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마법의 주문, 카포네 트릴로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주)아이엠컬쳐 <카포네 트릴로지>

대학 다닐 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연출과 선배가 있었다. 까만 얼굴에 뿔테 안경을 끼고 백팩을 어깨에 딱 맞게 메고서 늘 담배를 피우던 선배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 선배는 카이스트를 다니다 때려치우고 우리 학교에 왔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 선배의 교내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원작의 <쥐덫>이었다. 관객석과 무대의 위치를 뒤바꿔서 배치한 공연이었는데, 오퍼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범인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선배가 직접 쓴 <커피플레이-걸레 맛>이라는 공연도 봤다. 배우들이 카페 알바생처럼 돌아다니면서 관객들에게 커피를 따라 주었다. 처음이었다. 그런 공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배가 공연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러 가고 싶다. 선배의 작품에는, 언제나 관객을 확 당기는 ‘한 큐’가 있다. 그는 데뷔 9년차 연출가 김태형이다.

<카포네 트릴로지>(이하 카포네)가 오픈 했다. <모범생들>의 지이선이 각색하고, 김태형이 연출했다. 작품은 전설의 갱 ‘알 카포네’가 시카고를 주름잡던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일어난 세 개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록키”는 쇼걸 롤라 킨의 결혼식 전날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이고, “루시퍼”는 아내를 지키려는 조직의 2인자 닉의 고군분투를 담은 스릴러다. “빈디치”는 자신의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상사를 향한 빈디치의 복수극이다. 작품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이야기 자체는 크게 새롭지 않다. 하지만 <카포네>는, 이 익숙한 이야기를 조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카포네>의 홍보문구는 아래와 같다.

오직 100명의 관객만이 이 사건의 목격자.
모든 일은 당신의 눈 앞, 50cm 안에서 발화한다!
당신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

하나씩 짚어 보자. 이 공연이 과연, 그렇게 새로운가? 대학로의 소극장 중에는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객석수가 100석이 채 안 되는 공연장도 많다. 그렇다면 <카포네>가 내세운 “오직 100명의 관객”이라는 점은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당신의 눈 앞, 50cm” 또한, 1열 관객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인 소극장 공연에서도 관객과 배우의 거리는 얼마든지 가까울 수 있다. 객석이 마주 본 구조가 관객들이 서로의 표정을 지켜보게 만든다는 것, 사방이 막힌 공간이 공연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는 점은 분명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이 공연을 “당신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라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다. 작품이 별로 새로울 게 없다고 꼬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약간의 새로움을 과감하게 관객 앞에 내세워 작품을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데 성공한 프로덕션의 기획력과, 기대를 안고 극장에 찾아 온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연출, 배역과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배우들의 호연을 칭찬하고 싶다.

변방연극제 폐막작 - 극단 동 <게공선>

70분짜리 3부작 모두의 관람을 마치고 김태형 연출, 정연 배우와 마주 앉았다.

오진
공연 잘 봤어요. 평일인데도 객석이 거의 다 찼더라.
진세
관객들이 진짜 좋아하던데요. 건너편 관객들 표정 보는데, 다들 눈이 하트가 되어서, 초집중을 하고 보시더라고요.
오진
이 작품 연출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제안 했다고 들었어요.
태형
작년에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이 공연을 처음 봤어. 영어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도, 엄청 재미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더라. 건너편에 아저씨 둘이 입을 떡 벌리고 공연을 보는데, 롤러코스터 타는 듯한 얼굴이었어. 한국에서 이 공연을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지.
오진
연출님은 관객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에 관심이 많은 거 같아요. <내일이 공연인데 어떡하지>에서는 배우가 관객이랑 같이 극장을 뛰어 다녔잖아요.
태형
이번에도 관객이랑 배우랑 같이 놀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 <카포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많이 해볼 수 있는 공연이라 좋은 기회였고.
오진
작품에서 그 노력들이 많이 보였어요. 관객과 배우가 대화하고, 무릎에 올라타고. 관객들이 반응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정연 배우님은 어떠셨어요? 한 작품에서 세 명의 인물을 연기 하셨는데.
정연
<카포네>는 관객이 내 동공이 움직이는 것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공연이에요.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까, 숨을 데가 없다고나 할까. 게다가 관객석이 양쪽에 있잖아요. 매순간 뒷모습까지 연기를 해야 하니까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해요. 또 그만큼 배우에겐 도전이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했죠.

연극의 경쟁상대는 무한도전!

오진
연출님이 인터뷰에서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라는 말이 있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축구화를 신고 뛰어놀지 않는다는 것. 연극의 경쟁 상대는 다른 연극이 아니라,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말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주)아이엠컬쳐 <카포네 트릴로지>김태형 연출

태형
세상이 너무 편해졌잖아. 거실에 드러누워서 핸드폰으로, 티비로 볼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차고 넘쳐. 그에 반해서 극장에 오는 건 사실 무척 피곤한 일이거든. 연극이 해야 하는 몫은 극장에 찾아온 관객에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해. 공중파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체험을 하게 해주는 거. 그게 연극의 가치이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진세
오늘 공연을 보는데 남자 관객이 거의 없다는 게 좀 충격이었어요. 80여 명 중에 남자 딱 세 명 있었는데, 두 명은 애인 따라 왔고 한 명은 공연 관계자 같더라고요.
태형
그치. 대학로에 관객은 두 종류 밖에 없다고 보면 돼. 20-30대 여성관객, 혹은 관계자. 얼마 전에 <카포네> 기사가 모 일간지 웹사이트에 실렸는데, 리플 몇 개 달린 게 다 비슷한 내용이었어. ‘지난번에 초대권으로 연극 보러 갔는데 더럽게 재미없더라’, ‘요새 누가 연극 보냐. 돈 아깝다’. 좀 우울하긴 했는데, 아마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평균이 아닐까 싶더라. 내가 사는 세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매우 독특한 집단 인거지. 직장인 형님들, 동생들 친구들이 퇴근하고 룸싸롱 안가고 주말에 야구장 안가고 술 안 먹고 일 년에 한번 쯤 극장 오게 하려면 난 뭐를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할 때가 많아. 근데 아직은 잘 모르겠더라고.
오진
사실 좋은 공연을 만든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연극을 보러 오는 층은 무척 한정 되어있고… 어떻게 만들어도 안 오는 사람은 안 오니까. 연극에 대한 사람들의 전반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달라지지 않을 거 같긴 해요.
태형
이 사회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겠지.

이 리뷰를 쓰면서 오랜만에 <무한도전>을 봤다. 2015 가요제 특집이었다. 보는 내내 거실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깔깔 웃었다. 방송이 끝나고 다시 리뷰를 쓰러 돌아오니, 갑자기 조금 시무룩해졌다. 저런 게 경쟁상대라는 거지. 저런 무시무시하게 재미있는 게. 김태형 연출은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연극이 지닌 모든 무기를 총동원하여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배우들은 관객의 무릎에 누워 놀기도 하고,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육탄전을 벌이기도 한다. 시대별로 스윙, 왈츠, 블루스의 안무가 등장하고 총성이 난무한다.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던 배우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다른 배역으로 호텔 방 문을 열고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건 각 작품의 드라마가 힘 있게 흘러간다는 전제하에 이뤄진다.

(주)아이엠컬쳐 <카포네 트릴로지>

오진
마지막 질문 할게요. 카포네를 통해서 연출님은 관객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요?
태형
처음 이 공연하기로 했을 때 가장 고민한 것도 그 지점 이었어. 2015년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작품이 왜 필요하지? 그 고민 때문에, 원작에 없는 “빨간 풍선”을 넣기도 했고. 어딘가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결국 우리 모두는 나름의 빠져나올 수 없는 방 안에 갇혀 빨간 풍선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 관객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아직은 극장보다는 야구장, 노래방, 술집이 더 익숙한 이들을 언제쯤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관객을 향한 김태형 연출의 그간의 노력들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어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극 <옥탑방 고양이>나 <모범생들>은 재공연이 쉽지 않은 제작환경에서 지난 몇 년간 관객을 만나고 있다. <카포네> 역시 관객의 호응 속에 순항 중이다. 그렇다면,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까.

선배의 신작이 무엇이건, 나는 아마도 극장에 가서 공연을 볼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배가 공연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러 가고 싶으니까.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법한 불편한 이야기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던 김태형의 전작들을 기억한다. 2010년에 게릴라극장에서 공연했던 <가족오락관>이 그랬고, '2010 봄 작가, 겨울 무대'에서 수상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그랬다. 모두 소극장 창작 연극이었다.

문득 대한민국 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엮어낸 김태형 연출의 3부작을 보고 싶어졌다. 20세기 초가 아니라, 미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 2015년 대한민국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그 연극이라는 이름의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극장으로 향할 것이다. 무한도전 못 봐도 상관없다.

[사진: 스토리피 제공]

태그 (주)아이엠컬쳐,카포네 트릴로지

목록보기

이오진

이오진 극작가
한예종 연극원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비평을 공부했다.
연극과 뮤지컬을 열심히 쓰고 있다. yavoxya@gmail.com
제74호   2015-08-20   덧글 3
댓글쓰기
덧글쓰기

그냥
우와 리뷰 재밌어요!

2015-08-20댓글쓰기 댓글삭제

연애가
여기(내일 모레 50인) 40대 여성관객도 있어요.김종태 배우 보러 가려했는데...

2015-10-07댓글쓰기 댓글삭제

이오진
연애가님, 안녕하세요? 제가 리플을 이제야 봤네요. 그러고 보니 대화 내용이 특정 관객층에 집중하고 있는 인상도 받네요. 연출님과 인터뷰 할 당시에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관객층을 외에, 다양한 층의 관객들이 극장으로 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해야할까? 의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2015-11-2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