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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새로운 일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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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돌자 극장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극장에 올까봐, 오지 말라고, 극장이 먼저 문을 닫았다. 극장에 바이러스가 출현한 것도 아니고, 극장에서 감염이 시작된 것도 아니다. 전염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극장이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국립극장, 국립극단, 남산예술센터 등등 제작 중심 국공립극장들이 먼저 문을 닫았다. 국공립예술단체들의 공연도 일률적으로 취소되었다. 대관을 운영하는 공공극장들은, 취소나 공연기간 혹은 회차 단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을 닫지는 않았다.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었지만 공연이 오르기도 한다.

민간극장과 민간단체들의 행보는 조금 다르다. 전염병 위기는 모두의 현실이지만, 창작 중심의 공연들은 대체로 연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예정된 공연을 진행한다. 오십석 미만 혹은 오십석 미만으로 객석을 줄인, 10회차 이내의 작은 공연들은 전염병의 시절에도 공연 연습 규칙과 관람 규칙을 정하고 지키면서 공연을 이어간다. 민간 제작 공연에서 모든 판단은 ‘자체적’으로 이루어진다. 관객의 급감으로 인한 수익 감소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역행한다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자체적으로 감수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자체’라는 말은 이 모든 판단의 책임은 민간극장과 민간단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비 대비 매출이라는 수익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공연을 중단할 것인지, 취소할 것인지, 연기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조금은 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수익을 놓고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염병이 없더라도 공연제작에서 ‘수익’은 애초에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확산 되고 있는 비상 상황이다.) 그런데 창작중심 공연들은 거기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작은 공연이라 하더라도, 제작의 기본값은 비슷하다. 객석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전염병으로 줄어든 관객의 타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공연 연기나 취소가 어려운 것은 수익만큼이나 창작 과정에서 공연이 갖는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관객을 앞에 두고 상연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10회 미만의 작은 공연이라도 준비 기간이 있다. 공연을 중단하거나 취소하면 그 준비 기간도 무너진다. 게다가 대체로 창작 중심 공연들은 재공연 등을 기약하기도 어렵다. 있는 자원을 모두 그러모아 준비한 공연 기회이다. 장기공연을 목표로 한 2차, 3차 개발 계획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준비해온 그 모든 과정을 포기하고 공연을 취소할 것인지, 제한적이나마 공연까지 창작 과정을 마칠 것인지 하는 큰 고민을 떠안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공연은 한달 정도의 공연 기간을 예정하고 개막하자마자 코로나19 전염이 확산되면서 자체적으로 휴지기를 가졌다가 다시 남은 기간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때로는 한 자리 숫자의 관객이 전부지만, 손해를 감당하는 것만큼 공연을 중단하고 취소함으로써 감당해야 할 과정의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대학로 거리
우리는 정말 연결되어 있는가
바이러스는 신종이지만, 인간은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기술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우리의 투명한 방역관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지역전파의 장기화가 우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 속수무책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럽의 현상을 보면 아직 상황이 관리되고 있다는 데에 안심하게 된다. 허나 속내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를 보호하는 있는 것은 휴대폰 위치 취적, 신용카드 사용 내역, CCTV 등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공개하는 ‘투명한’ 방역체계가 한몫을 한다. 전염병이 아니라면 격론이 벌어질 일이지만 우리는 비상상황에서의 과감한 정책적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따른다. 한편으로 이러한 ‘투명한’ 관리는 정책적 결단도 중요하지만 식민지, 독재를 거치며 단단하게 우리 사회에 장착되어있는 경찰국가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테다.

바이러스는 한편으로 우리 삶을 혼란에 빠뜨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완강한 조건들을 드러낸다. 어린이 청소년 감염과 집단 감염의 우려로부터 학교의 개학을 미루는 결정에 너나없이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휴업으로 일을 할 수 없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국가적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고용노동부장관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휴업수당에 대해 국가의 책임 없음을 공표했다.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을 두고 우리 삶은 연결되어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개개인의 삶의 조건은 더더욱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극장도 그렇다. 전염병 위기 상황에서 국가는 극장을 감염의 위험이 높은 다중 이용시설로 분류하고 폐쇄했다. 그러한 결정과 실천에서 우리가 극장을 두고 논쟁했던 수많은 의미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정책적 결정은 전문가들의 지식과 판단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공에서의 조속한 판단은 극장에 대한 고민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민간극단과 민간극장은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공연을 취소해야 할지, 진행해야 할지, 진행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왜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극장을 열고 공연을 올려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해야만 한다. 혹은 공연을 취소하고 극장 문을 닫더라도 공연예술가로서의 삶을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혹은 포기해야 할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전염병은 이처럼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민간제작의 고립된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 공연예술계의 코로나19 피해에 사회적으로 주목하고 피해대책이 발표되고 있지만, 피해 상황에 대한 파악은 물론 어떤 피해에 대해 공적 재원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갈팡질팡이다. 지난 시절, 메르스 이후 한국의 방역정책은 개선이 되었고, 그러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팬데믹의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예술계에서 발표되고 있는 ‘피해지원대책’은 이미 메르스에서 실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급박한 상황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주기적인 전염병 또한 대비해야 한다. 그러한 복잡한 현실 속에서 극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저 사람들이 모여서 감염 위험이 높은 다중이용시설로 표백되지 않고, 전염병의 시대에도 창작이 완성되고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고 사회적 공론장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을까. 감염 위험 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가 더욱 필요한 시기에 극장이 그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예술가들의 삶도 사회적 연대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고립된 위치에서 모든 것을 걸고 위기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연극을 중단하고 피해를 보상받는 것을 반복해야 할까. 온라인서비스를 개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극장이 단지 공연작품을 제공하는 거래처는 아니지 않은가. 코로나 시대의 일상에서 연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2015년 메르스 관련 공연예술계 지원사업 (캡처_KTV 화면)

태그 코로나시대,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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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김소연 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제177호   2020-03-26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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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공연 취소와 운영 중단에 들어간 영국의 민간제작극장들 중에는 코로나 사태에 대한 슬픔과 각오를 담은 각자의 성명을 내면서 관객들의 도네이션을 함께 요청하고 있던데요, 모두 협력해야 할 시기에 관객들도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

2020-04-0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