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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남긴 것과 남겨진 선택

최윤지_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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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인 <꿈>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한여름 밤의 꿈>의 우리나라 역사극 버전을 보는 듯하다. <한여름 밤의 꿈>에는 연인들의 인간세계와 밤의 요정들의 세계, 그리고 극중극의 세계가 환상으로서의 생(生)을 익살맞게 구현한다. 김명화 작, 최용훈 연출의 연극 <꿈> 또한 그렇다. 하지만 악몽이다. 후회와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역사의 환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프로젝트’라는 테제 These, 명제, 강령에 걸맞게 요정들의 세계 대신 일연이 집필한 우리의 신화가 펼쳐진다. 조신의 꿈 이야기다. 여기에 이 신화를 이야기하는 친일파 춘원 이광수의 생이 겹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인 낙산사 부근에서 벌어지는 원효와 의상의 기묘한 대화가 극을 열고 닫는다. 이 공간, 낙산사에는 관음보살이 있다. 관음의 시선이 이 모든 세계를 관통한다. 세상이 이광수에게 어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건 간에 그녀는 그 번뇌를 연민의 시선으로 보듬는다. 여성적인 시선이 불교적 세계관을 통해 친일파의 고통조차 끌어안은 것이다.

무대는 이런 층위를 공간으로 구분하여 시각화했다. 관객석이 바다이고, 깊은 바다 위로 세 공간의 무대가 섬처럼 솟아 있다. 이 가운데를 지르는 길이 하나 있고, 가장 뒤편에 탱화불교의 신앙내용을 그린 그림가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은 극의 대부분 이 뒤편 공간에 서서 벽화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섬 같은 무대 구조의 백미가 드러나는 장면이 있었다. 극의 정점에 도달해서 조신이 감옥에 갇혀 번뇌를 겪는다. 동시에 이광수는 한쪽에서 치욕의 과거를, 자신이 내뱉은 친일의 말을 곱씹으며 악몽을 경험한다. 무대 한 단 아래에서는 붉은 조명을 받으며 일장기를 흔드는 군인의 팔이 지하세계를 의미하는 큰 무리의 죽음으로서 이광수의 죄책감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공간의 가장 뒤편에는 관음보살이 죽은 동자승과 함께 그림처럼 멈춘 채로 굳게 서 있다. 관음은 고통과 번뇌의 정점에서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삶의 가운데에서도 원효와 의상은 무대를 가로지르는 길 위에 천연덕스럽게 등장해서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며 바람처럼 유희하는 생(生)으로서 극을 환기한다.

공연 포스터
  • 젊었을 때는 문인으로써 조선의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던 최남선과 이광수. 그들은 친일활동으로 변절자가 되어버렸다. 이광수는 이 모든 고통과 잘못된 선택이 한낱 꿈이었기를 바란다. 그 마음을 조신의 꿈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풀어낸다. 조신은 태수의 딸 월례를 향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파계하여 도망친다. 행복한 생을 사는 것 같았던 조신은 파계의 죄, 남의 행복을 앗아간 죄로 인해 가족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묻지도 못한 채 아내와도 헤어진다. 그리고 옥에 갇혀 그 아내까지도 의심하는 고통어린 번뇌에 시달리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다시 한 번 선택의 길이 주어지는 것이다. 생이 꿈이었으면 하는 이광수의 고통스러운 바램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의 부인 허영숙이 항변한다. 인생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라는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아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로 인간을 내모는 이 세계가 지옥임을 호소한다.

    결국 이광수와 최남선은 친일 심판을 향해 낙산사를 떠난다. 스스로를 근대의 잘못된 첫 단추라고 반추하며. 최남선은 관객석, 바다를 향해 최초의 모던 포엠 modern poem, 현대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읊는다. 남명렬 배우의 회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관객은 더 이상 그들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속죄에 갈급한,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역사 속에 영원히 남겨놓은 상흔을 인정해야만 하는 그들에 대한 연민이 요동친다. 그리고 동시에 질문한다. 나는 그들이 남겨둔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극의 마지막에서 바다로 내려간 의상은 몇 백 년은 묵은 듯한 선묘를 만난다. 이 만남에서 의상은 자신이 의연히 사랑을 거절했던 선묘낭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용처럼 긴 몸으로 일어서는 그녀의 품에 안긴다. 조신의 선택과는 다른 길을 가지만 그래도 상처받는 생은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또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극은 세계를 열어둔 채로 끝이 난다. 어떤 선택이든 간에 인생은 꿈이고, 그 회한은 ‘색(色)이란 모두 공(空)에 있다’는, 불교의 교리로 아우러지며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이것은 겹쳐지고 중첩된 고뇌를 바라보는 관음보살의 시선이다. 우리의 선조가 어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생을 바라보았냐는 관점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묵직한 역사의 <꿈>은 나에게 다음 단추 구멍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남겨두고 막을 내렸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태그 꿈, 삼국유사 프로젝트, 김명화, 최용훈,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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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지

최윤지 연극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페이스북 www.facebook.com/yoonji.choi.549
이메일 yoonji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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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8호   2012-09-20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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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남겨진 선택이라,,, 좋네요 ^^

2012-09-21댓글쓰기 댓글삭제