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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와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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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흠흠, <심청가>를 연습하는 소리꾼이 애를 먹는 순간이 어딘고 하니,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할 때로다. 인물의 정당성을 찾기가 어렵고, 내적인 충동 또한 발휘되지 않기에... 허허, 소리꾼은 종종 작품 바깥으로 빠져나와 자신과 심청을 견주어본다. (얼쑤!)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자기 생명을 되돌려주는 심청의 마음을 어찌 이해할꼬. 심청의 행동을 단순히 ‘효(孝)’로만 봐야 할 꺼나, 그걸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고 믿어야 할 꺼나. 이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 현대의 관객들에겐 어찌 받아들여질 꺼나. 결국 죽어야 사는 인물, 심청을 연기하는 소리꾼에겐 인당수 대목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인 게다.

소리꾼이자 배우인 조아라가 ‘멀티인터랙티브 굿놀이’라는 그 이름도 어려운 다원적 형식의 판소리를 선보였다고 하는데, 허허, <심청가>의 외피를 둘렀지만 실상 고전을 해체한 <조아라-가(歌)>라고 해야 맞을 것인즉!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을 ‘자신이 눈뜨기 위해’ 물에 빠지는 설정으로 바꿔버렸던 것이로다. ‘아버지’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효(不孝) 또는 반효(反孝)에 가깝지만, ‘나’를 해방시킨다는 점에선 극기(克己)나 독립(獨立)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데... (좋다!) 그리하여, 나에 의한, 나로 인한, 나를 위한 극이라 제목에서부터 굳건한 ‘쉴드(방어막)’ 가 느껴지는 이 작품은... 이름 하여 “어쩔 수가 없어” (쿵딱!) 허나 이는 80년대, 90년대의 코메디를 아는 사람이라면 기억하는 유행어, 그것도 희극만을 전문으로 하는 코메디언의 말이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조아라의 아버지를 조정현의 딸이 이야기해주는 - 판소리를 닮은 연극인지, 연극을 닮은 판소리인지 - 어쨌거나 저쨌거나 거시기한 극이렸다! 벗님네들, 거 되도 않는 소리를 리뷰랍시고 듣는 게 낯 뜨겁고 오그라들 수도 있겠으나, 흠흠, 이왕 이렇게 시작한 거 한번 따라와 보시겠소? (얼쑤!)

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어

정진세
예전에 잘나가던 코메디언이었던 아버지와 한창 주가를 올리는 소리꾼 딸의 재담극인줄 알았는데, 아버지와 나의 단절된 관계를 탐구하는 공연일 줄이야. 이 공연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조아라
작년에 불현듯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수궁가가 조아라>라는 공연을 하고 있을 때인데, 극장 오면서 생각이 난거예요. 다음 작품은 <어쩔 수가 없어>다! 이렇게 다짐하니까, 바로 포스터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무조건 해야겠구나, 이제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죠. (웃음)
정진세
극에서도 나왔지만, 자기안의 억압이나 참아왔던 분노가 굉장했나 봐요.
조아라
전작 <4.48 사이코시스>(여주인공의 자살을 독백극 형식으로 다룬 작품)때도 그랬지만, 내 안에 자기파괴 본능이 강해요.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바깥으로 향하는 내 화살이 마지막에는 나에게 돌아온다고 하더라고요. 남들이 나를 보기에는 강해보이고 자신감 넘치고 그렇다지만 실은 아니거든요. 내가 이렇게 있다간 예술가로서 내 앞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시대의 무녀(巫女)로, 이야기꾼으로 사람들의 사연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이 무대에 서려면, 일단은 내 속부터 솔직히 들여다봐야겠다, 내가 해결이 되지 않고 무대에 서는 건 거짓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숨 쉬어 부는 바람이요, 눈물겨워 오는 빗물이로다. 잘나가는 코메디언, 뛰어난 사업가, 게다가 봉사활동에도 투철한 아버지는 그저 어린 아라의 눈에는 모순덩어리에 불과할 뿐. 남에게는 웃음을 주지만, 나에게는 ‘돈’ 이라는 무관심을 가져다준 아버지는 ‘도구적 부성’ 으로만 기능하던 사람이로다. 하여 어린 아라는 두 눈 질끈 감고 입을 다물면서 그 시절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쯧쯧쯧. 아버지 땜에 억지로 했던 판소리가 얼마나 싫었을꼬. (허이고)
하여, 이 작품은 서른다섯 살이 된 조아라가 눈이 멀었던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이라 하겠다. 원래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으나.... 피하지 말고! 더 깊이 들어가! 라고 부르짖는 그녀의 말이 하도 비장해서, 떠밀려 들어가듯 그녀의 심연으로 들어가 보는데! 가만가만 살펴보니, 이 작품은 피할 수 없는 것과 거역할 수 없는 것을 어찌어찌 돌이키려는 무모한 도전이 아니던가. 어린 아라를 구출해서 심연에서 빠져나온다 해도, 현실에 있는 아버지는 어찌할텐가... (쿵딱!)

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저러고 싶을까?

정진세
이 작품은 조아라에게 특화된 공연이겠다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불화하는 딸의 고민이 있고, 지금 시대 현대를 살아가는 전통 전공자로서의 고민이 있고, 유명인이었던 사람의 자식으로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의 고민도 있고, 지금을 힘들게 살아가는 여배우의 고민도 있네요. 이러한 다층적인 고민들이 공연으로 만들어졌구나. 한편으로 이것을 어떻게 다 소화할까, 이건 3부작의 다큐멘터리 영화 정도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죠. (웃음)
조아라
나도 무대 연출이 처음이라서 아마 과했을 거예요. 과한 게 내 상태구나, 힘을 뺄 수 없으면 그대로 보여주자. 이게 지금의 내 상태니까. 첫 번째는 솔직하고 싶었어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자. 이런 작전을 짠 거죠. 광범위하게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다원예술도 공부하고 코메디도 공부하고, 달나라 극작 워크숍에서도 공부를 했고, 그리고 사람들을 모으고, 기(氣)체조도 했고요. (웃음) 제작비도 없던 시절인데 다큐영상을 찍기 시작했고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내 마음상태도 늘 점검하고요. 연출은 어떻게 하는 건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이오진
저도 아버지가 예술가여서 주변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면서 자랐어요. 대학교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나는 이 작품에 굉장히 많이 공감을 하는데, 한편으로 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작품을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조아라
다들 이야기 했던 부분은 너가 연출하면서 배우까지 할 수 있어? 그리고 보편성을 어떻게 가져 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제기였어요. 첫 번째 질문은 왜 못해? 찰리 채플린은 연출하면서 작가하면서 배우까지 하는데, 주성치도 그렇고. 물론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웃음) 하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돌파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비록 나의 경우가 특수하긴 하지만,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가 있는 거고, 나 또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갖고 있으니까, 내가 솔직한 지점을 말하면 보편성은 획득될 거야. 물론 관객들의 호불호가 있을 거야, 하지만 괜찮아,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던 거죠. 개인적으로는 다원예술 작품으로서 이 공연이 왜 영상과 전자사운드와 소리와 움직임을 해야 하는지, 이러한 요소들이 구심력을 갖고 움직이는지 이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숙제였어요.

말 나온 김에 얘기해보자. 작품은 조아라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드러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데, 일그러진 소리로 들려졌다가, 반복되는 영상으로 주어졌다가, 다양하게 변주된 음악장르로 나타나기도 했구나! 허나 그러한 범람하는 형식 속에서 판소리가 점점 그리워졌으니, 애초부터 판소리와 결합하는 다른 예술이 조화롭게 어울리기 쉽지 않은 노릇이로다. 세상의 창작물들은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데, 진실함의 순간은 외려 단순함에서 나오니 연출가는 이를 유념하시게. (흠흠)
그건 그렇고, 님도 되었다가, 웬수도 되었다가, 나로 돌아오는 판소리의 특성상 ‘딸의 아버지 되기’ 를 기대했건만, 아직은 아버지의 역할이 빈자리로 남았구나. 앵커로, 리포터로, 인터뷰어로 카메라 너머의 아버지를 지켜보는 것이, 지금의 단계에서 어찌할 수 있는 최선이렸다! (얼씨구)

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자네는 들어봤나?

조아라
우리 아버지가 왜 코메디언이란 직업을 선택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진지하고 안 웃긴 사람이 왜 남을 웃기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까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코메디언이 꿈이었던 거예요. 중학교 때부터. 사람을 왜 웃기고 싶을까. 웃기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자기가 웃기 힘드니까, 남들을 통해 웃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가 병으로 몸이 굳고 웃지 못하게 되니까 무대에 설수 없잖아요. 웃고 싶을 텐데. 그래서 이 공연이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대신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코메디언은 자신의 비극을 까발려서 남을 웃길 수 있어야 하니까. “당신이 광대면 이거 까발릴 수 있어야 해”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것이기도 해요.
정진세
이게 어쩌면 현대적인 의미의 효(孝)를 표현한 건 아닐까요? (웃음)
조아라
저는 이걸 의도하고 만든 거예요. (웃음)
이오진
마지막 장면에서 이것을 하면 뭔가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고 하는 엔딩이 인상적이었어요. 공연을 통해 아버지와 화해하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불편하게 남겨놓은 지점도 도드라졌구요. 한편으로는 공연자인 조아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았겠구나, 하는 걸 생각하게 되었어요.
조아라
그런데 하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녀서 좀 자유로워요. (웃음)
장우제
(사진작가)
아까 보편성 이야기하셨잖아요. 상황 자체가 특수한 거지 담고 있는 내용은 보편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버지와 마주하고 나서 바뀐 것이 없다, 그 사실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보편성이 아닐까 해요.
정진세
아버지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이오진
알려줘도 잘 모르죠.
조아라
아버지는 바뀌지 않아요, 나를 바꿔야지(웃음)
장우제
그래서 오히려 좋아진 결말이 있거나 했으면 기분이 달랐을 거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서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도 외려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때는 1980년,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조정현이 지역 차별에 맞서 스스로를 추스르며 코메디언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다시, 때는 2010년, 불러주는 연극판이 고마워 어떤 배역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조아라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미 아버지와 딸의 모습은 비슷할 대로 또 비슷하고, 또 그 각자대로 힘든 사정이 있었을 터. 자세한 속내를 캐묻고 따져들기 보다는,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 시기에 어떠했을지 짐작해보자. 그때의 젊은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흠흠)
한편으로, 역지사지된 마음으로 생각해보니, 아이고 우리 아버지는 오히려 소외당한 자가 아니던가. 90년대 화려했던 대중문화와 2000년대 인터넷 문화에 빠진 ‘나’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며 점점 더 침묵과 과묵의 세계로 침잠했던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해,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혐의가 있는 바! 십대까지 나를 키운 것은 부모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서로가 서로를 키우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렸다. 우리가 서른이 넘어서도 쉽게 어른이 될 수 없듯이, 우리의 부모도 쉰이 되고 환갑이 넘어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건 아닌지... 라는 궤변을 늘어놔 본다! (얼쑤~)

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조상이 돌봤어

정진세
판소리 <심청가> 가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설정하게 된 건가요.
조아라
처음에는 나를 조청, 아버지를 조봉사라고 했었어요. (웃음) 혼자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을 연습하다가 느낀 건데요. 내가 만나게 되는 작품 속 심청이가 “너도 물에 들어, 그래야만 다가오는 폭풍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어요. 그 계시를 겪고 나서 생각했죠. 심청이가 인당수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들었지만, 조청이는 내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뛰어 들어야겠구나, 그렇다면 옛날 심청이만 심청인가, 나도 심청이다. 이 시대의 심청의 꼴이다. 현대의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뛰어든다. 그렇게 느낀 거죠.
정진세
판소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면서요?
조아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습도 잘 안했거든요. 전통이 갖는 답답함도 있잖아요. 계속 멀리 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 춘향가 반창을 연습했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판소리가 좋아졌어요. 이게 내가 갖고 있는 힘일 수 있겠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더 꺼내보자, 이렇게 생각한 거죠.
정진세
뒤늦게 다시 선택한 판소리가 본인에게 잘 맞나요?
조아라
판소리가 울음과 웃음과 에너지가 소리를 통해 풀어지는 게 있어요. 내 깊은 속이 호흡이 되고, 소리가 되는데 그걸 통해서 누구도 위로받거나 위로할 수 있어요.
정진세
다원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도 신기해요.
조아라
졸업한 전통예술원 좌우명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에요. 옛것을 받아들여서 새것으로 만드는 것.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이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제가 판소리를 싫어했던 건 박제화 된 상태로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게 답답해서였는데, 내가 전통을 하는 사람으로서, 온고지신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내 시대의 전통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하고 또 그게 나의 길이 아닐까 해요.
정진세
온고지신이라는 말 속에 고(故)에 해당하는 것이 아버지와 전통과 연극이 다 포함되네요.
조아라
그렇죠.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다양한 예술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아요.

몸소리말조아라 <어쩔 수가 없어>

감은 눈을 번쩍 뜨고 세상을 본 조아라는 착한 딸로 변하는 대신, 조금은 어른이 된 듯한 모양이로구나. 아버지와의 안전한 화해도 우루루루 치워버렸다. 주인공이 저러하니 실상 관객들이 만나는 명장면도 이러하다. 어렵사리 아버지를 찾아간 날, 잠을 설친 조아라가 이를 악물고 울면서 전하는 셀프 카메라가 바로 그 것! (허허... 딱허다~)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자신의 나약함과 아버지의 완고함에 분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모습이 퍽 가슴에 사무친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은 어쩌면 긴 세월 동안 자신에게 새겨진 억압의 흔적이고, 해방의 어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얼쑤!)

허허... 그러고 보니, 조아라는 그저 해방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나로부터의 해방, 아버지로부터의 해방, 남성으로부터의 해방, 전통으로부터의 해방, 제도로부터의 해방,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의 사슬을 끊고, 눈물을 닦고, 주체성 있게 나아가자는 게 그녀의 주제파악일 터! 광대의 사명을 걸머진 현대의 연기 예술가들이 걸어갈 숙명과도 같은 길이구나. (지화자~ 좋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용서와 화해는 댁들이 알아서 하시고, 이 작품이 조아라의 힐링캠프가 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이제는 이 잡스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벗님네들아, 거 되도 않는 소리 듣느라 고생들 하셨소. 소리꾼의 고통을 어떤 이는 알겠지. 더질더질. (쿵딱!)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Play for Lif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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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jinse.j
제75호   2015-09-03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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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얼쑤!

2015-09-04댓글쓰기 댓글삭제

맛점
좋~다

2015-09-04댓글쓰기 댓글삭제

무적
지화자~~

2015-09-04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