 할 때 상대 히키코모리는 계속 어린아이처럼 당황했지. 세상에 나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자기 삶을 스스로가 다방면으로 기획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결국 집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를 끌어내서 기숙사에 모이게 한 다음 서서히 바깥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인물들의 임무요, 이 연극의 목표라고 할 수 있지요. 이를 위해 수행하는 작전들이 퍽 재미있습니다. 식량공급의 작전의 일환으로 부모가 자취를 감춰버린 집에 홀로 남겨진 타로는 화해와 갱생(?)의 제스처를 내보이지만, 곧 배고파서 벌이는 거짓말이었음은 들통 나고 말지요. 걱정돼서 찾아간 상담사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이 진압하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으로 보이는 히키코모리 타로였습니다.

이 연극에서 유독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이처럼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개인에게 미치는 강박과 폭력입니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순간은 20년을 히키코모리로 살았던 사이토(이남희 분)가 자신의 변화 동기를 말하는 장면이지요. 자기보다 못한 존재인 토미오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걸 보고, ‘멀쩡’ 혹은 ‘정상’이라는 개념에 혼돈이 왔음을 사이토는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사이토는 이 사회가 다양한 개체들이 서로 조응하며 살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요. 남들이 뭐라고 할지언정, 특이한 것에 대해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하지 못했을 때는 다양한 존재들은 소멸되고 만다는 점. 그러한 다양성이 줄어들 때 비정상을 향한 정상의 기준은 더욱 엄격해지고 폭력적이 된다는 점. 토미오가 히키코모리를 벗어나게 된 이유가 이어지면서 설득력은 더해집니다. 집 안에 있는 것보다 집 밖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실은 개인적 각성이나 설득을 위한 사유보다는 관객입장에서 확실히 공감이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전히 가족과 사회에 대해 적대적인 타로에게 사이토는 이렇게 전하지요. 자신은 히키코모리 기숙사 앞에 도시락집 앞에서 스카웃 되었다면서, 앞으로 식당 아줌마와 도시락을 싸면서 ‘썸’을 탈거라고. 가상현실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실제 연애도 하고, 적지만 돈도 벌고, 그렇게 소박한 자기 생활을 꾸려갈 거라는 다짐을 함께 나누지요. 어쩌면 그러면서 이들은 좌절도 할 것이고 고통도 맛볼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로 그들이 그들답게 ‘실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직접 세상과 맞닥뜨리며.

생각이 여기까지 차오르니까 “나는 왜 연극을 볼까”하는 질문으로, “나는 왜 연극을 설명할까”하는 단계까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그동안 세상을 회피하는 조건으로 연극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거든요. 리뷰 또한 관객과 무대를 ‘통역’하고 ‘중개’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어쩌면 이들 사이에 직접소통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갑자기 무대 위 등장인물처럼 ‘미안한 마음’이 덜컥 들게 되었지요. 공연을 보는 내내, 무대 '위의' 나와 '보는' 나와 글을 '쓰는'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교차했습니다. 그간 “연극과 나”에 대한 주제로 써왔지만, 이번에야 말로 가장 적합한 작품이었던 셈이지요.

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정진세
공연 시작할 때 최광일 배우, 아니 모리타는 왜 메르스(Mers)와 화재 시 대피방법을 이야기 한 걸까?
정진새
글쎄... 근데 내가 신기하게 여겼던 건... 이렇게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데도 극장에 나와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한편으론 새삼스럽게 ‘극장’이란 곳이, 집을 나와야지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임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임을 인식하게 됐어. 연극 보는 사람들은 천상 히키코모리가 되기는 어렵겠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비정상의 상황도 견뎌내면서 세상과 마주해야 하니까.

연극은 희극적인 톤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과는 다르게 쓰라린 결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내딛는 한 걸음의 용기가 아직은 부족했던 걸까요. 새로운 삶을 기약하며 꿈에 부풀었던 사이토는 출근 첫날,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고 맙니다. 일본식 여닫이 문으로 막아놓았던 세트가 모두 열리고, 황량해진 무대 위에는 진한 고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지요. 초상집을 찾은 출장상담사 쿠로키나 모리타가 집 ‘밖’ 의 세상에 대해 논하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과연 쓸데없는 참견이었는지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 것이지요.

그 어느 때보다도 주관적이고, 고백적인 리뷰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불어’ ‘나누고픈’ 마음에서 연극을 하고, 관람하며, 심지어 글까지 쓰는 것이겠지요. 실패와 무관심의 공포(?)는 있지만, 누군가 읽어줄 생각에 기운이 나고, 다양한 반응과 의견들이 생기는 것에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리뷰-원고료의 ‘일부’는 이야기를 들어준 독자 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선착순 댓글로 이메일을 달아주신 일곱 분에게,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희곡집을 선물로 드립니다. ‘물질’로 상대를 회유하는 것이 ‘멀쩡’한 일은 아니겠지만, 한 번의 ‘예외’를 시도해봅니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태그 두산아트센터,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정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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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jinse.j
제70호   2015-06-18   덧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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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차영
Ckdud3@naver.com 입니다!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해피몬
공연 리뷰를 읽는 것도 한편으로는 '밖'으로 나오기 위한 시도인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의 신간 희곡집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d-bace-god@hanmail.net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홍규태
nothinguy@naver.com이요~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이단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네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란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이었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happybee89@naver.com]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mozzi
저도 이 작품 보면서 비단 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메일주소 같이 남깁니다 ㅎㅎ
freejudi@naver.com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ㅈㅇ
오늘 이거 보러가요. junwon117@naver.com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이은지
최근 관람한 공연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입니다. 공강되는 대사도 많았고요. 작가님께서 어떤 작가를 좋아하시는지부터 궁금하네요. ㅎㅎ 메일주소 남깁니다. pororychan@naver.com

2015-06-18댓글쓰기 댓글삭제

박선옥
지인이 배우로 나와 더더욱 기대되는 공연이에요
저도 신청합니다
Kangta52@nate.com

2015-06-19댓글쓰기 댓글삭제

정진세
앗!(평소와는 다르게 반응이 뜨겁네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는 메일보내드렸습니다^^ 총 7분이라고 했는데... 8분이시네요. 딱, 여기까지! 공연은 참고로 내일까지입니다^^

2015-06-19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윤재
잘 봤습니다

2015-06-20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