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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와 삶, 그 현재성을 움켜쥔 잠실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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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두비춤 <순우삼촌>

극단 두비춤의 <순우삼촌>(김은성 작, 부새롬 연출)은 안톤 체홉의 <바냐아저씨>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안한 작품이다. 평생을 땅을 일구며 살던 바냐와 쏘냐, 젊은 여인을 데리고 돌아온 퇴직교수, 시골마을의 엘리트 의사 등 원작의 주요 중심인물과 이야기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작품의 주요 공간이자 배경이었던 러시아의 어느 시골 농가를 1973년 한강 개발 광풍이 불던 잠실 섬으로 옮겨왔다. 하여, 19세기 러시아의 세속과 도덕적 상실에 대한 함의는 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입고, 우리의 삶으로 스며든다. 안톤 체홉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다양한 인간상을 다각적인 관점으로 그려내고 있는 그의 희곡은 극단 두비춤의 <순우삼촌>에서도 여실하게 그려진다. 애써 찾아내야 하는 어떤 희망에 대한 주장도 아닌, 그렇다고 더 이상의 일상을 꿈꿀 수 없는 어떤 절망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평온하고 자연스러웠던 일상이 흩어지고, 서로가 의도지 않았던 갈등이 폭발하지만, 다시금 이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찾고자 하는 근간은 무엇일까. 연극 <순우삼촌>은 그리 멀지 않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객관적 사실을 밑그림으로 악인도, 선인도 존재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삶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한다.

1년에 1편씩, 그렇게 10년의 반

대개 첫 공연은 잘 보러가지 않는다. 긴장 속에 올라가는 첫 공연은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거니와 창작자들의 지인들이 대거 참석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단 두비춤의 <순우삼촌>이 공연되는 첫날 역시 이런 예상은 틀리지 않다. 다만, 조금은 어색하고 낯선 또 다른 기운이 있다. 이런 소극장 대기 열에서 흔히 보기 힘든 넥타이를 맨 중년 아저씨들의 대거 포진이다. 이것은? 궁금함은 공연이 끝난 후 만난 극단 두비춤의 문일수 대표의 설명으로 풀리는 시간, 작가 김은성, 연출가 부새롬, 극단 두비춤의 대표이자 배우 문일수 그리고 많은 공연자들과의 자리를 시작했다.

극단 두비춤 <순우삼촌>

최윤우
오늘 공연이 매진이었는데, 수많은 중년 관객들이 다 대표님의 지인이라고 하던데요?
문일수
아, 제 지인은 1명이에요. 증권회사를 다니는 분인데 그 분이 다 데리고 오셨더라고요.
최윤우
어떻게 보셨대요?
문일수
완전 난리가 났대요. 재밌다고. 1년에 연극 한편도 보지 않는 분들인데. 정말 그렇게 보셔서 계속 연극에 관심을 좀 갖게 된다면 좋죠. 연극 저변확대에 제가 공헌을 한 보람찬 날이죠. 이런 날은 술 좀 마셔도 돼~ 하하하.
최윤우
이런 분위기라면 오늘처럼 공연 끝날 때까지 매진이겠는데요?
김은성
그랬으면 좋겠다. 배우지만 제작자이기도 하시니까. 그동안 계속 사비로 공연하셨거든. 알겠지만, 문일수 대표님은 시민연극교실 출신이신데, 연극이 좋아서 극단을 만들고 1년 동안 연극 한편씩 하신다고 하셔서, 과연 몇 년까지 갈까, 그런데 5년 째 정말 한 편씩 계속하고 계시거든.
문일수
2009년에 시민연극교실에 참여했고, 2010년에 극단 2010이라는 시민극단을 같이 했었다가, 조금 더 하고 싶어서 2011년에 두비춤을 만들었어요, 벌써 올해 5년이 됐죠. 우리가 연기력은 아무래도 조금 부족하니까. 현실성과 진실성으로 승부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최윤우
창단공연 <청혼>을 시작으로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파인땡큐앤유?>, <청중> 이렇게 공연을 하셨는데 올해 <순우삼촌>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극단 두비춤 <순우삼촌>문일수

문일수
아전인수 격인 해석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사실 지나고 보면 무의식 세계에 쌓여있는 게 어떤 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지난해 공연했던 <청중>도 4~5년 전에 읽었던 작품이 떠올라서 한 거고. 이번 작품도 김은성 작가의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순우삼촌>이 떠올랐어요. 세월호 사건 이후도 그렇고 뭔가 세상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마치 경제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올해 이 작품을 하면서 즐거웠고, 얘기 하고 싶었던 것을 느꼈어요.
최윤우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쉬웠던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문일수
조금 더 인물을 복합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1번이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처해있던 환경을 40년 후에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한계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속으로는 많은 고민과 슬픔을 갖고 있는 복합적인 인물인 것 같은데, 김은성 작가가 만족할 만큼 이 사람을 잘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게 답답할 때가 많아요.
김은성
사실은 제가, 대본이 좀 더 못간 거죠. 선생님은 정확하게 서 계실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이 번에 작업을 하면서 계속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게, 그 시대에 대한 공부나 문학작품도 통독하시고, 그 시대에 대해 많이 천착을 하셨거든. 막연하게 <순우삼촌>을 좋아하셨을 때보다. 공부를 하고 나서 허점도 많이 보셨을 거야.
문일수
공부를 하면서 좋았지. 김은성 작가가 굉장히 많은 리서치를 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넓게 세상이 구성이 돼 있었어요. 치밀하게.
김은성
저는 오늘 이상홍 작가(순우삼촌 역) 연기하는 거 보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는 두비춤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보다는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졌어요.

극단 두비춤 <순우삼촌>

삶의 철학과 태도는 바뀌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대본으로,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볼까? 옆자리에 있는 부새롬 연출과 함께 이야기는 조금씩 확장된다. 하지만 연극 <순우삼촌>은 한 편의 공연을 통해 말할 수 있는, 즉 작품의 완성도, 배우의 연기, 무대의 구성 등의 분석을 넘어 이 공연이 가능할 수 있었던 힘, 그리고 매년 지속하고 있는 극단 두비춤(문일수, 이상홍)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방점이 찍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극이 어떻게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작용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인 실체로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각설, 다시 공연의 이야기로 집중해보자. 주요 공간이었던 잠실 섬은 당초 ‘삼양목장’이었으며, ‘순우삼촌’이라는 이름도 초연 때 연출을 했던 전인철 연출의 실제 삼촌이름이라는데!

최윤우
그래, 대본이 좀 그렇지?
부새롬
아, 이런 디스 인터뷰 좋아요. 하하하.
최윤우
초연 때하고 바뀐 부분이 있지?
김은성
설정이 바뀌었는데, 초연 때는 모든 인물의 구성이 원작과 똑같았고, 지금은 ‘이복형제’ 사이로 바뀌었지. 좀 올드한 느낌이 오는데, 그러면서 한국적인 정서가 좀 강해지는 것 같아.
최윤우
초연 때는 전인철 연출이 작품을 올렸었지?
김은성
순우라는 이름이 전인철 연출의 실제 삼촌 이름이야. 전순우라고. 흐흐흐. ‘바냐’를 순우로 했고, 사실 초반에 작품을 쓸 때는 대관령 삼양목장 개발을 무대로 쓰고 있었지. 거기는 산촌이었지. 그러다가 서울시극단에서 ‘서울+기억’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무대를 서울로 옮기게 됐고, 그 과정 속에서 시기적으로 잠실 섬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최윤우
제작 과정에서 만족감은 어땠나요? 아무래도 연기에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부새롬
전업으로 연기를 하는 분들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생각했던 기대치만큼은 간 거 같아요. 공연을 하다보면 더 가지 않을까 기대도 되고요. 저는 배우가 하는 걸 보면서 만들어 가거든요, 이 정도까지는 가도 되겠다 하는 지점을 보면서요. 물론 두 분에게 잘 맞는 쪽으로 찾아가려는 것도 있었는데, 그건 뭐 다른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김은성
대본을 냉정하게 다시 들여다보니, 큰 플롯은 잠실 개발이라는 큰 흐름으로 가고 있는데,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연애’와 관련된 것으로 진행이 되잖아. 그게 가장 큰 결함이라고 생각되더라고. 개발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러면 관계는 어떻게 맞물리고 풀어지고, 가야할 텐데, 어느 순간 잠실 개발에 대한 것은 인물들의 말과 정보로만 제공되고, 인물들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더라고. 그러면서 체홉에 대해서 더 궁금해진 것 같아. 전체적인 흐름은 원작을 많이 따라갔거든. <바냐아저씨>도 결국은 연애 이야기야. 다만, 거기에서 또 다른 큰 이야기가 가는 거지.
최윤우
원작에서 쏘냐가 일을 해야 한다는 말과 순우삼촌에서 영수증을 다시 챙기고 있는 순우와 지숙의 행위는 같은 이야기로 읽히잖아. 결국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 다양한 관점이 나오는 것 같거든요, 연출의 컨셉은 무엇이었나요?
부새롬
저는 이들이 거대한 공사소음과 도시소음에 묻혀버린, 이 개발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 연애 이런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들은 여러 것이 있을 것이고, 큰 이야기는 개발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마지막 장면에서 기러기가 강바닥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 말은, 곧 설 자리를 잃어가고, 공사소음에 묻혀버렸다. 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음향을 좀 설명적으로 썼어요. 혹시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열심히 살 거야’로 읽혀지는 게 싫었거든요.

극단 두비춤 <순우삼촌>김은성

김은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 거야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잖아. 그게 희망적이거나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지. 전체적인 흐름은 잠실 섬은 토박이들이 대대로 농사지으면서 살아왔는데, 이방인들이 오고, 지식인들이 오고, 이 변화에 대해서 불안한 이들이 그들에게 기대하게 되고 기대게 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난다는 거지. 땅도 없어지고. 결국 삶의 철학이 바뀌어야 하잖아.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최윤우
사실 이 작품은 땅,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서사지만, 그 속에서 연애 얘기가 중심구조로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가장 감각적인 영역이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모든 인물들이 악함과 선함이라는 구분짓는 어떤 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각각의 인물들이 상징하고 있는 인간의 다양한 관점들이 있는 거고, 결국 어떻게 존재할 것이냐. 나와 너, 존재의 방법은 무엇인가를 각각의 가치와 상황에서 찾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김은성
그래, 땅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그런 것도 바로 ‘존재’인 것 같아. 화폐 단어로 생각하지 않는. 그게 적절한 단어인 것 같다.
최윤우
그래서 세밀한 감성들만 가지고 툭툭 들어가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고. 사실 <바냐아저씨>도 공연을 보면 늘 그 공연의 바냐, 쏘냐 등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주제성이나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게 되는 것 같거든요. 아마도 그렇게 감각적으로 읽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포진돼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거든.

극단 두비춤 <순우삼촌>

결말이 보이지 않는 결말을 꿈꾸며

이 글이 게재될 때쯤이면 연극 <순우삼촌>은 공연 일주일째가 되고 있을 터, 무대의 감각적 구성은 더 깊어지고, 인물들이 세밀한 감성을 더 여유로운 자극으로 만들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복잡성을 지닌 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매일매일 관객들과 만나고 있을까는 잠재적 위험요소로 늘 긴장감을 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드는 것은 과하지 않고, 애써 어떤 장면들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계속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존재, 삶의 현재성이 무엇인가를 부여잡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순우삼촌>은 체홉이 직시했던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상을 넘어, 1973년 개발의 거대한 프로젝트로 흔들린 40여 년 전의 지난 역사를 되새김하는 행위를 넘어, 2015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명확하게 돌아오고 있는 작품이다.

한 가지, 이번 작품의 곳곳에 드러나 있는 많은 결말이 조금 더 세련되게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사견도 하나 더해본다.

최윤우
마지막 엔딩 장면은 창작한 거지?
김은성
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삼촌. 그렇지? 그래.” 그래도 살아야겠지만, 그것이 되게 그늘진 희망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마지막 지문이 이 거야. 순우와 지숙 날개 짓을 한다. 포크레인 그림자가 점점 다가온다.
최윤우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나의 ‘방’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한 상실감일 수도 있을 텐데, 구체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더라고.
부새롬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방이 정말 작게 남고, 이렇게 남아서 인사하고 나가고 하는 건데, 8명이 무대에 들어가려면 사이즈가 또 있어야 해서, 그런 게 아쉽기는 했어요. 섬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방만 나오는 게 좋은 거예요. 그런데 계속 불안해서, 조금 더 과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
김은성
이 극장에서 섬을 만들기가 좀 어렵기는 하지. 오늘 첫 공연하면서 처음 느낀 게 대본에 결말이 많더라고. 사실은 순우가 밥 먹으면서도 끝낼 수도 있고, 영수증을 정리하면서 끝낼 수도 있었고. 지금 썼다면 기러기 장면을 안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더라고.
최윤우
맞아. 확실히 많은 것 같기 해. 좀 덜 들킬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고.
부새롬
내일은 좀 더 줄일 거야.
김은성
원작에서 나오는 소냐의 독백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 그런데 다시 공연을 보면서 스스로 의심하게 됐다는 건, 나도 성장하고 있는 거지?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Play for Life 제공]

태그 극단 두비춤,순우삼촌,최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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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72호   2015-07-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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