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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과 썰물, 그 사이에 뻘

김지혜_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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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과 썰물, 그 사이에 뻘

1980년대 광주에서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대 저항적 음악 창작에 몰두하는 운창은 그 바람의 주변부인 고향 벌교로 내려온다. 때마침 그의 어머니이자 한때는 가수왕이었던 동백이 최고의 작곡가 갤럭시 박과 함께 벌교를 찾는다. 운창의 노래는 동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고 설상가상으로 연인 홍자마저 점점 갤럭시 박에 빠져든다. 연극 <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헌데 이 이야기, 어딘지 낯이 익다.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만들고자 했고, 또 배우인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자 했던 안톤 체홉의 <갈매기> 속 청년 뜨레폴레프와 그를 둘러싼 관계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뻘>은 <갈매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갈매기>의 벌교 버전이 아니라 재창조된 새로운 작품으로 봐야 한다.

<갈매기>에 연극이 있다면 <뻘>에는 음악이 있다. <뻘>이 우리 주변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데는 음악의 힘이 크다. 음악은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해 친근함이 있기에 새로운 연극을 갈망하며 좌절하는 뜨레플레프보다 록(rock music)을 하다 결국 트로트를 하게 되는 운창의 상황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 운창은 ‘낙지대가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저항을 하지만 동백은 ‘낙지대가리’로 표현되는 권력층을 위해 노래한다. 갤럭시 박은 만드는 곡들이 다 금지곡이 되자 가사를 바꾸어 노래를 살리지만 현실에 굴복한 자신의 모습에 상실과 무력함을 느낀다. 운창과 같은 노래를 불렀지만 다른 목적으로 노래했던 홍자는 갤럭시 박을 통해 가수의 꿈을 이룬다. 운창은 치열하게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러나 혁명을 외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운창의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들이 나온다. ‘혁명의 노래’라고 했던 운창의 노래는 왜 아무도 부르지 않을까. 운창의 음악은 자신이 새로운 무언가가 되려고 했던 야망일 뿐 대의의 혁명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야망이 좌절된 운창은 안정된 삶을 택해 기성세대의 트로트로 방향을 바꾼다. 그럭저럭 안정되는 듯 보였던 운창과 홍자의 삶은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의 등장으로 흔들린다. 그렇게 시대는 흐르고 변화한다.

  • 밀물과 썰물, 그 사이에 뻘 밀물과 썰물, 그 사이에 뻘
  • 인생, 역사, 사랑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텍스트 자체가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좋았다고 하기에는 아쉽고, 나빴다고 하기에는 섭섭하다. <뻘>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실제 삶에서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누구의 삶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는 없다. 하지만 극에서는 관객이 따라갈 중심이 필요하다. 인물이 많으면 이야기가 분산되기가 쉬운 만큼 핵심에 집중할 수 있는 구성이 필요한데 다소 산만했다. 각각의 캐릭터는 있지만 인물들 간의 감정적 긴장구조가 부족했다.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설명되지 않았으며, 그런 감정을 쌓을 시간도 없다. 그러다보니 인물의 진심을 알 수 없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감정적 긴장의 빈약은 대사에서도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사투리를 찰지고 맛깔나게 표현했으나, 좋은 대사도 재밌는 대사도 상당부분 대사로만 머무르게 되었다. 글로 읽었다면 다른 곳에 적어두고 싶을 만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대사를 하는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해 그저 상징으로만 남았다.

    결국 ‘뻘’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밀물과 썰물이 끊임없이 교차되면서 뻘이 형성된다. 뻘을 이루는 입자들은 제각각 치열한 삶을 살아내며 뻘의 기반이 된다. 그러다 새로운 입자들이 밀려오면 밀어내고 하면서 한층 또 쌓인다. 운창도 시대의 흐름에 밀물처럼 밀고 오며 저항했으나 썰물 빠지듯 빠지며 현실에 안주했다. 그렇게 기존의 세대가 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너무 많이 쌓이고 새로운 흐름이 없을 때 뻘은 곪아 썩게 된다. 다시 생명력을 얻으려면 태풍이 불어 뒤엎어져야 한다. 역사 또한 그러하다. 과거가 쌓이고 쌓여 현재가 되는 일의 반복이다. 뻘은 개인의 인생이자 시대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2012년에 1980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뻘이 곪아가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는 것과 같다. 함부로 지껄이는 말을 뜻하는 ‘허튼 소리’라는 단어는 전라도 사투리로 ‘뻘소리’라고 한다. 이 때 ‘뻘’은 갯벌에서 연유한 말이다. 이 글이 부디 뻘소리가 아니길 바란다. 동시에 뻘의 소리이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두산아트센터

태그 뻘, 김은성, 부새롬,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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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김지혜 대학생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언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dubu07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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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6호   2012-08-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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